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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Jul 05. 2022

하나도 안 씩씩한 워킹맘

워킹맘 다이어리

오후4시 퇴근. 

아이 어린이집 하원하러 이미 나가야 되는 시간이 지났지만 

처리해야되는 일 때문에 야근 중이다. 


어제 받았던 민원 전화를 받다가 울어버렸다. 


과 직원들이 다 날 쳐다보는데 

손이 달달달 떨렸다. 무서워서 얼어버리고 말았다. 


민원전화는 다른 직원이 대신 받으면서 종료됐다. 


빨개진 눈에 빨개진 얼굴까지 너무 쪽팔렸다. 

말 그대로 쪽팔렸다. 

서른 다섯이나 먹고 이만큼 나이 먹고 애처럼 울다니. 

그것도 민원인 앞에서, 그것도 회사 사람들 앞에서. 

너무너무 쪽팔렸다. 그리고 너무 바보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마우스를 잡고 

다시 해야할 일들을 했다. 

모든 일은 그로부터 30분이 지난 후 종료됐다. 


퇴근 길 버스에서 계속 눈물이 났다. 

내 전화를 대신 받아준 직원분께도 너무 실례였고, 

과에서 때아닌 울음소리를 들은 모든 직원들에게도 실례였다. 

바보 같은 실수를 했구나. 바보 같은 실수를 했어.


자책도 있고 서럽기도 했다. 오늘 저녁에는 남편 퇴근하고 첫째딸 기침가래랑 얼굴에 난 뾰루지 때문에 소아과에 가기로 했는데 기운이 없어 다음에 가자고 카톡을 보냈다. 여름 무더위에 얼굴로 뜨거운 땀이랑 눈물이 섞였다. 


오늘은 퇴근길에 아파트 단지 엄마들 안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제 만난 엄마들 얼굴이 떠올랐다. 조아엄마는 살도 안 찌네. 워킹맘은 대단해. 이런 말은 오늘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하나도 안 씩씩한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약해빠져서 언제든 물렁하게 터져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해야하는데 큰일이다. 아직 화요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방전이라니. 이런 퉁퉁 부은 눈으로 아이 픽업하러 가기 정말 싫다. 


하원이 늦더라도 세수는 하고 가야겠다 싶었다. 이미 아이 픽업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서 더위를 식혔다. 그래도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비가 올랑말랑한 하늘이네. 긴 장우산을 챙기고 어린이집으로 간다. 


"엄마! 이걸로 엄마랑 아빠 해줄거야." 

아이는 오늘 아주 재미있었는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직접 만든 부채로 내 얼굴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고마워, 엄마 정말 감동인데!"

정말 시원한 바람이 부는 시원한 부채였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나는 책을 읽었다. 10분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어제일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다음에 가자고 한 아이 소아과 가는 일을 그냥 오늘 가기로 했다. 남편 퇴근 하고 남편 차로 소아과에 들렀다. 나온 김에 소고기도 먹었다. 밥 먹고 남편이랑 이야기 나누다보니 또 괜찮아졌다. 


그냥 오늘의 울음은 나를 꽉 지탱하고 있던 것들의 잠깐의 비틀거림이었다. 코로나 감염으로 팀원들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나 혼자 다섯 명의 일을 해내느라 잠시 휘청거린 거였다. 누구 하나 아프면 이렇게 삐걱거린다. 회사도 그렇지만 가족도 그렇다. 아이가 아프면 회사에서 일하다가 나와야 하니까 삐걱대고, 이렇게 힘들고 우울한 날 아이와 남편이 없었으면 나는 아직도 엎드려서 울고 있을테니까. 어느 누구 하나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오늘 아침에 복직축하한다고 카톡선물을 보낸 동네언니를 불렀다. 가는 길에 달무리가 진 초승달이 보였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보군. 그래도 언제고 화창한 날만 있겠어. 단지 앞에서 언니에게 밤호박을 건넸다. 밤호박은 핑계고 언니도 빵이랑 더치커피를 내게 건넸다. 길바닥 위에서 한참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니 달무리 걷힌 초승달이 보인다. 뭐야, 내일은 비가 개겠군. 


하나도 안 씩씩한 워킹맘, 오늘도 이렇게 간발의 차로 흐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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