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다이어리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생네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최근 몇 달 동안 주말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모처럼 쉬었다는 느낌이 드는 주말이었다.
다음 달에 동생과 가기로 한 일본 여행에 대해서 동생과 이야기했다. 디즈니랜드를 예약하려는데 예약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코로나 여파로 인원수 제한이 있는 데다가, 코로나로 인한 여행제한이 풀린 지 얼마 안 되어 디즈니랜드 홈페이지 서버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나라면 벌써 포기했을 디즈니랜드 티켓팅을 동생은 하루 종일 클릭하고 클릭해서 결국 성공했다. 우리가 머물 숙소, 우리가 탈 비행기 티켓까지 동생네 집에 있는 주말 동안 다 예약했다. 동생이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지 고민하느라 주말을 다 할애하는 동안 나는 그런 동생을 지켜보기만 했다. 동생의 열정이 너무도 부러웠다. 동생에게 너의 뜨거움이 부럽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뜨거움을 다시 찾을 수는 없더라도 뜨거움 옆에서 따뜻함이라도 느끼고 싶다. 그래서 동생이 짠 스케줄대로 다닐 생각을 머리에 그리며 나도 이것저것 검색해본다. 동생은 언제든지 언니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산후우울증이라고 명명한 이것이 실은 내 삶에 결혼, 임신, 육아로 격동한 이 변화의 흐름에 생겨난 파도가 아닐까라는 생각. 호르몬과 뇌파의 균형이 깨져 생긴 균열이라기보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에 어쩔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파도라고 표현했지만 공간, 빈칸, 블랭크, 공허함에 가깝다. 그 빈칸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리기 어렵고 내 과거로 반추하자면 슬픈 얼굴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게 산후우울증일까. 이 질문을 하고 또 했던 것 같다. 스스로 우울증에 걸린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거다. 우울증이든 아니든 산후우울증 약은 영양제 먹듯이 계속 먹을 예정이다.
지난 금요일 반차를 내고 머리를 볶고 왔다. 히피펌이라고 아주 자글자글한 머리를 했는데 앞머리까지 아주 빠글 하게 볶아 버렸다. 아주 명랑해 보인다. 그렇게 보이니 실제로 아주 조금 명랑해진 것 같기도 하다. 히피펌은 살면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다. 바뀐 헤어스타일이 낯설고 내 모습 같지 않아 자꾸 셀카를 찍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졌다. 거울 앞에 내 모습이 웃겨서 웃을 때도 있고 너무 말도 안 되게 못 생겨 보여서 거짓말 같기도 하다. 또 자꾸 머리를 만져보고 셀카도 찍어보면 또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힙해 보이기도 하다. 나는 내 바뀐 헤어스타일이 꼭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마음에 든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스타일 변신이 성공한 건지 실패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마음에 든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싶은 의지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포기해버리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포기해버린 내 인생!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알 바 없다고 될대로 살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달라진 머리로 출근을 하니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흠칫 놀란 사람도 있는 것 같고 별생각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귀엽다, 예쁘다 칭찬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달라진 머리를 보고 첫째 아이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웃었는데, 며칠 동안 내 머리를 지켜본 첫째 아이가 어제는 나를 빤히 보더니 "엄마 귀여워"라고 말했다. 다른 어떤 반응보다 아이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머리를 잘 볶은 것 같다. 잘 볶았다고 생각하고 잘 볶았다고 마음먹고살면 사람들도 잘 볶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