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기억과 기록의 간극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K는 임 선배의 죽음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초혼"이라는 의식을 통해 고통을 애도하고자 한다. 초혼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으로, 타자의 죽음과 고통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 의식을 통해 K는 죽음에 대한 기록을 시도하지만, 그 기록은 점점 자신과의 간극을 드러내며 변형된다. K는 처음에 담담하게 임 선배의 죽음을 기록하려 하지만, 기록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개입되고, 그 고통이 점차 자신에게로 다가오면서 기록이 달라진다. 이때, K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한 애도를 통해 스스로의 감정과 기억이 재구성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K는 임 선배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그것을 기록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말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지, 실제 임 선배가 했던 말인지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장면은 기억이 어떻게 왜곡되고 변형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죽은 자의 기억은 점차 살아있는 자의 감정에 의해 변형된다. 기억이 기록으로 남겨지는 과정에서 그것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그 기록을 쓰는 자의 고통과 애도가 담기기 때문이다.
또한, 경주 언니의 기억이 점차 흐려지는 과정도 기억의 변형을 상징한다. 경주 언니는 사회적 죽음을 겪은 인물로, 그녀의 존재는 점차 K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 K는 처음에는 경주 언니에 대해 동경과 연민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고통은 점차 흐려지고,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이는 K가 죽음과 상실에 대한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K가 임 선배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도 중요한 지점을 지닌다. "제가 써갈수록 점점 달라졌어요."라는 문장은 기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죽음을 담담하게 기록하려 했지만, 글을 쓸수록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는 죽음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이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일이 아님을 드러낸다. 기록하는 행위는 감정의 개입을 통해 기억이 변형되고, 그 변형이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한강은 기억과 기록, 그리고 죽음과 고통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그린다. 초혼이라는 의식은 죽은 자의 고통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그 애도를 통해 스스로가 변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국 나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나의 기억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 작품은 죽음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그 고통이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며, 고통을 겪는 타자를 애도하는 일이 곧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 된다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결국, '기억'과 '기록' 사이의 간극을 통해, 죽음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어떻게 애도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타자의 고통을 기록하고 애도하는 행위는, 결국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한 송이 눈이 녹듯, 타자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 흔적은 우리 기억 속에서 변형되며 살아남는다. 그 변형의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고통을 마주하고 애도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아닐까.
+ 플라뇌즈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 나눈 것들 추가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한동안 고요한 침묵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한 송이 눈이 녹는 동안, 그 소리가 들릴 듯 들리지 않을 듯. 눈의 속삭임은, 그 자체로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그 안에 모든 것이 소란스러웠다. 인간의 존엄을 향해 나아가고 고통을 애도하려 하지만 나 혼자만의 공감만으로는 매우 부끄러운 것이다.
한강 작가에게 '초혼'(혼을 불러내는 의식)은 무엇일까. 그녀에게 초혼은 바로 '목소리를 주는 것'이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인 상태로 고통으로 남아있는 그 곳에서, 한강은 이 '혼'을 부른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절대적 공감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나 혼자만으로는 공감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혼을 불러낸다.
그렇게 부른 '혼', 그 목소리는 결국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다. 그 시간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처럼 찰나이지만 멈춘 것 처럼 고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초혼은 멈춘 시간 속에 갇힌 자들에게, 그 시간이 다시 흐르도록 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그 '혼'이 왜 하필 '임선배'여야만 했을까. 임선배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억누르는 인물이다. 임선배는 사실 가장 깊은 곳에서 '풀어내지 못 한 이야기'를 의미한다. 그는 공감을 표현하는 데 저어하는 사람이며, 그 자체로 '풀리지 않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 풀리지 않는 부분을 해석하려는 시도가 바로 이 소설의 중심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혼'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것은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강 작가는 이 고통을 꺼내놓음을 통해서, 결국 그 고통이 우리에게 전해지기를, 또 다른 초혼의 과정을 이끌려 한다. 혼을 부르는 행위는, 그 고통을 직시하게 하고, 그 고통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몸의 방향이 틀어져있다.
'혼'은 단순히 빈 공간이나 고통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이며, 그 연결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조금씩 이해하고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의 소설은 그저 고통을 나열하는 넘어, 그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