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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믿다 - 돌핀, 체어, 클라임

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최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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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수강권을 끊었다. 퇴근 후 도착한 폴댄스 학원. 오늘은 두 번째 폴댄스 수업을 가는 날이자, 첫 수강권을 쓰는 날이다. 폴댄스 학원에서는 스포츠브라탑과 무릎 위로 오는 짧은 바지를 입고 오라고 했지만 집에 스포츠브라탑이 없어 딱 붙는 나시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폴댄스 체험 수업은 퇴근 후 저녁에 수업을 듣지만 일상복 안에 미리 입고 출근한다.


오늘 수업은 수강생이 많은 날이었다. 총 7명이 최대 인원인데 7명이 왔다. 폴체험으로 처음 온 수강생도 있었고, 폴을 잘 타는 수강생도 혼재되어 있어 그룹별로 동작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는 수강권을 끊고 쭉 다녀야하기 때문에 바디그립제가 필요해서 구매 했다.


지난 폴체험 수업에서 갑자기 수강생들이 몸에 무언가를 바르는걸 보고 당황했는데, 선생님이 설명하기로는 바디그립제로 허벅지, 오금, 엘보, 손에 폴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바르는 것이라 했다. 배우는 동작에 따라 발라야 하는 부위도 그날 그날 조금씩 달라진다. 이걸 바르면 폴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잘 매달릴 수 있다고 했다. 손에 바르는 것은 드라이핸즈, 몸에 바르는 것은 바디그립제다.


바디그립제는 몸에 바로 발라줘야 하고 드라이 핸즈는 손 외에 몸에 발라도 된다. 깜빡하고 안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름을 쓰고 학원에 두고 다니는 게 편하다고 하는데, 다들 예쁜 파우치에 넣어 보관하고 있길래 집에 굴러다니는 노란색 레몬 뜨개 파우치를 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수강권을 긁기 전에 선생님은 내게 땀이 많으신 편이냐고 물었는데, 땀이 많은 수강생에겐 딱젤을 추천한다고 한다. 딱풀처럼 폴에 딱 붙으라고 딱젤이라고 부르는건가? 귀엽다.


폴을 타다보면 온몸에 땀이 많이 나서 미끄러워지기도 하고 땀 닦을 수건도 필요하고 내 몸 뿐만 아니라 폴 닦는 수건, 수건에 알콜도 묻혀서 폴을 닦아야 안 미끄러지고 잘 탈 수 있다. 폴 타기 전에 바디로션은 바르지 않는 게 좋은데 그래서 폴댄스 수업에 가기 전에는 바디로션은 바르지 않는다. 알로에젤이 좋다해서 학원 서랍에는 알로에젤도 적지 않게 보인다. 어디서 주워 듣기로는 바디워시도 몸을 미끄럽게 할 수 있어서 비누가 좋다고 하는데 평소에 바디로션을 잘 바르지 않고 몸이 굉장히 건조한 편인데 이런 평소 습관과 몸상태가 폴 타기에는 적합하다는 것이 웃긴데 뿌듯했다.


수업 정각이 되었고, 웜업을 시작했다. 웜업이란 폴을 타기 위한 준비운동인데 동작의 수위는 요가와 비슷하다. 웜업 운동은 폴에 오르기 전 근육이 놀라지 않도록 돕는다. 웜업 동작만으로도 충분한 운동이 된다. 웜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소독티슈를 수강생들에게 나눠준다. 각자 쓴 매트를 닦아 원위치에 놓기 위해 나눠주는 것이다. 매트를 깨끗하게 닦고 돌돌 말아 원래 매트가 있던 제자리에 둔다.


처음에 한 동작은 ‘체어’라는 동작이었다. 오른쪽 겨드랑이에 폴을 끼우고 투명의자에 앉듯 다리를 접어 허공에서 앉는 동작이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는데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선생님은 다리를 길게 쓰라고 하는데 그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 했는데, 다리를 직각으로 각잡고 앉은 포즈가 아니라 비스듬히 해서 길어보이게 만들라는 뜻이었다. 먼저 겨드랑이에 폴을 끼우는데 폴에 오금을 끼울 때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문제는 겨드랑이에 폴을 끼우고 매달린 채로 다리를 접고 앉아야 하는데 어깨가 잔뜩 긴장해서 선생님처럼 예쁜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다리를 길게 쓰는 것 또한 지금 단계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일단 투명의자 앉기 부터 겨우 해낼까 말까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응용동작을 하는데, 잠깐 폴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그 똑같은 자세를 뒤로 하는 것이다. 모든 동작의 기본 회전방향은 오른 쪽이다. 처음 배우는 동작이라 폴 위에서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에 잠깐 내려왔다가 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클라임’이라는 것을 배웠다. 클라임은 폴에 오르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처음이라 정식 클라임이 아닌 폴에 오른 아킬레스건을 낚시 고리 끼우 듯 플렉스해서 끼우고 오른 안쪽 무릎을 폴에 대고, 왼다리도 폴 앞에 포개 올라가는 비교적 쉬운 버전으로 폴에 오르는 방식으로 올랐다. 클라임은 폴에 오르는 기본이 되는 동작이라고 한다. 바닥을 보지 말고 돌 때는 천장을 본다. 아직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폴 위에서 천장을 보는 것 조차 미션이었다.


한 것도 딱히 없는 것 같은데 땀이 나고 숨이 찼다. 연습하고 선생님에게 검사 받는데 동작을 잘못하고 있었다. 잘못 된 동작으로 연습하고 있었던걸 알았을 땐 지금 내게는 동작을 제대로 하고 못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폴 위에 일단 매달려 있는 게 더 중요해서 잘못된 동작으로 연습했다고 딱히 억울하지는 않았다.


나와 비슷한 진도의 수강생 현정님은 처음에는 매달리기 조차 힘들어했는데 조금씩 자세가 좋아졌다. 아프고 힘든걸 공감하니까 서로 더 응원하게 된다. 처음 본 수강생들을 응원하고 있다니 이것 또한 이번 폴댄스 수업의 의외의 성과였다. 수강생들의 동작이 성공할 때마다 큰 소리로 “방금 됐어요!”라고 서로 독려해주었다. 내향형 인간인 내가 두번째 수업만에 이렇게 수강생들과 웃고 있는게 정말 신기했다.


폴과 폴은 너무 멀리 떨어져있지도 않고 내가 있는 거리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응원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서로의 몸이 부딪히지 않을 거리만큼. 딱 그만큼의 거리로 떨어져 있다. 나도 인간관계에서 딱 이정도 만큼의 거리를 원하고 추구한다. 자신의 몸이 부딪힐 수 있는 건 폴 뿐, 서로가 부딪히지 않을 거리에서 서로의 동작을 지켜볼 수 있다. 폴 수업 다음날, 근육통은 크게 없었다. 분명 폴을 탈 때는 그렇게 아프지 않다고 느꼈는데, 겨드랑이와 가까운 팔 안쪽에 커다란 멍이 들었다. 얼핏 보면 문신 같아 보인다. 아픈줄도 모르고 신나게 폴을 탄 것이다. 양쪽 팔에 든 멍이 열흘이 넘게 갔다.


폴댄스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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