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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by 최서영

한 달 전이었나. 나는 교회가기 전 날 침대에서 엉엉 울던 첫째 딸. 잠자기 전에 기도를 하자고 했더니 아이가 엉엉 울었다. 왜 우냐고 물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줘."


그 작은 입에서 나온 말이 기이하게도 내 마음을 후려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기도가 뭐였는데?


"교회에서 재미있게 놀게 해달라고 했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 아이의 기도는 너무 단순했다. 너무 솔직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님께 요청했다.


"포도주가 없어요."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면 결혼식의 분위기가 망가질 것이고, 축제의 흥이 깨질 것이고, 사람들은 흉을 볼 것이고, 신랑과 신부는 평생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한숨을 쉴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내 때가 아직 아니라고 하신다. 기적을 베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 당장 물을 포도주로 바꾸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분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머릿속에서 자꾸 딸아이의 눈물과 겹쳐졌다. 교회에서 재미있게 놀게 해달라고 기도한 아이. 하지만 아이는 재미있게 놀았다. 단지, 예배가 재미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도를 안 들어줬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시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의 때에 맞춰 응답하지 않으실 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말이 어렵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응답이 오지 않을 때 흔들리며 불안해한다. 아이처럼 엉엉 울며 원망하고, 서운해하고, 때로는 의심한다. 하지만 성경은 말한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포도주가 떨어진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즉각적인 응답이 아니라, 그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에도 믿음은 자란다.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딸아이가 눈물을 닦고 기도를 마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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