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했다. 예수께서 아이가 자고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비웃었다. 이미 죽은 아이를 자고 있다고 말하니 말이 안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은 문 밖에 세웠다. 오직 아이의 부모,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왜 그랬을까. 모든 사람이 함께할 수는 없었을까.
믿음이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 절박한 자들과 비웃는 자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 간극은 멀다. 예수님은 그 차이를 아셨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문밖에 두셨다. 두려워말라 믿기만 하라 말했지만,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했다. 기적을 보지 못 한다. 그들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도, 이 시대에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지 못 한다.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는 끝을 증명하는 일에만 사용된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었던 기적들도 인간의 지혜로써 여전히 해석되어진다. 믿음은 종종 어리석음으로 취급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끝없이 의심한다. 기도하면서도 대안을 찾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야만 안심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 앞에서 포기하며,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긴다. 비웃는 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문 밖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는 예수님을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니라 생명이었다. 눈앞에서 무너져가는 존재 앞에서, 믿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 믿음이 아이를 살렸다. 예수님이 손을 내밀자 아이가 일어났다. 문밖에 선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문은 믿음의 눈, 진리의 영을 상징한다. 믿음을 가지고 문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문 밖에서 세상의 지혜를 붙들 것인가. 문 밖에 서 있는 것은 쉽다. 안전하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비웃는 것이 더 지혜롭도록 보여진다. 하지만 기적은 항상 문 안에서만 볼 수 있다. 기적이 일어나는 자리에 서려면, 믿음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전히 그 문은 열려 있고,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40 이에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41 이에 회당장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며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 감이라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누가복음 8:40-42 (개역개정)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8:49-56 (개역개정)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