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 앞에서 벗은 몸을 바라본다. 겨드랑이 주변과 팔뚝 안쪽, 다리 여기저기에 선명한 멍들이 보인다. 선생님의 몸에도 작지만 분명한 멍과 상처가 있고, 굳은살은 마치 여섯 번째 손가락처럼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수강생들의 몸에서도 나는 멍자국을 쉽게 찾아낸다. 멍이 사라질 즈음 다시 폴댄스 수업에 가서 새롭게 멍을 데려온다. 멍들은 곰팡이 같기도, 멀리서 보면 작은 문신 같기도 하다. 한번 생기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꽤 오래 머문다. 가끔 남편은 내 온몸에 흩어진 멍들을 보고 놀라며 아프지 않냐고 묻는데, 생각보다 아프지는 않다. 처음엔 멍이 들었을 때가 겨울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 멍들이 제법 마음에 들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폴댄스가 남긴 작은 훈장처럼 여겨진다. 아침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내 몸에 찍힌 멍들이 예뻐 보이고 반갑기까지 하다니, 나는 분명 폴변태가 된 것이 틀림없다.
오늘은 또 어떤 멍을 만들어볼까. 오늘 배운 건 '아사레이 백스핀'이라는 동작인데, 지금까지 겪었던 것 중 가장 강렬한 멍이 들었다. 수업이 끝난 지 3주나 지났지만 아직도 허벅지에 깊고 검붉은 멍이 남아있다. 가볍게 만져도 덜 아픈 멍이 있는 반면, 살짝만 움직여도 아픈 멍도 있는데 이번 멍은 정말 화산송이처럼 솟아올라 중심에 진하고 검붉은 핵이 자리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눌러보면 아릴 만큼 강력했다. 왼쪽 허벅지 안쪽에 생긴 멍이라 걸을 때마다 옷이 쓸려 계속 신경 쓰이고 불편했다.
폴에 오른발을 걸고 두 손으로 폴을 잡는다. 그리고 허벅지 안쪽 깊숙한 곳으로 폴을 꽉 움켜쥐고 두 다리를 일자로 곧게 뻗는다. 이 자세는 폴에 앉는 자세인 '폴싯'과 비슷하지만 다리는 훨씬 아래쪽으로 내려가 있어 더 아프다. 왼쪽 허벅지 안쪽이 깊게 닿아야 하고, 오른쪽 골반은 상대적으로 위로 들어 올려야 폴에 단단히 끼워진다. 허벅지 안쪽으로 폴을 단단히 잡은 채 왼손을 천천히 놓고 하늘 위로 뻗는다. 그러면 폴은 아주 천천히 돈다. 여기에 우아한 표정연기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만, 오늘도 역시 표정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오른손을 폴에서 떼어 왼손처럼 쭉 펴준다. 동작을 배우던 중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왜 놓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선생님과 수강생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폴 아래에 있을 땐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는데, 막상 폴 위에 오르면 ‘이 동작이 가능하긴 한 거야?’ 하는 의심이 든다.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과 감정이 나를 지배하면 그 다음 동작은 불가능해지고 만다.
너무 아파, 못해, 어려워!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면 폴 아래에 내려와 다른 수강생들이 연습하는 모습만 지켜보게 된다. 못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부족하더라도 시도하는 나 사이에서 폴댄스는 언제나 치열한 싸움이다. 허벅지 안쪽이 뜨겁게 아려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다치거나 수술한 경험도 있지만, 이런 종류의 고통은 처음 겪어본다. 두 손으로 폴을 잡는 대신 허벅지 안쪽으로만 움켜쥐고 다른 수강생들이 진도를 나가는 동안 나는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내 몸 하나를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다니. 예전에 요가를 배울 때 지도자 과정까지 따보고 싶었던 이유는 내 몸 하나쯤은 온전히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낙천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궁금하다. 내 몸은 왜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을까. 요즘 나는 어떻게 하면 몸을 잘 컨트롤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 체육 관련 책들을 주로 찾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궁금해본 적 없는 나의 몸과 그 몸에 붙어 있는 근육들의 이름들을 들춰본다. 이름을 안다고 뭐가 달라질 건 없지만 그냥 궁금해서 찾아본다.
근육을 공부하다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 뇌는 대뇌, 소뇌 등 여러 부분으로 나뉘는데, ‘오른팔을 올려, 왼 다리를 구부려’ 같은 명령을 내려 몸을 움직이게 하는 부위는 '대뇌'라고 한다. 걸을 때 균형감각을 잡아주는 건 소뇌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역시나 몸과 마음은 따로 놀고 있었다. '손을 왜 놓지? 손을 어떻게 놔?'라는 질문이 연습 내내 안개처럼 내 머릿속을 덮어버려 오른손을 도저히 폴에서 떼지 못했다. 선생님은 오른손을 굳이 떼지 않아도 좋으니 일단 영상을 찍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찍은 마지막 영상에서 아주 잠깐, 한 3초쯤 나는 손을 놓는 데 성공했다. 찰나의 성공이었지만, 손을 떼어도 나는 폴에서 미끄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