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크리에이티브
– 브랜딩의 첫 걸음, 채널 이름 짓기
나는 어릴 때부터 일 벌이기 선수였다. 오늘 쉬는 시간엔 뭘 하고 놀까. 수학문제는 못 풀어도, 노는 문제는 늘 내 몫이었다. 공부에는 별 재능이 없었지만, 어떻게 쉬느냐에 대해선 창의력이 붙었다. 친구들이랑 교실 한구석에 모여 앉아 고민했다. “우리 뭘 만들까?” 목적은 없었다.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데까진 갔지만, 그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진 않았다. 그러다 나온 게 ‘파라다이스’. 듣기만 해도 시원하고 막 가보고 싶게 생긴 이름.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이름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서야 거기에 내용을 채웠다.
어느 날은 학교 앞에 나무를 심고 싶어졌다. 정말 그냥 ‘심고 싶다’였지, 뭘 어떻게 할지는 몰랐다. 모종을 사서 흙에 꽂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나무를 심을 거냐는 질문부터 막혔다. 이 동네 기후에서 잘 자라는 나무가 뭔지, 가격은 얼마인지,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할 건지, 학교에 허락은 어떻게 구하는 건지. 내가 상상만 했던 세계와 현실의 간극은 생각보다 넓었다. 나무 하나 심는 데도 이렇게 많은 게 필요하다니. 상상을 실행하는 일은, 늘 생각보다 몇 배쯤 어렵다.
우리 ‘파라다이스’는 목적 없는 동아리였다. 어떤 날은 소풍을 가고, 어떤 날은 노트 한 권을 펼쳐놓고 릴레이 소설을 썼다. 한 사람이 한 줄 쓰면, 옆 사람이 또 한 줄 쓰는 식으로. 우린 그런 걸 좋아했다. 무의미한 걸 의미 있게 만드는 일. 그런데 매번 누군가 물었다. “너네는 뭐하는 애들이냐?” 지금 생각하면 정당한 질문이었다. 우린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방향이 없었고, 주제도 없었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좋았지만, 그걸 ‘어떤 이유로 하느냐’는 맥락이 없었다.
그게 뭐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채널을 만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SNS든 브런치든 유튜브든, 맥락은 중요하다. 사람들이 자꾸 찾게 되는 채널에는 이유가 있다. 그 안에 정체성, 주제, 방향, 테마 같은 게 있다. 그게 없으면 그냥 지나친다. 한 번은 보고, 두 번은 잊는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너무 주제에 갇혀버려도 안 된다. 방향에 조이고, 테마에 질식하면, 우리가 원했던 그 자유로운 ‘파라다이스’는 금세 망가진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그 안에 품을 세계를 정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름은 시작이자 방향이다.
얼마 전 <나의 해방일지>를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해방’이라는 단어에 그렇게나 마음이 끌릴 줄 몰랐다. 우리가 그 시절 바랐던 것도 그거였던 것 같다. ‘해방’. 그 단어 하나로 아이디어가 막 쏟아졌다. 해방되기 위해선 뭘 해야 하지? 어떤 일이 해방스러울까? 단어 하나가 방향을 만든다. 이름은 그런 거다. 이름이 먼저 오면, 내용이 따라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존재를 인정한다는 일이다. 우리 동아리도 그랬을지 모른다. 존재는 했지만, 이름이 없어서 자꾸 설명해야 했다. 설명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어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건 그 아이 인생에 처음으로 의미를 붙여주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 채널에도 이름을 지어주자. 처음에는 대충 붙인 듯한 이름이어도 괜찮다. 그 안에 진심이 있다면, 결국 그 이름이 날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르니까.
저자 최서영
공공기관에서 14년 차 소셜미디어 담당자로 일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해왔다. ‘미니부부’라는 유튜브 채널을 잠시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꾸준한 연재 콘텐츠는 없지만, 인스타그램, 브런치, 유튜브, 블로그 등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단발적으로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며,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과의 연결을 강화하고, 소셜미디어를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