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한 마리

_엄마

by 최서영

고래 한 마리 _엄마


딸의 글을 통해 청호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접하니 흑백사진을 꺼내보는 듯하다. 1년 동안 재학했던 학교에서 이런 의미있는 추억을 쌓았다니 놀랍다. 26년 전에 교사로 근무하던 청호초등학교에 올 3월부터 교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런데 옛날 흔적을 찾아보려고 해도 이젠 너무 많이 달라져 있어 조금 아쉬웠다. 4월에 우리 가족이 함께 이 학교를 둘러볼 때 딸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오늘 달의 글을 읽어보니 청호에서의 생활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성숙하게 할 요소들이 있었다는 게 참 반갑다. 가난이라는 게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라기보다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이라는 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타인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정신의 영토를 넓혀가는 게 풍요로운 삶일 테니까.


그때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자기만의 방’을 갈구하는 딸의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던 해에 딸이 대학에 입학했다. 나도 어렸을 적에 내 방을 무척이나 원했었다. 땔감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냉방이라도 좋으니 내 방을 달라고 아버지께 떼를 쓰곤 했었다. 지금은 시를 쓰면서 작품 하나하나가 내 방이라는 생각으로 흡족해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살던 집은 뒷동산이 있고. 쥐오줌의 얼룩이 있었으며, 수맥을 찾을 수 없어 물을 길어다 먹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꿈에 그 집을 가곤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고스란히 담긴 집으로. 이 시들을 읽어보면 딸들이 그 집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의 결핍과 허기가 내게 이런 시들을 쓰게 했다.


<고래 한 마리>

어린시절 내 살던 집엔

고래 한 마리 있었네

서투른 솜씨로 바른 불룩한 흙벽,

쥐오줌 얼룩의 천장,

채워지기를 기다리던 나무광


눅눅한 여름이면

모기떼에 뜯기면서도

마당잠을 즐기던 그 집에 살던

고래 한 마리

우기의 나날이면 가끔씩

불기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또다시 잠들던 방고래


보았네,

불길이 안 든다며

구들장 뜯어내던 날

꽉 꽉 막힌 그의 가슴을

내가 따스함에 취해 잠드는 사이

등 밑에서 끙끙 앓았을

고래의 시간들


<물통 지고 가는 길>

수맥을 찾지 못해

장노인 집 펌프물 길어다 먹었지

산 밑 첫 집, 어릴 적 우리 집엔

양철 물통 있었지

처음엔 욕심을 내어 물통 가득 물 담아

오르기 시작했지

물 줄줄 흘리며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언덕길

물통 안엔 늘 반만 남아 있던 시간들

길바닥에 흘린 물 자국 따라 내려와

다시 물지게 오르던 길

물지게를 면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지

오늘도 이렇게 생의 물통을 지고

기우뚱기우뚱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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