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드는 일

_언니

by 최서영

편드는 일 _언니


국회 인턴으로 일을 하면서 나는 입법 발의를 위해 의원실에 도장을 받으러 다니는 일을 자주 했다. 입법 발의를 위해서는 열 명의 의원이 공동발의를 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정말 ‘도장’만 찍어오면 되는 거였는데, 국회의원들끼리 사전협의가 되어서 비서관이나 보좌관에게 편하게 도장만 받고 오는 날도 있었지만, 사전협의가 안 되어 도장 받는 것을 구걸하러 다니는 날이 가장 고역이었다.


어느 퇴근길에는 사람들 머리 위에 이 입법 발의안이 떠다녔다. 좋은 뜻을 가진 정책임에도 함께 발의 할 동료를 모으지 못 해 결국 발의를 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국회에서 일하면서, 이렇듯 '좋은 뜻'을 가진 정책들은 많음에도, 아군을 구하지 못 해 세상의 빛을 받지 못 한 정책들이 많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국회에서 일할 때 가끔 어린이들이 견학을 오곤 했다. 한 선배는 아이들에게 '국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편드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바보 같지만, 국회에서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편드는 일이구나, 아이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는 다양한 편들이 모여 세상의 균형감을 만드는 공간이다.

시청으로 이직을 하고서는 '입법'이 아닌 '행정'으로 명목만 달라졌을 뿐이지, 하는 일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편드는 일에도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 사법, 입법, 행정. 이 세 개의 시선으로 국가의 다양한 편들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삼권분립'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모두 이 삼권분립 안에서 다양한 편들에 종속되며,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행정' 중에서도 가장 미시적인 시선인 기초자치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미시적인 시선이야말로 가장 최종적인 의미의 '편드는 일'이다. 그런 편드는 일이 나의 업(業)인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이론적으로는 삼권분립이라는 범주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 편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 원인에 대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꺼내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선 책의 시작이 바로 이 지점을 꼬집고 있다. 사랑을 기술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연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고 그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사랑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 다양한 편들이 있어야 다양한 시선들이 존중 받을 수 있고, 다양한 시선들이 존중 받아야 차별이 사라진다.


장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장애를 가진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는 날도 분명히 있었다. 교실 맨 뒷자리에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앉아 함께 수업을 받았던 날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특수반이라는 것이 생겼다. 교실 문은 닫혀있고,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목소리만 복도에 새어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은 특수반도 사라지고, 특수학교라는 것이 생겨 길에서 조차 장애인을 만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서른이 다 되어 시각장애를 가진 한 오빠와 친구가 되었다.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오빠는 최대한 지팡이도 안 짚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고, 자전거도 타고 다닌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내게 오빠는 자전거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오빠가 편했던 나머지 이따금 오빠가 장애를 가졌다는 것도 까먹을 때가 많았다. 오빠는 그렇게 자신을 대해주는 게 가장 편하다고 했다.


구별 짓는 것에서부터 차별이 시작된다. 오빠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당연하다고 여겨오던 것들에서, 내가 가진 권력을 발견하곤 했다.


때로는 내가 사는 세상은 그리 달라진 게 없는데, 내 생각만 달라져 지옥이 되는 날이 있다. 재밌게만 보던 스탠드코미디가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구토로 변하기도 하고,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페미니즘 영화가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인지’라는 것, ‘안다’라는 것은 이토록 세상의 밝기를 어둡게 만들어 나를 독방에 가두기도 한다. 나는 ‘알지 못 하는 것이 권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려 하지 않는 것도 당신이 가진 권력이 될 수 있다.

남편은 내가 SNS에 페미니즘 관련 글들을 올리면 매우 불편해한다. 내 눈치를 보며 "오늘 인스타에 올린 글 내려줬으면 좋겠어"라고 권유한다. 그럼 나는 조용히 그 글을 내리거나, "알았어"라고 대답하곤 삭제하지 않고 한동안 그냥 둔다.


나는 ‘안다’라는 말이 아직도 무거워서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듣기 거북한 차별의 말들을 들었을 때, 나는 대부분 그 어떤 대답도 안 하는 '할.많.하.않.'의 태도를 유지한다. 상대가 한 말을 그대로 미러링 하거나, 최대한 웃어주지 않는다. 그냥 골똘히, 당신의 구별이 어째서 차별이 되었는지를 상대가 곱씹어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나의 대답이 될 수 있고, 웃어주지 않는 게 나의 편드는 일이다.

되도록 나는 세상의 많은 편들에 함께 서보고 싶다. 애초에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나는 언제나 당신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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