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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Mar 07. 2021

애엄마가 처음 담배핀 썰

워킹맘다이어리

  

아이가 달려와 내 몸 위로 뛰어들어 외친다. 맘마! 눈을 떠보니 잠깐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자상한 우리 남편은 아침부터 어질러진 집을 청소 중이고, 나를 향해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라고 연신 할아버지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아침부터 잔뜩 짜증이 나서는 엄마는 엄마아니라는 둥 말도 안 되는 볼멘소리를 지껄였지. 브런치에 우울 가득한 글을 올렸더니 나를 아는 엄마들이 위로 해주고, 채팅방에서 재미로 올린거라고 별안간 아무 죄도 없는 애기엄마가 나에게 사과를 해주었다. 정성가득한 댓글을 달아주며 공감도 해주었다. 왜, 그런 날도 있는거 아닌가. 엄마도 엄마 하기 싫은 날. 난 그런 날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여하튼! 난 딱 그 정도. 적당한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싶은 거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 기운이 차려지지 않았다. 남편은 주말인데도 일을 하러 나갔고, 아이는 이렇게 해줘도 저렇게 해줘도 울었다. 아, 진짜 육아 너무 하기 싫다! 그러면서 베란다에 나가 잠깐 의자에 누워 멍을 때리고 있었다. 아이울음소리가 온 집에 울려퍼졌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잠에서 깼는데 아무도 없어서 엉엉 울면서 할머니! 할머니! 연신 할머니를 외쳤다. 그러면 할머니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베란다에서 나왔다. 할머니 뭐했냐고 하면 담배 폈다고 했다. 지금 담배가 있으면 베란다에서 담배를 펴보는건데.               

아이가 울어대는 통에 결국 얼마 있어보지도 못 하고 베란다에서 다시 거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냉장고에 있던 와인 한 병을 원샷했다. 내 목구멍을 타고 짜증이 후욱 하고 쓸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가 술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니까. 아주 잘 알아. 아이가 또 울어서 집에 있던 비누방울을 집어들었다. 내가 비누방울을 잡자 아이는 꺅! 환호하며 춤을 췄다. 후우- 하고 부는거야. 알았지? 그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랑 똑같이 후우-하고 입을 모아 비누방울을 불었다. 흔들지 말고 후우- 하고 불어야지. 나는 아이에게 계속 그 말만 되풀이했다.               

아, 담배 피고 싶다. 사실 담배를 한번도 펴본 적도 없으면서 별안간 담배를 피고 싶었다. 담배를 필 수 있는 기회들은 많았다. 내 중학교 때 첫사랑이랑 스무살이 되고 나서 맥주집에서 만났을 때. 그 녀석은 내 앞에서 담배를 폈다. 그게 꽤 멋있어보였다. 무려 내 첫사랑인데 방구를 뀌어도 멋있어보였겠지만. 그런 그 녀석에 나는 "나도 펴볼까?"라고 말했다. 그 녀석은 "너는 피지마. 뭐가 좋은거라고"라고 말했다. 짜식. 나는 그게 이상하게 나를 보호하겠다는 것처럼 들려서 피지 않았다. 내 대학동기 여자친구들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폈다. 길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계집애들이 담배냐고 핀잔을 들어서라고 했다. 남자동기들과 선배들은 쉬는 시간이면 자랑인듯 교수님과 맞담배를 피던데 왜 여자라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욕을 들어야 하는걸까.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직이었던 한 선배는 담배 한 대 폈다고 회사 전체가 시끄러웠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거다 우리는. 나는 그런 사회가 말이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나는 담배를 피지는 않았다.               

국회 인턴으로 일하다가 모시던 의원님이 국회의원직을 그만두던 날, 선배들과 모여 술을 마셨다. 여자선배는 내 앞에서 담배를 폈다. 너도 펴볼래? 이거 진짜 담배 같지도 않을걸? 나는 냄새만 맡았다. 내가 좋아하는 민트향이 났다. 나는 처음으로 담배가 맛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진짜 담배 필 뻔 했는데. 멘솔담배를 검색해보았다. 여러 종류의 민트향이 나는 담배들이 소개되었다. 편의점에 가서 멘솔담배 하나를 샀다.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향초 킬 때 쓰던 라이터를 들고 담배에 불을 지폈다. 입에 가져다 대고 한모금 빨았다. 야경을 구경하며 담배 두 개를 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우리 엄마가 이걸 알면 진짜 깜짝 놀라겠지. 히죽 웃었다. 우리 엄마는 평생을 규율 속에 사는 사람이다.               

담배를 피며 할머니의 마음을 상상해보았다.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베란다에서 담배를 폈을까. 이상하다. 베란다에서 매일 담배를 피던 할머니인데. 할머니에게선 담배냄새가 나지 않았다. 예상해보건데, 할머니는 담배 하나 피우고 멍하니 베란다에 서서 있었던거다. 울었다면 지금 나처럼 눈이 빨개져있어야했는데, 울지도 않았던지 아니면 울고 나서도 한참을 베란다에 서 있었는지. 할머니도 지금의 나 처럼, 울고 있는 아이에게 가고 싶지 않았던거다. 할머니도 할머니 노릇 하기 싫었겠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카르마를 자기 손으로 멈추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선언이고 도전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비혼선언,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언들을 한 그들을 응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내 카르마를 선택했다. 담배를 피우며 할머니의 마음을 상상해보듯이, 나는 내 삶을 가지고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막상 겪어보면 진짜 아무 것도 아닌거일지도 모른다. 상상하는 것처럼 슬프거나 우울하지만도 않는다는거다. 그냥, 사는거 다 똑같다.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기도 하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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