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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Mar 06. 2021

엄마는 엄마 아니야

워킹맘다이어리

아침 알람소리에 눈을 떴더니 카톡 알림이 여러개 와 있었다. 애기엄마들 채팅방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나보다. 맘카페 링크가 걸어져있고 썸네일에는 당신은 어떤 타입의 엄마일까요? 라고 써 있는거다. 엄마들은 서로의 타입이 맞다며 칭찬을 해주고 있었다.

난 어떤 타입의 엄마일까. 잠시 생각이 멈췄지만, 링크는 클릭하지 않았다. 아침수업을 듣는다고 일어났다. 샤워를 하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난 엄마일까. 딸에게 미안하지만 난 엄마가 아니야. 단지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너의 혈육일뿐. 내면아이니 뭐니 하면서 내 카르마를 극복하려고 애를 쓰던 때도 있었지만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거야. 적어도 나쁜 엄마가 되기 싫어서, 나쁜 엄마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는 내가 싫어서 한 일들만 있을 뿐. 난 엄마가 아닌거였다.

카톡방에 함께 있는 아기엄마들에게도 나는 너무나 무신경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이제는 서로의 이름과 아이의 이름, 동호수정도는 알고 지내는 사이. 중간에 서로 앞에서 육아고충들을 나누며 난데 없는 눈물까지 공유한 사이인데도 나는 오늘 서희네가 이사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상생과 협력을 해. 상생과 협력이 무슨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라는거야. 이런 사람이 애한테도 신경을 쓰겠어. 나는 진짜 엄마도 아닌거다. 토요글쓰기 아침수업을 준비한다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가 또 쪼르르 달려와 안아달라고 한다. 너는 이런 엄마도 아닌 사람이 뭐가 좋다고 안아달라고 하니. 눈물이 핑 고였다. 아이는 매주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 책상에 올라가 키보드를 부술듯이 누르고 밟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어떨 때는 실소라도 웃음이 나왔는데 오늘은 표정도 좋게 나오지가 않는다. 오늘 수업 쨀까. 아침 일곱시부터 너무 기대하면서 수업을 기다렸는데. 이 난리통에 나는 뭘 배우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걸까. 아침부터 곡소리처럼 우울한 생각과 한숨들이 튀어나왔다.

수업이 시작됐다. 나는 내 줌 오디오를 계속 음소거로 해두었다. 안 그러면 아이 울음소리 때문에 수업이 진행되기 어려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사실 매주 이런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 수업 뿐이겠는가. 아이와 함께하는 내 일상이 그랬다. 아, 오늘은 진짜 진짜 육아 하기 싫다. 어디 그냥 5분만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싶다. 그런데 아이아빠가 없으면 난 나갈수가 없다. 한번은 아이아빠가 야근하느라 늦게 들어왔는데 맥주가 진짜 너무 마시고 싶은거다. 아이를 겨우 재우고 잠깐 편의점에 간 사이에 아이가 깨서 아파트 복도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울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맥주 한 캔을 한 모금 하려고 입이 맥주캔에 닿을랑 말랑. 아이는 자기 싫다고 뻐팅기며 몸을 털어댔다. 귀여운 외모에 속지 마시라. 우는 소리만 들어도 사람 미치게 만드니까. 아이 울면 따라 우는 엄마의 모습은 실은 모성애 때문이 아닐 수 있다. 나 같은 엄마는 입술을 꽉 깨물고 이 자리를 그냥 뜨고 싶어 우는거니까.

아침부터 우울한 소리만 하는 이런 날은 남편과 특히 조심해야한다. 오늘 같은 날 나 건들면 진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아뿔싸. 건드렸다. 소리 지르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이 꾹 참다가 한마디 던졌다. 난 야근했잖아! 그래도 여보는 하고 싶은거 다 하잖아!

야근? 그래, 야근. 너는 야근이라는 단어 속에 숨기라도 하지. 나는 단 5분도 못 쉰다. 하고 싶은거는 글쓰는걸 이야기 하나보다. 나한테 글이 뭔줄 알아? 내 숨통이야, 숨통. 당신이 그걸 알기나 해. 사치가 아니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쿵 저러쿵. 글을 쓴다고 구구절절 써놓은 것들이 실은 다 그저 그런 이유인 것이고, 내가 진짜 글을 쓰는 이유를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난 살려고 글을 쓰는거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아, 이런. 오늘 또 육아 이야기를 하며 징징댔다. 진짜 징징대기 싫었는데. 징징대는 것 처럼 보이기 싫었는데. 나는 어떤 타입의 엄마일까. 네, 어쩌다 엄마입니다. 엄마입니까?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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