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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Mar 03. 2021

다프트펑크 해체 나만 몰랐나

일하면서 노동요로 들으려고 유튜브에서 다프트펑크를 검색했다. 댓글들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네? 다프펑크가 해체 됐다고요? 댓글에는 다프트펑크 해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정말로 '다프트펑크 해체'가 연관검색어에 뜨는 게 아닌가. 놀라운건 이걸 이제야 안 나다. 나로 따지면,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다프트펑크 노래로 태교를 하기도 했고, 출산 후에도 회복을 위해 복대를 차고 병원 복도를 걸었다. 잊을만 하면 검색해서 듣는 음악들. 듣고 또 들어도 다프트펑크의 음악은 풍요롭다, 다채롭다라는 표현이 너무나 어울린다. 


실검 돌려내 


포털사이트에 실검이라는게 없어지면서부터 이제는 정말 모르고 넘어가는 이슈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세상에 대해 무심할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나 같이 도태되는 사람들을 위해 실검을 대체할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정보화 시대라는 것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작동 될지 모를 일이다. 정보라는 것이 누군가의 권력이자 권위가 될 것이다. 세상이 또 얼마나 변하려고 그러는걸까. 


요즘 옛날 노래를 자주 찾아 듣고 있다. 특히 옛날 한국발라드곡들에 나오는 사랑은 어찌나 치열했고 절절했는지. 옛날에 듣던 사랑노래에 그 때 그 시절 내 흑역사도 함께 소환된다. 뮤직비디오만 찾아 보아도 건달들에게 잡힌다거나, 마약밀수범이거나, 누구를 죽이거나 지금 보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의 나열이다. 그런데 그 때는 그게 그렇게 멋있었던 거다. 지금 발라드를 들어보면 사랑이 아닌 노래도 많을 뿐 아니라, 저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 사랑노래도 많다. 


클럽음악은 또 어땠던가. 전 클럽죽순이, 현 애엄마인 나의 피셜로 본다면, 물론 이것도 아이 낳기 전 일이니 4년 전일이다. 4년 전에 오랜만에 남편과 클럽을 갔는데 하나도 신나지 않는거다. '요즘 애들은 이런걸 좋아하는구나.' 주변을 둘러보아도 춤추는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흐느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이렇게 췄어! 와, 라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나 지금 꼰대된 거지?



세상이 그렇게 또 변한거다

세상이 그렇게 또 변한거다. 10년 전일 밖에 되지 않는데 내가 듣고 춤추던 음악들은 벌써 올드스쿨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지금 나오는 음악보다 이제는 올드스쿨이 된 음악이 더 좋은걸. 어제는 또 뭘 들었냐면, 이제는 해제 된 카라의 노래를 들었다. 쉐킷, 쉐킷을 외치며 팔 하나를 들고 미친 여자처럼 혼자 휘적였다.  내가 좋아했던, 내가 사랑했던 음악들. 이제는 청춘이라고 부르고 마는 시절. 나는 그것들을 향유하느라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겨를 없이 또 한 시대가 지나간다. 내 아이의 삶을 관통 할 시대는 또 어떤 모습일까.


글쓰기수업 참새방앗간 과제를 매일 하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내 인생을 관통하는 가치 세 가지였다. 또 뭘 써서 내야할까 고민하다가 자유, 상생, 협력 세 가지를 써서 제출했다. 가족들에게 오늘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가 무슨 공익캠페인에 나오는 말 같다고 비웃음을 당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웃겼다. 자유, 상생,협력. 배꼽을 잡고 뒤로 넘어가며 웃었다. 나는 또 가족들에게 반문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냐고. 엄마는 고민하지 않고 가치 세 가지를 술술 이야기하고, 아빠는 한참을 고민하다 신중하게 하나씩 말한다. 


우리들은 같은 시대를 지냈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가치들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더욱 더 개인화 되고, 가족을 버리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상생과 협력을 말하는 나도 참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답답한 사람인거고 아집이 있는거다. 그러니까 오래 된 노래에 아직 취해 세상이 어찌 흘러가는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러분, 그냥 다프트펑크 음악을 들어봐주었으면 한다. 얼마나 띵곡인지! 그냥 그것들을 향유하는 게 좋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 비웃음을 당할지언정 정답은 없다는 것. 각자가 향유하는 것들을 말하고 공유하는 사회. 그것이 광장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 광장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나는 조금 서글플 뿐이다. 싸이월드를 쓸 때가 좋았다. 내가 도토리로 산 플레이리스트를 내 홈피에 들어와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았다. 내 뮤직플레이리스트를 나는 '자유'라고 부르고, 그것들을 듣는 사람들이 있는 미니홈피를 상생과 협력이라고 여긴다. 


이제는 만연한 엘리트주의로 인해 스피커들만이 그것들을 향유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쉬운 것이다. 그놈의 브랜딩, 퍼스널 브랜딩. 나도 어디가서 기업의 브랜딩을 관리하는 사람이라 하지만, 이제는 좀 넌덜머리가 난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우위를 따지지 않고 자신이 향유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어가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또 모르겠다. 이것 또한 내가 좋아하던 시절에 취해있느라 세상이 또 나를 왕따시키고 저들끼리 민주사회를 꾸리고 살고 있는지. 있다면 이 워킹맘에게 한 수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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