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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Jun 22. 2024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파스칼 메르시어, <자기 결정>




행위와 사고와 감정과 소망에 있어서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것을 자기 결정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P16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자신에 관해 결정하는 것의 한 형태입니다. P50
자신을 안다는 것은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 그 두 가지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P70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이자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 교수의 2011년 그라츠 아카데미 강연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자기 결정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는 내용으로 세 가지 강의를 통해 설명한다. 1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가벼운 책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 도움을 주는 마법의 단어들이 흩어져있었다.


자기결정의 삶은 '강제가 없는 삶'이다. 자신의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인식'해야하며, 경험에 대한 '평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사람 즉, '자아상'을 가지게 된다. 자기 결정에 실패하는 이유는 자아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이고 의식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교양'을 가져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막내로 태어나서 스스로 결정해본 것이라고는 배고플 때 라면을 끓여 먹었던 것이 전부였던 아이에게 '독립적인 삶'은 다른 세계였다. 열꽃 가득했던 시간이 지나고 열아홉, 공모전을 통해 다른 세계로 항해하는 배를 만들었다. 넘지 못했던 바다가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만화 <원피스>의 고잉메리호를 모티브로 삼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삶에 있어서 최초이자 기념비적인 '자기 결정'이었다.


혼자 삶을 꾸려나가는 매 순간이 결정의 순간이었다. 간단한 식사 결정부터 삶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큰 결정까지. 결정이 가장 곤욕스러웠던 부분은 '인간관계'였다. 잘못된 결정은 도미노처럼 일들을 어그러트렸으며 부메랑처럼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상황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렇게 자기결정의 시대는 지나고 자기기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어."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무엇일까. 내 자아상은 '강단 있는 사람' 이었다. 결정을 끝까지 지지하는 사람. 거짓말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사람. 나의 자아상, 고잉메리호는 현실이라는 파도에 반파되었다. 인간관계에 지친 사회초년생은 파도에 부서진 배 파편에 몸을 겨우 의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자기결정의 문화를 '공상적 유토피아'라고 말하는 문장을 읽고 간신히 잡고 있던 배 파편마저 놓을 뻔했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결정의 삶을 살기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작가는 '도덕적 친밀감'을 언급하며 타인의 평가는 늘 왜곡되어있으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으라고 신신당부한다. 위로받았다. 부서진 파편들을 모아서 배를 만들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항해하고 있었던 '문화'였다. 작가는 '문화'라는 바다의 조류와 풍향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배가 부서진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교양'이라 한다. 교양은 문화 속에 있는 타인의 것을 낯설다고 인식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교양을 쌓는다면 침몰하지 않는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다는 꿀팁까지 알려준다. 덕분에 다른 문화를 항해할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이제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사고의 측면에서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책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글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기 결정>과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지역아동센터에 후원하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해를 넘어서 체험을 통해 더 넓은 문화를 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덕분에 작은 배에 '교양'이라는 돛을 달고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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