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뜻뜻 Jun 15. 2024

후회로 가득 찬 당신에게.

매트 헤이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하고 싶다'는 건 재미있는 말이야. 그건 결핍을 의미하지. 가끔식 그 결핍을 다른 걸로 채워주면 원래 욕구는 완전히 사라져. 어쩌면 넌 무언가를 원한다기보다 무언가가 결핍된 것일지 몰라 P94
어떤 후회는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단다. 가끔은 그냥... 완전 개구라야 P100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P258


"누가 더 불행한지 겨루고 싶다면 나도 꽤나 엿같이 살고 있어" 주인공인 노라는 35살 여성이다. 어릴 때 수영과 피아노를 곧 잘했으며 동물을 좋아했던 그녀는 철학을 전공했다. 한시도 종잡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결혼 식 이틀 전에 파혼하게 되고, 12년 동안 일한 기타판매점 '스트링 시어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려묘 볼테르가 곁을 떠나게 되고 이윽고 자신의 가능성을 배제한 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도달하게 된다


소설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또는 영화 <소울>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차이점이라면 스쿠루지와 조(놀랍게도 소설에서 밴드를 하는 노라의 오빠와 이름과 직업이 같다)는 삶에 집착이 강한 사람이지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주인공 노라는 삶에 집착이 없는, 잔혹한 현실에 압사당한 사람이라는 것이 차이이다.


책은 과거, 현재, 미래 시제 중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를 좀 먹는다. 그것은 곰팡이 핀 욕실 타일과 같아서 벗겨내고 벗겨내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롯이 '현재'를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다수의 선택지 앞에서 늘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선택지 하나하나가 모두 후회와 불안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요원하다.


그렇다면 현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이 책은 <월든>으로 유명한 '소로'의 말을 통해 전달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이다.” 소로처럼 바라보는 각도를 변화시키며 현재를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힌두교 경전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이다.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에서 수백개의 다른 삶을 살아보며 삶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켜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하고싶어 하는 것은 '친절'을 베푸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후회가 가득한 삶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므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친절'은 죽음과 절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도와준다. 친절은 빈껍데기뿐인 삶에 사랑을 샘솟게 하고, 버티지 못하고 쪼글쪼글 시들어 가는 삶에 물을 준다. 톨스토이는 친절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친절은 자기복제하듯 스스로 다른 친절을 만들어내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아침에 거실로 햇살이 쏟아진다. 요즘 같은 더운 여름철에는 햇살이 달갑지 않다. 고심해서 선택했던 흰색 커튼은 2차대전 프랑스가 설치한 마지노선처럼 무용지물이다. 어디서 잘못 된 건지 소로처럼 한참을 바라보다 지인의 '친절'로 암막 커튼을 새로 설치했다. 그러자 거실에 은하수가 보일 정도의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아마 인생에서의 '선택'도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신이 아니므로 태양을 없앨 수는 없다. 우리 집 거실에만 햇살이 비치는 것은 아니므로 속상해하지 말자. "인생은 이해하는 게 아니야. 그냥 사는 거야"라는 노라의 말을 기억하자.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커튼을 사용할지에 대한 ‘선택’이다. 멋모르고 흰색 커튼을 달았던 것처럼 '때로는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기 마련'이니깐 후회하지말자. 삶에서 달아나지 말자. 물론, 암막 커튼을 처음부터 달았으면 좋았겠지만 뭐 어쨌든 결국 햇살은 가렸지 않은가. 인생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이전 08화 내일의 음악, 재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