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뜻뜻 Jun 29. 2024

우린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이철승, <쌀 재난 국가>







서구는 밀로부터 자유로웠지만, 동아시아는 쌀에 ‘갇혔다’는 것이다. P27



<불평등의 세대>이어서 출간한 책이다. 전작이 ‘왜 불평등으로 고통받는가’ 질문에 분석이라면 이 책은 불평등이라는 것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분석한 책이다. 이철승 교수는 불평등의 기원을 '쌀, 재난, 국가'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서구인이 아닌 동아시아인, 더 나아가 한국인의 기저에 깔린 불평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하였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불평등의 이유가 바로 '쌀'에 있다는 것이다. 쌀은 타 작물에 비해 인력과 품이 많이 들어간다. 밭을 갈아서 논을 만들고 물대기로 물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리고 모내기로 벼를 한 단씩 심어야 한다. 농사는 날씨가 중요하므로, 이 모든 일들을 짧은 기간 안에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공동체의 도움이 필수가 되었다. 바로 품앗이와 두레의 탄생 배경이다.


10월. 선선한 바람이 불 때마다 벼를 수확하지 않은 들판은 황금물결이 일었다. 곧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에, 누가 먼저 수확할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올봄에 모내기를 도와준 영식이네 아저씨가 콤바인을 몰고 굴다리를 지나갔다. 이를 본 아버지는 서둘러 창고에 있는 콤바인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마치 비밀 전략을 주고받은 듯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겨진 농협톤백을 빠르게 펴기 시작했다.


쌀농사만 30년을 지어 온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다. 품앗이와 두레는 농경사회에서의 생존 필수 요소다. 이렇게 함께 생산한 쌀은 공동 분배가 아닌 개인의 소유가 되기에,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이 수확을 먼저 하면 농협 수매와 이모작이 늦어질 수 있으므로 괜스레 조급해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내용은 바로 다음 내용이었다.


쌀이 불평등의 원인이 된 것은 바로 생산이 아닌 '수확'이다. 함께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량이 다르면 비교를 통한 ‘질시’가 발생한다. 마을 발전을 위해 기술의 표준화와 평준화를 꾀하지만, 비즈니스적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작가는 이를 모순적 ‘협동과 경쟁의 문화’라고  말한다. 이 문화는 농경사회에서 도시사회로 시대와 장소가 변해도 이어져 왔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60년대 1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위계질서 아래 농경사회에서 배운 '나이'의 중요성을 '연공제(호봉제)’로 풀어냈다. 그렇게 숙련도가 아닌 나이가 많고 연차가 높을수록 급여를 높여주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먹을 수 있는 파이는 정해져 있었지만, 식탁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는 곧 특정 계층의 소외로 이어지며 불평등의 단초가 되었다.


동아시아 국가는 가뭄과 홍수 같은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만 해왔다. 쌀을 기반으로 한 씨족사회의 부양자는 국가가 아니고 '가족'이었기에 복지체계는 구휼로 충분했다. '쌀'이 현재의 불평등을 야기했고, '재난 대비 국가'는 사회적 안정망 없이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금의 부동산 문제는 쌀을 재배한 토지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다. 부동산이. 국가가 하지 못한 '사회보험'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과 연공제. 이것은 과연 공정한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가 말한 것처럼 능력보다 '운'으로 자본주의 정점에 있는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회 약자층이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구휼에 그친 재난형 국가가 아닌 작가의 말처럼 연공제 폐지,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는 ‘복지형’ 국가가 필요해 보인다. 더 이상 벼농사 위계 구조와 쌀에 갇혀있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전 10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