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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Sep 20. 2024

시험지엔 윤미뿐.

소설이 돼볼게-



문제) 사랑에 대해 기술하시오.


동희는 흰 종이에 한 줄만 적힌 시험지를 받아 들고 당황했다. '생활 속 철학'이라는 생소한 교양 과목을 수강한 것이 문제였다. 후배 윤미가 학점을 쉽게 얻을 수 있다며 추천했던 과목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될 줄이야. 시험 문제는 범위에도 없었고, 교수가 졸음 쫓는다고 우스갯소리로 했던 첫사랑 이야기가 수업 중 들은 유일한 관련 내용이었다. 게다가 서술형 시험이라는 건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동희는 문득 이 수업을 듣게 된 진짜 이유를 떠올렸다. OT에서 만난 후배 윤미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그는 '사랑은 윤미다'라는 다소 진부한 문장으로 시작해 글을 써 내려갔다. 




시험이 끝나고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마지막 수업 때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감기로 휴강했다가 교수의 열정으로 다시 진행된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지루해하는데, 교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병이 사실은 상사병이라고. 그러더니 기말고사 채점 중 한 학생의 답안 덕분에 옛사랑이 생각났다며, 그 학생에게 A+를 줬다고 했다. 교수가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동희는 뒷자리에서 윤미와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교수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험지를 읽기 시작했다.


"글쓴이 국문학과 김동희, 사랑은 윤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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