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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Oct 30. 2024

해부학과 생리학.

소설이 돼볼게-



이 모든 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내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이했던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여느 신입생처럼 몸 안에 헬륨 풍선 하나를 달고 있어서,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풀거리고 있었다.

“너 어제 소식 들었지?”

생리학 기말시험을 마치고 기숙사로 향하는 길, 서주가 공중에 살짝 떠오르는 내 발을 자기 발로 살며시 눌렀다. 서주는 늘 그랬듯, 별것 아닌 일도 마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처럼 말하곤 했다.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반쯤 가린 채 시큰둥하게 실눈을 떴다. 서주는 내 표정을 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진우 선배가 다음 주에 결혼한대.”

내 몸속 풍선이 펑! 소리를 내며 쪼그라들었다.



지난 학기, 해부학 실습실에서 3D 해부학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알려주던 그와 처음 마주쳤다. 그때부터 모니터 속 골격과 근육 대신, 해병대를 전역한 그의 단단한 골격과 근육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후 우리는 주사기와 알콜솜처럼, 수액세트와 카테터처럼 늘 함께했다. 실습실에서 배운 무균술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그를 좋아했다. 어느 날, 그가 환자의 호흡음을 들을 때처럼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자신의 가장 연한 부분을 말해주었다.

“나 사실.. 남자 좋아해.”

그는 인체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마음의 기능은 전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말에서 구조를 배우는 해부학과 기능을 배우는 생리학의 차이를, 아직 배우지 않은 그 미묘한 차이를 떠올렸다.


서주의 말이 끝나자, 나는 생리학 시험을 망친 것처럼, 우리 모두 마음의 기능을 전혀 몰랐던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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