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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Oct 28. 2024

잘 수 있는 권리.

소설이 돼볼게-


그는 이불 속에서 회백색 벽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시계를 본다. 시침과 분침이 시계에 새겨진 ’삼십 주년 근속 기념‘ 글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문 밖은 어스름이 대출 빚만큼 남아 깜깜하다. 몸과 마음이 먼지처럼 가라앉아서 일어날 힘이 나질 않는다. 한참을 창문 밖 어둠을 응시한다. 언제쯤 잠들 수 있을까. 며칠째,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잠듦과 깨어남을 반복하고 있다.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어도 허사였다. 그는 죽음이 영원한 잠이란 걸 알기에, 수면을 사치라 여겼던 지난날들을 후회했다.




그에게는 헌법이 보장한 수많은 권리가 있었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을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하지만 강제 ‘희망 퇴직자’가 되자 그 모든 권리는 불면의 밤처럼 허망하게 스러졌다. 이제 퇴근할 회사도, 돌아갈 가족도 없다. 서른 해 동안 쌓아온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시시포스의 바위보다 무거운 불면을 신에게 호소했다. 그 어떤 권리도 필요없으니, 오직 잠을 잘 수 있는 권리만 달라고. 며칠 뒤. 그의 장례식장에는 근속패가 위패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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