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좋아하면 일단 해봐야지!'라는 모토로 살아가는 호기심 많은 직장인. 어린 시절 <바람의 나라>에 푹 빠져 살았던 소년은 이제 동경하던 게임회사의 시니어 게임 기획자가 되었다. 게임, 캠핑, 독서, 글쓰기, 롱보드까지, 좋아하는 것들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름은 하나지만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듯한 다채로운 삶을 꿈꾸며, 오늘도 새로운 관심사를 발견하고 도전하는 일상을 즐기는 중이다.
"유년 시절의 나는 가벼운 호기심과 가벼운 삶 속에서 행복하게 부유했다."
"취미가 단순한 오락이 아닌, 내 삶의 근간이자 쓸모였다."
나의 취미는 호기심이 만들어낸 여정이었다.
나는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품고 있다. 처음에는 가벼운 날갯짓 같았던 이 호기심이,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운 책임으로 변해갔다. 알면 알수록 그것들에 대한 책임은 깊어졌고, 그럼에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순간의 설렘만은 여전히 가벼웠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호기심은 깃털처럼 가볍게 시작되었다. 나는 번창(昌)하고 안녕(寧)한 고장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곳은 온통 산과 논 그리고 밭으로 둘러싸인 세계였다. 이 세계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움트고 자라났다. 매일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늘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따스한 봄기운에 무른 흙을 뚫고 나온 새싹은 어린아이의 걸음처럼 조심스러웠다. 무성한 여름볕 아래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물방개와 소금쟁이는 물결을 일으키며 춤을 추었다. 가을을 품어서 새빨갛게 익은 대추와 감은 마치 태양의 선물 같았다. 순백색 함박눈이 겨울 이불처럼 덮인 산과 들은 고요한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이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나는 이 발견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세상을 알아갈수록 호기심도, 삶도 점차 무거워졌다. 봄날 움튼 생명들은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했다. 땅속에서 겨울을 견뎌낸 마늘은 연녹색 잎을 틔우며 농업용 비닐 아래에서 부모님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들의 생명력은 강인했지만, 동시에 연약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비닐을 쓰다듬으며 부모님은 그 밑에 숨 쉬는 생명들을 긴히 보살폈다. 부모님에게 나의 자연에 대한 호기심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을 업으로 하는 부모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나는 새롭게 알게 된 것들에 단순한 즐거움을 느꼈지만, 부모님은 알게 된 것들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나의 호기심은 더 이상 순수한 즐거움만이 아닌, 책임이라는 무게를 동반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생명들을 책임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 부모님의 무거운 책임 덕분에 누나들과 나는 바깥 세계를 가볍게 탐험할 수 있었다. 탐험의 시작은 학업을 위해 이사한 대도시의 아파트였다. 그곳은 마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나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만큼이나 경이로웠다.
붉은 닭 모양 로고가 그려진 회백색의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벽돌 탑을 연상케 했다. 단지 안에는 플라타너스로 둘러싸인 놀이터가 있었다. 그 옆 복합 상가건물에는 달콤한 과일 향기를 내뿜는 대형 마트와 형형색색의 영화 포스트가 붙은 만화 비디오 대여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면 소재지에 있던 학교 놀이터나 동네 슈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화려했다. 누나들과 나는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놀이터에서 모래로 두꺼비집을 수없이 만들었고, 만화 비디오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끝없이 빌려 보았다.
도시는 놀이터와 슈퍼 외에도 나의 고장과 다른 점이 있었다. 나의 고장은 날씨에 민감해서 겨울을 제외하고는 늘 긴장 상태에 있었다. 비가 내린다면 서둘러 이랑에 모종을 심었고, 바람이 분다면 서둘러 논밭에 농약을 뿌렸다.
반면 도시는 농사를 짓지 않는 이웃집 박씨 아재처럼 늘 여유롭고 느긋했다. 그저 자연의 변덕스러운 공격에도 담배 재를 털며 싱긋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그랬다. 도시는 무거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미세한 책임감으로 잠시 무거워졌던 나의 호기심은 도시가 주는 묘한 여유로움으로 인해 다시 태생처럼 가벼워졌다.
도시 생활에서 첫 번째로 나의 호기심은 자극한 것은 지하철이었다. 당시 아파트 근처에서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었다. 궁금증에 사로잡혀 어머니께 물으니, 땅 밑으로 다니는 기차라고 설명해 주셨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땅 밑 기차는 아홉 살 아이의 상상력 속에서 마치 로봇처럼 조립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공사장 출입 통제 아저씨가 까만 내 얼굴을 기억할 정도로 자주 들락거렸다. 공사장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깊은 구덩이는 마치 땅속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 같았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깊은 구덩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기서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어.' 공사가 완료되면 반드시 지하철을 타보겠다는 결심은 새로운 호기심에 밀려 서서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두 번째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누나들의 교육을 위해 구입한 컴퓨터였다. 당시 꽤 고가였던, 창문이 아흔여덟 개나 설치된 최신식 컴퓨터였다. 설치 기사 아저씨는 부모님이 건넨 출장비를 꼼꼼히 세어가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들을 몇 개 설치해 주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컴퓨터를 마주한 열두 살의 나는 마치 처음으로 탄산음료를 먹은 아기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딸깍' 누르면 마법처럼 파란색과 하얀색 창문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뿐만 아니라, 괴물을 눈사람으로 변신시키는 게임과 스키를 타며 묘기를 부리는 게임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재미의 세계였다. 내 눈은 모니터의 빛을 그대로 담아 반짝였다.
그렇게 컴퓨터 게임에 대한 호기심은 유년 시절을 모두 차지하며 내 인생의 방향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게임이 진로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면서 태생처럼 가벼웠던 호기심은 다시 무거워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유년 시절의 나는 가벼운 호기심과 가벼운 삶 속에서 행복하게 부유했다. 호기심은 봄날의 새싹처럼 자연에서 싹트기 시작해, 만화책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로, 지하철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서 마침내 컴퓨터 화면 속 가상 세계로 이어졌다.
이 여정은 마치 시소를 타는 듯했다. 때로는 공중을 날듯 가벼웠다가, 때로는 땅으로 가라앉듯 무거워졌다. 그러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게임이 직업이 되면서 삶의 무게추는 서서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무거움 쪽으로 기울었다.
어른이 되면서 나는 이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나를 자유롭게 했던 호기심은 이제 직업이라는 무게를 지고 있었고, 가벼웠던 삶은 책임이라는 무게로 깊어져 있었다.
취미가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이 되었을 때, 행복은 내가 직접 심고 가꾼 식물의 열매와 같았다. 그 열매는 달콤한 꿈과 쓴 현실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첫 직장에서 일 년은 나침반 없는 항해와 다름없었다. 매출을 우선시하는 회사 분위기 속에서 끝없는 업무의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을 만드는 일에 대한 열정이 서서히 바래갔다. 더 이상 게임이 싫어지기 전에 이 험난한 항해를 마쳐야겠다고 결심했다. 짧은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성과를 내며 느낀 행복감은 봄에 핀 꽃처럼 아름다웠지만, 그 기쁨은 여름 소나기처럼 짧았다. 회의실의 무거운 공기, 복도에서 오가는 은밀한 눈빛과 귓가에 맴도는 속삭임이 나를 둘러쌌다.
조직 내 정치는 나를 뱀처럼 휘감았고, 나는 이 복잡한 인간관계의 게임에서 패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시가 이어졌다. 퇴사하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에서는 퇴사를 종용했다. 한때 단단했던 내 마음의 뿌리가 무참히 잘려 나갔다. 지난한 시간을 견뎠지만, 결국 권고사직이라는 쓴 열매를 삼켜야 했다.
그 후 나는 두 평 남짓 자취방 안에서 한 평도 차지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몸을 둥글게 말아 쓰임을 다한 축구공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현실과 나 사이에는 기름층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어중간한 거리가 생겼고, 그 거리감에 현기증이 났다.
샤워를 위해 들어선 화장실 거울 속 얼굴은 누렇게 뜨고 수염이 덥수룩했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연민과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민은 사라지고 경멸만이 남아 끝없는 자책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자책은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다. '더 잘해야 했는데.' 나의 엄격함이 만든 덫은 사방에 깔려있었고, 그 덫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녀마저 예외는 아니었다.
내게 깊게 스며든 우울감과 자괴감은 덫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은 괴로웠지만, 그녀만큼은 나의 일그러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길 희망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기대는 비현실적인 실망을 낳았고, 엄격함의 덫을 밟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이별을 고했다.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사랑했던 게임과 사람은 모래가 파도에 휩쓸리듯 내 곁을 떠나갔다. 충만함은 모두 빠져나가고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다. 나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고,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수렁에 빠진 듯했다.
죽음이 곁에 바싹 붙어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는 흐릿해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석양이 지는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삶을 마감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양화대교를 건너며 한강의 검푸른 물결을 내려다보았고, 부모님께 남길 편지를 몇 번이고 고쳐 썼다.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죽음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새로 생긴 아웃도어 매장의 유리창 너머로 캠핑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텐트 앞 입간판에는 '자연에서 즐기는 휴식'이라는 문구가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놓여 있었다. '자연'이라는 단어가 오랜 친구처럼 낯익었다.
호기심에 이끌려 매장으로 들어가 작은 텐트를 구입하고 가평으로 향했다. 숲이 울창한 캠핑장에서 나무 사이를 빠르게 뛰어다니는 청솔모를 만났다. 그곳에는 내가 어릴 적 만났던 세계가 그대로 있었다.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봄날의 따스함은 애틋했으나, 곁에 머무는 여름의 열기에 안도할 수 있었다.
여름날 맹렬히 자라나는 나무와 꽃들 사이에서 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살렸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초록빛 논과 갈색 밭,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과 춤추는 곤충들, 붉게 타는 해와 아지랑이로 감실거리는 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향한 나의 호기심과 책임감.
나는 기어코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수렁에 파묻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게임'과 '자연'을 조심스레 손으로 들어 올려 묻은 흙을 털어냈다.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의 호기심 덕분이었다. 나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것도 호기심이었고, 다시 삶으로 이끈 것도 호기심이었다.
지난한 시간을 겪으며 인생의 한 뼘에서 나를 발견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취미는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내 삶의 근간이자 쓸모였다.
나의 취미인 캠핑을 통해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들은 애초에 잊어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의 세계였고 나의 토대였으며 나의 본질이었다. 나는 다시 게임 회사에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캠핑과 게임 그리고 나의 다른 취미들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이 풍요로움은 내 마음속에 견고한 성벽을 쌓아,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렇게 나에게 취미가 가져다준 이 값진 쓸모들을, 취미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어린 시절의 마음을 채우던 것들, 그 빈자리를 메우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