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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뜻뜻 Dec 11. 2024

나의 연민

[#게임] 텅 비어 있던 마음이 채워지고

+브런치북 소개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린 시절의 마음을 채우던 것들, 그 빈자리를 메우던 이야기.


"마음의 빈 공간은 그대로 둔 채, 몸만 쑥쑥 자라갔다."

"그렇게 이방인에게 친구가 생겼다."



[#게임] 나의 연민 : 텅 비어 있던 마음이 채워지고

    어스름한 저녁, 이 층 아파트 거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소파의 낡은 무늬가 더욱 선명해 보인다. 낡은 소파에 세 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맏이인 큰누나가 수화기를 들고 있다. 전화선이 꼬여 있어 누나는 가끔 손으로 선을 펴기도 한다.


    부모님의 목소리에 세 남매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이내 어두워진다. 멀리 있는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는 순간의 안도감과, 곧이어 찾아오는 그리움이 뒤섞인 표정이다. 통화가 끝나자 누나들은 방으로 향하고, 나는 소파에 그대로 웅크린 채 남는다. 어린 마음속에서 외로움이 서서히 피어오른다.


    여덟 살의 나는 번창하고 안녕한 고장에서 대도시로 이사 왔다. 익숙한 풍경과 사람들을 뒤로하고,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농사일 때문에 함께 오지 못했고, 나와 누나들은 할머니와 함께 도시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할머니의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다. 마음의 빈 공간은 그대로 둔 채, 몸만 쑥쑥 자라갔다.


    학교 도서실의 낡은 책장 구석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발견했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로빈슨처럼, 나 또한 이 거대한 도시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도시에 표류한 로빈슨'이라고 생각하며, 이 낯선 환경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뒤편, 잿빛 건물들 사이에 숨은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나무 벤치 위로 등나무 덩굴이 초록의 장막처럼 무성히 뻗어 있었다. 여름이면 보라색 등꽃이 종 모양으로 매달려, 달콤한 향기가 그득했다. 나는 그곳을 나만의 아지트로 삼았다.


    탐험의 시작점을 알리고자, 하굣길에 주운 하얀 비닐봉지를 찢어 만든 깃발을 등나무에 매달았다. 등나무 벤치를 나침반 삼아 동서남북으로 나 홀로 탐험을 시작했다. 하교 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아파트 계단을 뛰어내렸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아래층 아주머니 귀까지 들어가서 살살 다니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발걸음은 아파트 단지 동쪽을 향했다. 동쪽에는 거인처럼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그곳은 내가 사는 낮은 아파트와 달랐다. 각 아파트 입구마다 경비실이 있어, 마치 보물 상자를 지키는 파수꾼 같았다. 경비실의 경비 아저씨들은 하나같이 만화 캐릭터처럼 특색이 있었다. 뒷머리가 반들반들 벗겨져 앞머리만 기른 대머리 아저씨, TV를 보며 욕을 중얼거리는 욕쟁이 아저씨.


    아저씨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넬 때마다 눈가에 주름을 잔뜩 만들며 환하게 웃어 주셨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넌 이방인이 아니야'라는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동쪽으로 탐험 갈 때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차가운 잔에 조금씩 따뜻한 물을 부어 채우는 것처럼, 텅 비어 있던 마음이 채워지고 있었다.


    아지트 기준으로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시골에서 익히 보아왔던 전통시장이 있었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엔 아파트 단지의 경계를 짓는 녹슨 철문이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철문을 나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파트의 규칙적인 배열과는 대조적으로, 작은 건물들이 퍼즐 조각처럼 불규칙하게 맞물려 있었다.


    시루에 담긴 콩나물을 파는 식료품점, 활짝 열린 현관문 너머로 칠판이 보이는 산수학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는 피아노학원, 그리고 간판 대신 유리문에 글자를 음절 단위로 커다랗게 붙여 놓은 오락실. 그 순간, 내 시선은 어느 한 곳에 고정되었다. 유리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게임기들의 반짝임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문을 열자, 오락실 안은 매캐한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벽면에는 게임 캐릭터들이 패기 넘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벽면을 따라 좌우로 늘어선 오락기에서는 격투 게임의 함성과 슈팅 게임의 총성이 뒤섞여 울려 퍼졌다. 게임기 화면마다 'INSERT COIN'이란 글자가 깜빡이며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게임기에는 덩치 큰 아저씨가 작은 의자에 앉아서 조이스틱을 부서질 듯 조작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쌓인 백 원짜리 동전 탑이 진동에 맞춰 흔들렸다. 동전 교환소에는 내 또래 아이들이 구겨진 천 원짜리를 내밀며 "아저씨 바꿔주세요"를 연발했다.


    낯선 공간에 발을 들이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호기심이 그 자리를 채웠고,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에 잡힌 세 개의 동전이 차갑게 느껴졌다. '과자를 사 먹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눈앞의 화려한 게임 화면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락실 게임을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간 내가 알던 '게임'이란 단순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멀리 날리거나, 개구리를 잡아다가 달리기 시합을 시키거나, 축구공을 힘껏 차는 것뿐이었다. 즉, 몸을 움직여야만 할 수 있는 놀이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완전히 달랐다. 알록달록한 조이스틱을 움직이면 화면 속 캐릭터가 마법처럼 따라 움직이는 게임에 흠뻑 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처음 했던 게임은 우리 동네서 '뽀글뽀글'이라 불리던 <버블버블(Bubble Bobble)>이었다. 귀여운 공룡 캐릭터가 입에서 비눗방울을 내뿜자, 괴물이나 유령들이 그 안에 갇혔다. '펑' 소리와 함께 방울이 터지면 괴물도 사라졌다. 미숙한 조작으로 금세 게임이 끝났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날 이후 하교하면 내 발길은 자연스레 오락실로 향했다. 학교에선 늘 외톨이였지만, 이곳에선 달랐다. 게임 속 캐릭터들은 나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해 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이방인에게 친구가 생겼다. 친구 대신 게임이 내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일하러 서쪽 시장에, 누나들은 학원에 가고 없었다. 문득 부모님이 괜스레 보고 싶다가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에밀 아자르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주인공 '모모'처럼 고아는 아니었지만, 보살핌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그 삶에 조금은 가까웠다.


    매일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고 할머니와 누나들이 놀아주어도 부모님의 애정이 늘 그리웠다. 외로움은 그 어린 내 마음에 깊이 뿌리내려,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외로움과 싸움에서 나는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하나는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이해'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피와도 같은 '즐거움'의 길이었다.


    첫 번째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사실 외로움을 이해한다기보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은 나를 저버린 게 아니라, 나를 키우기 위해 저 멀리서 농사를 짓고 계신 거야.' 눈을 감으면 집 풍경이 떠올랐다. 푸른 논과 밭, 졸졸 흐르는 시냇물, 멀리 보이는 산줄기. 그 풍경이 나 대신 부모님을 보살피고, 부모님은 나 대신 풍경을 보살피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여덟 살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해였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면 떨어져 사는 부모님을 미워하고 있었다. 숱한 이해와 미움이 조그만 마음속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조금 일찍부터 내 몸의 핏줄에 철분의 농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두 번째 전략의 효과는 완벽했다. 외로움을 밀어내고 즐거움을 끌어안자, 외로움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 즐거움의 원천은 게임이었다. 열 살에 서쪽 탐험에서 발견한 오락실과 열두 살에 처음 만난 컴퓨터 게임은 나의 즐거움이었다. 화면 속 캐릭터들이 나의 조작에 따라 움직이고 몬스터를 쓰러트려 승리하며 성취감을 느꼈다. 게임이 끝나면 점수를 보여주며 네가 일 등이라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나는 게임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러 즐거움은 어느새 중독으로 변해 있었다. 게임을 하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세월의 강을 거슬러 유년의 풍경을 바라보니, 어린 나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텅 빈 집에서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이, 수줍음에 갇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던 내성적인 아이, 게임 속에서 위안을 찾아 헤매던 외로운 아이. 눈을 감으면 그 장면들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한때는 넓은 논과 밭이 내 놀이터였다. 벼들 사이로 뛰어다니는 메뚜기, 논두렁 아래에서 헤엄치는 미꾸라지가 내 벗이었다. 그러나 도시의 회색 빌딩 숲에서, 그 푸르른 추억들은 흩어져갔다.


    문득,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 한 마리가 떠올랐다. 황망히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이, 다름 아닌 어린 날의 내 모습이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그 시절, 게임은 나의 유일한 위안이자 동반자였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은 나를 향한,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된 연민의 표현이었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아픔을 돌아보며, 나는 비로소 타인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이해하고 연민하는 법을 배웠던 것처럼, 타인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법도 배워갔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아이들, 보살핌에 목마른 영혼들이 곳곳에 있다.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의 시작점이 바로 게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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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나의 우정 : 그 따스함을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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