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그 따스함을 붙잡고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나는 그 따스함을 붙잡고 싶어 함께 가보기로 했다."
"우리의 우정은 PC방의 푸른 모니터 화면에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나는 말이 없는 아이로 자라 있었다.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없으니,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노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 시절,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왕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지금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다. 하굣길, 아파트 단지 내 약수터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이 수도꼭지에 반짝이는 모습에 한참 넋을 잃곤 했다. 보도블록 사이에 얼룩덜룩 피어난 이름 모를 잡초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학교 아이들이 흘린 사탕과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퍼 나르는 개미들의 행렬을 구경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던 참이었다.
여름의 끝자락, 교실을 감싸던 오후의 나른함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나는 늘 그랬듯 오락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한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교실 내 선풍기가 윙윙거리며 뜨거운 바람을 내뱉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을 같은 반 친구라고 말했지만, 사실 기억이 나질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밤샘 컴퓨터 게임으로 인해 늘 피곤하고 주의력도 산만한 상태였다.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몰라도 상관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더니, 자연스럽게 PC방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당시 교실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게임이 뜨거운 주제였다. 1999년도에는 지금은 국민게임이 된 <스타크래프트>가 열풍을 일으켰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온라인게임이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아이들 집집마다 컴퓨터가 자리 잡았고, PC방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평소 말이 없는 아이였지만,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교실에 흘러 들면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스타크래프트의 재미없는 맵은 로스트템플맵 이다'라는 주제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입이 서서히 열리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슬었던 목소리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내가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봤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그동안 누구도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혼자였다. 그 아이의 아는 척은 나를 위로했다.
그때까지 나는 오락실은 수도 없이 다녔지만, PC방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누나들의 교육용으로 구입한 컴퓨터에 설치된 이름 모를 게임들을 하거나, 용돈을 받아 오락실로 향하는 것이 내 하굣길의 일상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그 일상을 반복하려 했지만, 가보지 않은 PC방에 대한 호기심과 그 아이의 건넨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따스함을 붙잡고 싶어 함께 가보기로 했다.
PC방은 서쪽 시장 건물들 사이에 숨어있었다. PC방은 처음 방문했던 오락실과 풍경이 비슷했다. 유리창문에 커다랗게 'PC방'이라고 적혀 있었고, 안에서는 사람들의 소리와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빛 한 줌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흰색 담배 연기가 일렁거렸다. 일렬로 줄지어진 컴퓨터 모니터에는 오락실과 동일하게 캐릭터들이 마우스의 클릭소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어른들 사이로 우리 또래 아이들도 간간이 보였다. 오락실과 비슷한 듯 다른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아이는 익숙한 듯 카운터로 다가가 천 원짜리를 건네며 자리를 요청했다. 나를 매대 쪽으로 이끌며, PC방에선 천 원을 내야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 원이라는 금액에 잠시 망설였다. '천 원이면 오락실에서 열 번은 더 놀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더 컸다.
주머니 속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구겨진 천 원짜리의 질감이 손가락 끝에 느껴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지폐를 꺼내 카운터 아저씨에게 건넸다. 아저씨는 무심한 듯 고개를 숙여 모니터를 확인하더니 "1번, 2번"이라고 좌석 번호를 짧게 말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까만 컴퓨터 화면에 불이 들어오면서 푸른색 배경의 바탕화면이 나타났다. 그 아이의 손가락이 마우스를 춤추듯 움직였다. 게임 <바람의 나라> 아이콘에서 불빛이 들어왔다. 나도 그 리듬에 맞춰 클릭했다.
처음 해보는 게임이었지만, 오락실과 집 컴퓨터로 단련된 손가락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화면 속 세상에서 나를 닮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초보 사냥터의 다람쥐들은 쉽게 쓰러져 갔다. 그 아이와 나는 자판 위를 달리며 외쳤다.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 우리의 웃음소리는 담배 연기 자욱한 PC방을 가로질러 울려 퍼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용 시간이 지나고 컴퓨터가 꺼졌지만, 우리의 우정은 방금 켜졌다. 그 후로 한참을 그 아이와 <바람의 나라>를 했다. 하교하면 오락실이 아닌 PC방으로 향했고, 용돈은 PC방에서 증발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게임을 통해 친구를 얻었다. 나의 친구, 현수. 무더운 여름날 PC방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지금도 현수는 내 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존재한다. 그날의 만남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현수와 우정이 게임으로 시작되었다면, 갈등의 불씨 또한 게임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6학년이 되면서 우리의 소유욕은 점점 깊어져 갔다. 게임 속 캐릭터들은 날로 강해졌고, 그에 따라 우리의 욕심도 커져갔다. 값비싼 아이템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수와 나는 서로의 게임 캐릭터를 가족처럼 공유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캐릭터로 번갈아 가며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소유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지를.
나는 한동안 게임을 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한 달 인터넷 부가서비스 이용 금액이 십만 원이 나왔다. 당시 게임을 할 경우 부과 요금이 청구될 때였기에 밤샘 게임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족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게임과 멀어져야 했다.
얼마간의 단절이 끝나고 PC방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내 캐릭터를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그토록 아끼던 아이템이 사라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우정이라는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의심이라는 균열이 생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캐릭터의 비밀번호를 아는 이는 현수뿐이었다. 의심의 화살은 자연스레 그를 향했다. 학교에서 현수를 마주한 나는 따지듯 물었다. 현수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정말 몰라"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의심의 연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아이템이 홀연히 사라질 리 없었다. 그 행방을 아는 이는 현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나는 현수의 말을 거짓으로 단정 지었다. 끊임없이 추궁했지만, 현수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얼음장 같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서로 말을 걸지 않았고, 마주쳐도 모른 척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나는 다시 외로움이라는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문득 알아차렸다. 이런 다툼으로 진정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용기를 내어 현수에게 다가갔다. "없던 일로 하자"라는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현수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것처럼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아주었다.
지금까지도 그 아이템의 행방은 미스터리다. 어쩌면 게임 시스템의 오류였을지도, 혹은 내 기억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 현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한순간의 의심으로 인해 평생의 우정을 잃을 뻔했다는 것이다. 그 값진 경험은 지금도 내 마음 한 켠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현수와 나의 우정은 PC방의 푸른 모니터 화면에서 시작되었다.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게임이 아니었다면, 말이 없던 내가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은 우리 사이에서 말을 주고받는 언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게임에서 영화로, 음악으로 번져가며 우리의 취향은 점점 더 닮아갔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에반게리온'에 대해 밤새 토론하곤 했다. 비슷한 우리의 모습에 때로는 놀라기도 했다.
성인이 되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다. 만나는 횟수는 줄었지만, 서쪽 시장과 PC방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우리 기억 속에서 줄어들지 않았다.
그 추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2년 전, 오랜만에 만난 현수에게 나는 바람의 나라를 만든 회사인 넥슨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함께 했던 게임이 떠올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덧붙였다. "님, 나 이제 다람쥐 만듦!" 현수는 옛날 게임 용어를 그대로 살려 대답했다. "올! 님 ㅊㅋ."
우리는 여전히 게임 용어로 소통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주고받았다. "그때는 그랬지", "저때는 저랬지"라며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와의 우정은, 레벨업을 거듭하며 어떤 인생의 퀘스트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든든한 파티가 되어가고 있다.
+ 반짝이는 순간들이 모여, 우리는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