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게임은 어둠 속에서 나를 이끄는 작은 등불이 되어주었다."
"막연하기만 했던 미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유년 시절은 게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게임은 내 삶의 배경이 되어, 오래된 벽지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게임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밤에 잠들 때도 게임 속 모험이 꿈으로 이어졌다. 책상 위에는 게임 공략집이, 서랍 속에는 게임 CD들이 가득했다.
처음에는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한 방패이자 친구였던 게임은,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도피처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게임을 통해 나는 실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처음으로 진정한 소속감을 느꼈다. 게임은 어둠 속에서 나를 이끄는 작은 등불이 되어주었다.
말 한마디 없이 구석에 앉아있던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은 <게임매거진>이었다. 매달 나오는 잡지를 위해 일주일 동안 용돈을 모았고, 발매일이면 서점 앞을 서성이곤 했다. 게임 잡지의 내용을 하나하나 외우면서, 처음으로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과 나눈 게임 이야기는 날이 갈수록 길어졌고, 어느새 나는 그들 사이에서 게임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어떤 게임이 재미있고 재미없는지, 게임의 재미를 분석하고 친구들에게 조언해주던 나는, 어느새 작은 게임 평론가가 되어있었다. 친구들은 내 의견을 신뢰했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늘 내게 물어보곤 했다. 그렇게 게임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질수록, 나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조용히 자라났다. 수업 시간, 노트 구석에 끄적이던 게임 아이디어들이 그 증거였다.
그즈음 우연히 접한 <유희왕> 만화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만화 속 카드게임은 단순한 숫자 비교로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가능성은 무한해 보였다. 만화 속 주인공들의 치열한 대결은 내 상상력을 자극했고, 위기에서 피어나는 역전의 순간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듀얼!"이란 외침은 마법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이 카드 게임은 아직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해외 직구는 학생인 내게 너무나 먼 꿈이었다. 하지만 절실함은 창의력을 낳았다. 밤늦도록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카드 이미지들을 정성스레 프린트했다. 가위로 모양을 따라 오려내고, 문구점에서 산 코팅지로 마무리하는 작업은 마치 연금술사의 실험 같았다.
손가락을 베기도 했고, 서툰 코팅으로 카드들이 엉겨 붙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할 때마다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고, 시행착오는 곧 경험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카드 한 벌은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혼자만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한 벌을 더 만들었다. 그것은 우리의 우정을 이어주는 또 다른 끈이 되었다.
카드의 기능과 설명을 번역한 내용을 프린트해서 담은 플라스틱 약통은 내게 작은 보물상자였다. 수업 시간에도 몰래 꺼내보던 그 설렘이, 선생님의 꾸중에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의 떨림이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금씩 모은 용돈으로 일본어판 정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문방구의 과자도, PC방의 한 시간도 포기했지만, 반짝이는 카드를 손에 쥐는 순간의 황홀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카드를 보고 있으면 배고픔마저 잊었다. 그 카드들은 단순한 종이가 아닌, 나의 열정이 담긴 보물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와의 대결은 점차 단조로워져 갔다. 익숙한 카드들의 조합은 더 이상 새로운 전략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시중의 카드들도 우리의 갈증을 채우기엔 부족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카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은 비밀 지도를 그리는 것만큼이나 설렘 가득한 일이었다. 깊은 밤, 이불 속에서 상상의 씨앗들이 움텄다. 종소리와 함께 우리는 한데 모여, 카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반에서 그림 실력이 좋은 친구의 연필 끝에서 우리의 상상은 천천히 모습을 갖춰갔다. 그렇게 우리는 게임의 창조자가 되어갔다.
게임의 세계는 내게 새로운 배움의 문을 열어주었다. 카드를 주고받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어느새 나는 각 카드의 능력치를 분석하고 전략을 연구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수학 시간의 확률 개념은 카드 뽑기의 확률로, 국어 시간의 문학적 표현은 카드의 설명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역사 시간에 배운 인물들을 모티브로 캐릭터 카드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게임은 이제 단순한 오락이 아닌, 나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업 성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게임 속에서 배우는 창의의 순간들이 더욱 값진 것처럼 느껴졌다.
카드를 만든 후, 카드 게임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하굣길에 학교 등나무 벤치는 우리의 결투장이 되었고, 그마저 여의찮으면 길바닥이 우리의 전장이 되었다. 바닥의 불편함을 깨닫고는, 아라비아 상인의 지혜를 빌려 돗자리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우리에겐 어디든 배틀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밤이면 이불 속에서 손전등 불빛 아래 카드의 효과를 고민했다. 때로는 친구들과 카드 대결을 하다 종례 시간에 늦기도 했고, 쉬는 시간마다 카드를 들여다보느라 화장실도 못 갈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카드 게임을 통해 나는 규칙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구현해 보는 재미를 알아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게임을 즐기고 싶어졌다. 당시 유행하던 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으로 유희왕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매달 만 원의 서비스 비용은 카드 구매를 포기할 만큼 부담스러웠지만, 내 꿈을 향한 첫 투자였다. 카드 구입을 미루고 아껴둔 용돈을 사용했다.
홈페이지를 알리고자 카드 게임 관련 사이트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홍보했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어,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채팅방에서는 카드 게임을 향한 우리의 열정이 밤새도록 이어졌다. 처음 만난 이방인들이 공통의 관심사로 이어지는 순간들이 신비롭기만 했다.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게임 방법과 규칙을 채팅 시스템에 맞게 재구성했다. 카드를 뽑으면 "드로우",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턴 엔드"라고 채팅으로 알리는 식이었다. 짧은 단어들이 채팅창을 수놓았고, 각자의 상상 속에서 게임은 생생하게 펼쳐졌다.
서로를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게임을 즐겼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작은 세계는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깊이 채워갔다. 게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함께 나눈 즐거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은 지금도 내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도시 곳곳에서 컴퓨터 관련 고등학교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게 유혹처럼 다가왔다. 교과서 속 단어들은 여전히 낯설기만 했지만, 게임 속 세상은 내게 끝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게임에 빠져 있었고, 공부는 흥미 없는 대상이었다. 그저 빨리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 속에서 자라났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나누어 준 진로표를 받아든 순간, '게임 개발자'라는 단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까지 게임은 단순히 나의 일상이었다. 지친 하루의 위안이자, 끝없는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밤새도록 빠져들 수 있는 유일한 열정이었다.
흥미를 잃은 교과서와 달리, 게임 속 세계는 나를 끊임없이 매료시켰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막연하기만 했던 미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즐겨왔던 게임이, 이제는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게임 개발자. 그 직업의 실체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는 내 미래를 선택했다. 부모님께 진로를 말씀드리던 날,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일반계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부모님의 조건과, 대학은 원하는 길을 가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내며,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된 듯했다.
목표가 생기자 희미하던 길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했고, 수학과 물리라는 오래된 친구들과 다시 마주해야 했다. 창의성이라는 이름의 미지의 영역도 눈앞에 놓여 있었다.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 열정이 이끄는 대로, 꿈을 향해 한 걸음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