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평생 가슴에 품어야 할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잿빛 일상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그 순간들이 나를 이 자리에 붙들어 두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 동기들은 각자의 길로 떠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닫힌 문 앞에 서 있었다. 가고 싶은 게임 회사에 모두 지원했지만, 수많은 문들이 내 앞에서 소리없이 닫혀갔다. 주위 친구들과 가족은 운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졸업 후 나의 도시로 돌아와 게임을 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갔다. 이 과정은 마치 어둠 속에서 별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르는 깊이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공모전 입상, 게임 회사 창업 등 이력서에 작성할 내용은 많았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계속 불안에 떨었다.
내 불안이 주변으로 퍼지자, 가족들은 다른 직업을 고려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이 길이 내 길이라 굳게 믿었는데, 가족들의 말을 듣자 그동안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듯했다.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백수 생활 반년째, 가족들의 조언을 따라 내 인생 두 번째로 진로를 모색하기로 했다. 그때 TV에서 본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영상으로 유물을 통해 과거를 길어 올려 현재와 미래를 잇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준학예사'라는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삼았다. 집 근처 독서실을 등록하고, 6개월간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고고학, 박물관학, 문화사, 문화행정, 한국사를 공부했다. 시험은 객관식과 서술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특히 서술형의 '삼국시대 고분군의 특징에 대해 논하시오.'와 같은 문제는 나를 끊임없이 좌절하게 했다.
대망의 시험 날, 나는 시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전날 밤, 서술형 기출 문제 앞에서 느낀 좌절감이 내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못난 마음이 못난 행동을 불러일으켰다. 합격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학예사의 꿈을 접어버렸다.
그 순간 내 안의 호기심 불씨는 마지막 연기를 내뿜으며 사그라들었다. 자괴감으로 방 속에 틀어박혔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내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 실패를 거듭하니 내 존재 자체가 실패인 듯했다. 시간은 또다시 하릴없이 흘러갔다.
대학을 졸업한 지 1년째 되던 날, 더 이상 취업을 미룰 수 없다는 절실함이 밀려왔다. 게임 취업 사이트를 열심히 살피던 중, 대기업 게임 회사의 공개 인턴 채용 글이 희미한 희망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폴더를 열어 먼지 쌓인 꿈을 다시 꺼내든 순간, 과거의 좌절과 현재의 희망이 교차했다.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이력서를 보냈다. 기다림의 시간, 그 차가운 12월이 더디게 흘렀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저녁, 맥주 한 캔에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결과를 기다렸다. 문자가 왔다. 합격했으니 면접 날짜를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정말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새벽,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네 시간의 버스 여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멘트를 되뇌고 옷매무시를 다듬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하니,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준비한 멘트들이 흩어졌다. 서툰 낱말들이 입술 사이로 떨어져 내리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울음을 삼켰다. 가슴 한켠에서 좌절과 희망이 부딪혔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그 울음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 합격 통보를 받았다.
원하던 게임 회사, 원하던 게임 개발자 직군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았다. 그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작업실 지박령이던 대학교 시절, 게임 공모전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 카드 게임을 만들었던 중학교 시절, 오락실과 PC방에서 매일 시간을 보냈던 초등학교 시절까지.
'그래, 내가 이걸 하고 싶었구나.' 결국 내가 원했던 삶은 게임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이 순간, 나는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운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때가 아니었던 거였다. 내가 꿈을 이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회사 생활은 대학 시절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다른, 한낮과 한밤의 차이였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시간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가고, 인턴이란 자리에서 나는 매일 밤 정사원이 되기 위한 고민으로 잠 못 이루었다. 열다섯 명 중 단 다섯 명만 정사원이 된다는 공고는 그 한밤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그 다섯 명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기들의 눈빛에서 같은 절박함이 느껴졌다. 이 귀중한 기회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졌고, 그 간절함 또한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기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능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누가 정사원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이 무리 속에서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인턴 과제들은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로 가득했다. 게임 이용자 모객을 위한 비용 산정, 서비스 중 문제 발생 시 대응 방법 등 생소한 주제들이 쏟아졌다. 이는 게임을 단순한 즐거움이 아닌 비즈니스 상품으로 바라보게 했다.
이런 상황에 나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서 배우고 연습한 것은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었지,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발 중 버그 발생의 대응 방법과 게임의 재미 요소 디자인 방법은 자신 있었지만, 그런 내용은 과제로 나오지 않았다.
협력과 경쟁이 뒤섞인 3개월간의 인턴 생활을 마쳤다. 기간이 끝나자 오랜 폭풍이 지나간 바다처럼 마음이 잔잔해졌다. 나는 다른 계절에 피어난 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열다섯 명 중 열 명과 함께 짐을 싸서 회사를 나왔다. 첫 입사와 첫 퇴사를 3개월 만에 모두 겪었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동안 나는 나의 강점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인턴 중 유일하게 나만이 게임 학과를 졸업했고, 게임을 개발해 본 경험이 있었다. 게임 회사 취업을 위해 이런 경험이 당연하다고 여겨 강점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안개 걷힌 거울처럼 비로소 내 모습이 선명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력서에 내 빛깔을 담았다.
인턴 경력이 도움이 되었는지, 중견 게임 회사의 공개 채용에 합격했다. 정사원으로, 그것도 원하던 게임 개발 직군이었다. 가족들과 지인이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대학 졸업 후 2년이란 계절을 보내고서야 맺은 열매였다.
하지만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기쁨은 아침 이슬처럼 금세 증발해버렸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기획해서 게임 개발하기를 원했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희망에 가까웠다. 회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는 다른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매출이 곧 회사의 성과였기에 수익성이 높은 콘텐츠 위주로 개발이 이뤄졌다. 꿈꾸던 게임 개발자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놓여있었다.
꽉 짜인 일정 속에서 창의성은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늦은 밤 사무실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은 점점 낯설어져 갔다. 대학 시절 그렸던 찬란한 미래는 어느새 단조로운 일상으로 바랬다. 야근이 늘어나면서 창가에 비친 내 그림자는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한때의 선명했던 꿈은 이제 희미한 그림자가 되어 나를 따랐다. 게임 개발의 실상은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고단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사계절이 열 번 바뀌는 동안, 여러 직장을 거치며 알게 되었다. 씁쓸하지만, 게임 개발의 현실은 핑크빛이 아닌, 대체로 잿빛에 가깝다는 것을. 이는, 화려한 무대 뒤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풍경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게임은 내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해왔다. 유년기의 반짝이는 오락실 화면은 이제 내 책상 위 모니터로 자리를 옮겼고, 대학 시절 새벽별을 벗 삼아 완성했던 작은 프로젝트들은 이제 내 삶의 뿌리가 되었다.
현실은 꿈과 달랐지만, 그 간극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좌절과 희열을 오가는 고된 여정 속에서도, 게임을 만들 때 느끼는 이 행복감이야말로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잿빛 일상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그 순간들이 나를 이 자리에 붙들어 두었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게임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게임은 늘 내 곁에 있었고, 내 삶의 굽이마다 함께했다. 결국 게임은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의 전부가 되었다.
한때, 이 소중한 열정을 포기하려 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안타깝지만, 지금은 이것이 내가 평생 게임을 가슴에 품어야 할 이유임을 안다. 게임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누군가의 꿈에 새싹을 틔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취미가 직업이 되어 때로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순수한 기쁨을 발견하는 나를 발견한다.
취미의 쓸모 : 1부 게임편 끝.
+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 자연이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