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포기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고등학교 3학년의 밤은 모두에게 길고도 고요했다."
"한때 나를 지켜주었던 게임이, 이제는 내 삶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로를 정한 그 순간부터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정해진 길 위에 서 있는 나는, 오히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 시기의 나는 확신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게임 개발자라는 꿈은 밝은 등불 같았지만, 동시에 그 불빛이 만드는 그림자도 보이는 것 같았다. 선택의 자유와 책임감 사이에서 나는 천천히 성장해 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고민과 걱정이 점점 늘어났다. 학업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여전히 산만했고 게임을 즐겼다. 이 성적으로는 중위권 대학교 진학이 어려울 것 같다는 불안감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가 희망하던 게임 관련 학과의 공모전에서 입상하면 수시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의 밤은 모두에게 길고도 고요했다. 친구들은 독서실과 교실에서 책과 씨름하는 동안, 나는 좁은 방에서 공모전에 출품할 게임 만들고 있었다. 밤을 지새우며 게임을 즐기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밤새 즐겁게 게임을 만드는 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시간과 씨름하며 첫 게임을 완성했다. 서툴고 미숙했지만, 밤새 쏟아부은 고민과 열정이 깃든 내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 첫 작품이 게임 학과 입학으로 길을 열어주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게임과의 인연은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내 직업의 근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게임을 즐기는 순간의 환희도 컸지만,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낀 창조의 기쁨은 황홀했다. 이 특별한 경험을 가슴에 안고 대학교로 향했다.
대학교는 내가 살던 도시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에 거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입학 전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적당한 방을 발견했다. 초등학교부터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혼자 지내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땅에 뿌리를 내리는 어린나무처럼, 조금씩 이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1학년 첫 전공수업에서 동기들과 만남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가 형성되었다.
스무 살의 대학 생활은 자유 그 자체였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는 자유. 책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듯 가벼웠다. 동기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밤새 PC방에서 게임하는 일상이 반복되며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때, 학과 게시판에서 게임 제작 동아리 모집공고를 발견했다. 주로 선배들의 졸업 작품 게임 제작을 돕거나, 만든 게임을 공모전에 출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성격과 관심사가 비슷했던 동아리 회장인 A선배와 빠르게 친해졌다.
내가 공모전 입상 전형으로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A선배는 나를 기특해했다. 먼저 이 길을 걸어온 선배의 칭찬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게임을 만들고 싶어 대학에 왔지만, 실력 있는 선배와 동기들 앞에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A선배의 칭찬은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A선배가 나를 불렀다. 곧 군대에 간다며 동아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회장을 맡을 수는 있겠지만,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A선배가 "네가 잘할 것 같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맥락 없는 믿음이 가슴에 와닿았다. 누군가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선배는 동아리 운영에 필요한 수칙들을 알려주고 군대로 떠났다. A선배 이후로 다른 선배들도 졸업하거나 군대에 가면서, 동아리에는 동기들만 남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동아리의 주축이 되어 끌어 나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1학년 겨울방학, 동아리에서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열정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곧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내 완고한 고집이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융통성 없는 태도로 동기들과 불화가 생겼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진행 상황에 자주 화를 냈다. 술자리에서 농담을 주고받던 밝은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선배가 준 책임감에 짓눌려 있었다. 선배들이 돌아오기 전에 게임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조급해졌다.
개발 과정에서 동기들과 갈등이 잦아졌고, 결국 한 달 만에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말았다. 동기들의 비난을 받으며, 서로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갔다. "저런 아이인 줄 몰랐다"는 말에 상처받으면서도, 나 역시 그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 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지. 다시는 예전처럼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침울해져 있었다.
그해 가을, 휴학기를 내고 도피성에 가까운 마음으로 입대했다. 게임을 만들고 싶어 대학에 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감에 빠졌다. 군 복무 중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동기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너무 몰아붙였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들었다.
제대 후 복학하여 동기들에게 사과했지만, 이미 멀어진 마음은 쉽게 돌이킬 수 없었다. 밤새 떠들며 자유를 만끽했던 관계는 어색한 사이로 변해버렸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섬세하고 복잡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복학 후에는 게임 엔진과 인기 게임들을 분석하며 공부했다. 4학년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졸업작품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동시에 취업을 위한 이력서도 준비했다.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했다. 대학 입학 전 공모전 입상이 유일한 성과였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학 능력도, 기술 능력도 부족한 나에게 취업의 문을 열 유일한 열쇠는 공모전 수상이었다.
이 절실함은 내 안에 불꽃을 지폈다. 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졸업 작품 제작과 공모전 출품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동기들은 이미 팀을 꾸려 준비 중이었기에, 나는 후배 두 명과 팀을 결성했다. 졸업작품 준비생들이 공유하는 작업실 출입문에서 가장 먼 구석, 그곳이 우리의 공간이 되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게임을 개발할 때는 과거 동아리 회장 시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팀원들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게임 개발이 팀 단위 작업이라는 점과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이미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경험이었다.
매일 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며 게임을 완성해 나갔다. 노력 덕분에 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공모전 일정과 졸업작품 일정을 맞추기 위해 게임을 부단히 만들었다. 컴퓨터 모니터 불빛이 유일한 조명이 되는 날도 많았다.
어느 날, 교내 식당 벽보에서 흥미로운 공고문을 발견했다. 충남도청에서 주관하는 창업지원 프로젝트였다. 호기심에 끌려 자세히 살펴보니, 이 기회가 우리의 졸업작품과 공모전 출품작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창업을 위한 물품, 식대, 인건비 지원 등 필요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곧바로 작업실로 달려가 지원서를 작성했다. 도청에서의 창업 프레젠테이션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열정과 비전이 통했는지 창업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지원금을 받자마자 필요한 개발 장비를 구매했다. 팀원들과 함께 식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창업 지원금이라는 든든한 기반 위에서 프로젝트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진행되었다. 가장 시급했던 공모전 출품을 위해 모든 힘을 집중했다.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마침내 완성된 게임을 CD에 담아 공모전 주최 측에 발송했다.
출품을 마친 그날,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에 몸을 맡겼다. 팀원들과 함께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과제는 졸업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었다. 무더운 여름부터 추운 겨울까지, 다시 게임 제작에 몰두했다. '작업실 지박령'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리의 삶은 그 공간에 스며들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다. 간절히 소망하던 수상 소식에 우리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간의 노력과 열정이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교수님과 학우들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으며, 그동안의 고된 시간이 보람으로 다가왔다.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불안과 긴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동기들에 대한 미안함, 함께 고생한 팀원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교차했다.
졸업작품 전시회는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전시회에서 게임을 체험한 한 학생이 "저도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내게 희망이 되어준 게임이, 이제는 다른 이의 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공모전과 졸업작품을 마무리하고, 개발한 게임을 출시했다. 창업 프로젝트의 마지막 과제인 매출 경험도 함께 이뤄졌다. 비록 눈곱만큼 적은 매출이었지만, 유년 시절 게임이 내게 주었던 위로를 기억하며 '아동복지관'에 전액 기부했다. 이 작은 마음이 누군가의 등불이 되길 바라면서.
졸업장을 받아 들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았다. 한때 나를 지켜주었던 게임이, 이제는 내 삶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마주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슴속에 따뜻한 봄바람으로 불어오는 듯했다.
+ 이제 현실이라는 바다로, 꿈이라는 돛을 펼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