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자연이 지금까지 나를 보살폈으니
- 쓸모없어 보이는 취미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
- 게임으로 '연민'을, 캠핑으로 '사랑'을, 독서로 '지식'을 배우다.
- 취미의 쓸모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한 안내서.
우리는 종종 취미를 '쓸모없는 것'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브런치북은 평범해 보이는 게임, 캠핑, 독서를 통해 취미가 지닌 진정한 가치를 탐구합니다. 취미가 어떻게 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그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취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것이 나의 사랑,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다."
"자연이 지금까지 나를 보살폈으니, 이제는 내가 자연을 사랑할 차례다."
경남의 어느 농부의 집안에서 한 남자가 태어났다. 그 이듬해와 그 다음해, 그리고 또 그 다음해에 각각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또 한 명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그는 산과 논과 밭을 제 집처럼 누비며 돌아왔더니, 동생 셋을 거느린 장남이 되어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장남으로서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맡았다.
동생들이 대학에 가면서부터 그의 손에서 쟁기와 호미가 떠날 날이 없었다. 대대로 내려온 한 마지기 밭에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며 정성을 다했다. 잎이 나고 열매가 맺힐 때마다 그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쟁기와 호미가 돌부리에 걸려 흠이 나듯, 그의 삶에도 조금씩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농사일에만 매진하다가는 결혼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먹구름처럼 서서히 마음을 덮어갔다.
경북의 어느 농부의 집안에서 한 여자가 태어났다. 그 이듬해와 그 다음해, 그리고 또 그 다음해에 각각 남동생이 태어났다. 그녀는 한여름 포도밭에서 풀을 매고 돌아왔더니, 남동생 셋을 거느린 장녀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남동생들보다 모험심이 강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주저 없이 도전하는 그녀는 학교에서 육상부와 농구부 활동을 하며 여기저기를 누볐다.
여름의 풍성한 기운을 머금은 포도알처럼 그녀의 삶도 무르익어 갔다. 성인이 되어 호기심과 경제력은 그녀를 도시로 이끌었다. 서울의 한 공장에 취직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처음엔 두렵고 외로웠지만, 곧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다.
편지가 그들에게 붉은 선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1년 가까이 펜팔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했다. 이것이 나의 사랑,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들의 삶을 톺아보면 내가 어찌 자연을 애정하게 되었는지, 들불 같은 호기심은 어찌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연과 한평생 살아오며 자신의 터를 일군 아버지와, 호기심으로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하려 했던 어머니의 합작품이 바로 나라는 존재였다. 가뭇했던 그림들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호기심은 나를 존재하게 해준 그 무엇이었다. 내 삶에 단 하나의 지지대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려준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 후 아버지의 고장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부모님이 정성껏 가꾸는 논과 밭의 작물들은 날마다 눈에 띄게 자라났다. 자연은 정직했다. 들인 노력만큼 결실을 맺어주었다. 때때로 피와 조 같은 잡초를 제거해야 했지만, 그것 또한 농사의 일부였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었다.
봄에는 밭을 갈고 씨를 뿌렸고, 여름에는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했다. 가을이면 텃밭의 고추와 배추를 거두었고, 겨울에는 빈 논에서 뛰놀았다. 때로는 눈싸움을, 때로는 얼어붙은 웅덩이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자연은 나의 양식이자 호기심이었다. 부모님의 노력이었고 사랑이었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쁘셔서 평일엔 떨어져 살았지만, 주말이면 도시의 우리를 보러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오셨다. 농사일에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큼은 여유롭게 살고자 하셨다. 우리 가족은 일주일, 늦어도 두 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났다. '주말 가족'이라 부르던 그 만남은 애틋했다.
아버지는 보일러 같은 고장 난 기계들을 수리하셨고,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서쪽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셨다. 누나들이 어머니 양옆에서 손을 잡으면, 나는 뒤에서 어머니 허리춤을 붙잡고 걸었다. 걷기 불편한 자세였지만, 어머니를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상관없었다.
초등학생이던 누나들과 나는 방학이면 부모님이 계신 고장으로 내려갔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셨다. 젊어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자식들에게는 꼭 해주고 싶어 하셨다. 그 경험들 속엔 부모님의 사랑이 가득했다. 여행을 위해 부모님은 6인승 자동차를 새로 마련하셨다.
비용이 꽤 들었을 텐데도,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개의치 않으셨다. 그 차는 우리를 경주의 박물관, 청도의 산, 합천의 댐, 울산의 바다 등 여러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곳들은 자연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과, 역사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누나들과 나에게 선선히 내어주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텐트를 가져오셨다. 집 마당에 펼쳐진 초록 무늬가 들어간 텐트는 너무 홑홑해서 속이 다 비칠 것 같았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아늑했다. 누나들과 나는 한참을 텐트에서 놀다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 날, 아버지는 창고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계셨고, 어머니는 분주히 파란 아이스박스에 반찬을 담고 계셨다.
점심을 먹고 올라탄 차에서 누나들과 좌석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아버지가 트렁크를 여셨다. 어제 마당에서 보았던 텐트가 가방에 담긴 채 트렁크에 실렸다. 우리는 놀라움과 기대감에 들떠 서로 바라보았다. 텐트 가방을 본 우리는 아직 펼치지도 않은 텐트의 잠자리를 두고 경쟁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마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텐트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 장소가 문득 궁금해졌다. 평소엔 목적지를 묻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꼭 알고 싶었다. 차가 출발할 때, 나는 앞 좌석 머리 부분을 양손으로 짚고 보조석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카세트테이프를 넣자,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옆자리에서 외갓집에서 가져온 풋사과를 깎던 어머니는 내 입에 사과 한 조각을 밀어 넣어 주셨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차창 밖으로 초록색 도로 표지판이 보였다. 흰색 글씨로 '경주 감포'라고 적혀 있었다. 감포를 소리 내어 읽어보니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양옆으로 누나들은 잠들어 있었고, 그 사이에 낀 나는 포근함이 아닌 갑갑함을 느꼈다.
감포로 가는 길에 묘한 탑을 지나쳤다. 어머니는 깨어 있는 나를 보며 "감은사지 탑"이라고 알려주셨다. '감은'은 감사하고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문무왕에 대한 효심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부모님에 대한 효심으로 탑을 쌓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든 누나들을 바라보았다. 효도는 내가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감포는 울산과 경주 사이에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향 모두와 가까운 이곳은, 두 분의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짙푸른 감포 해변에는 동해에 수장된 문무대왕릉이 웅장하면서도 외롭게 떠 있었다.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라를 지키는 문무왕처럼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문무왕이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 전설이 진실이든 아니든, 내가 믿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거센 파도가 암초를 덮을 때 일어나는 포말이 마치 문무왕의 눈물 같아 보였다. 감포로 가는 길에 묘한 탑을 지나쳤다. 어머니는 깨어 있는 나를 보며 "감은사지 탑"이라고 알려주셨다.
감포 해변에서 아버지는 텐트를 펼치셨다. 우리는 한참 바다를 바라보다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누나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 후, 고기 냄새에 이끌려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머니는 휴대용 버너 옆에 바람막이용 종이 박스를 두르고 고기를 굽고 계셨다. 시골에선 채소는 흔했지만 고기는 귀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이라 생각하신 부모님은 양껏 고기를 구워 우리를 먹이셨다. 그중에서도 '주물럭'이라는 요리가 있었다. 손으로 돼지고기와 양념을 주물러 구워 먹는 이 요리는 어머니의 손맛이 일품이었다. 우리 가족의 '소울푸드'나 다름없었다.
어머니의 '주물럭'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집에서 담근 간장으로 양념을 만들어 고기에 붓고, 텃밭에서 가꾼 양파와 마늘을 넣어 정성껏 주물렀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바다 내음과 섞인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부모님의 사랑과 밭에서 키운 자연이 우리 입속으로 들어왔다. 자연은 우리를 품어 키우기도 하고, 음식이 되어 우리 속으로 들어와 키우기도 했다.
배불리 먹은 후, 캠핑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여름 바다 공기가 몸을 감쌌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에 땀인지 소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밤이 찾아오자 우리는 서로 껴안고 텐트 속에 함께 잠들었다.
어릴 적 감포 해변에서 추억은 내 마음 깊이 새겨졌다. 텐트 안에서 들리던 파도 소리, 모래사장을 달리며 느낀 자유로움, 부모님의 따뜻한 품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 남았다. 도시의 바쁜 일상에서도 문득 그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부모님과 함께한 자연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위안과 힘이 되었다.
힘들 때면, 텐트 속에서 누나들과 뒹굴며 장난치던 그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그 기억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자연 속에서 느꼈던 그 평화로움과 가족의 사랑은 내 삶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부모님의 사랑과 넓은 자연을 품으며 커졌다. 어릴 적 부모님과의 캠핑은 이제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오감으로 느꼈던 그때의 감각은 여전히 선명하다. 청도 산길의 싱그러운 솔향, 감은사 바다의 끊임없는 파도 소리, 거제 해변의 매끄러운 몽돌들. 부모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캠핑으로, 체험한 낱개의 것들은 자연을 닮아 나를 여유롭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삶은 늘 자연과 함께였고, 그 사랑이 나에게도 이어졌다. 자연이 지금까지 나를 보살폈으니, 이제는 내가 자연을 사랑할 차례다.
+ 죽음이라는 어둠 속에서, 다시 빛을 발견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