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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Oct 27. 2023

과학을 곁들여 이해해 본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니체의 책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의 말씀을 담아놓은 ‘경전 같은 형식’도 낯설었고, 특히나 니체의 ‘언어’가 무척 낯설었습니다. 니체는 우리가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멸’ ‘파괴’ ‘몰락’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고, 조롱과 멸시가 담긴 반어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니체가 각 구절을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 주장하는지 조롱하는지 헷갈려서 앞뒤 문맥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아야 했습니다.


오늘 제 글의 목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볍게 스케치하는 겁니다. 저 또한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저의 스케치가 이 책에 도전하고 싶은데 막막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04


1. 니체가 생각한 문제점 (문제의식)


니체는 민족, 국가, 종교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달리 말하면 민족, 국가, 종교가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집단에 속한 인간이 모두 노예라니 니체의 말은 거침이 없어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민족, 국가, 종교는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었고 니체는 그들을 창조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한 것은 ‘선과 악’이라는 가치 기준입니다. 탁월한 ‘선과 악’을 중심으로 군중들이 몰려들었고, 군중들은 창조자의 가르침에 따라 ‘선’을 찬양하고 동시에 ‘악’을 비난했습니다. 그 결과 군중들은 ‘안전’을 보장받았습니다.


창조자는 사라져도 민족, 국가, 종교는 이어졌습니다. 군중들은 ‘선’에 가까운 자를 지배자로 인정했고, ‘악’에 가까운 자를 피지배자로 멸시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지배자건 피지배자건 둘 다 ‘선과 악’의 노예라고 말합니다. 둘 다 ‘선과 악’의 수호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 니체가 생각한 인간다운 삶. 본능에 충실한 삶.


니체는 민족, 국가, 종교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니체는 ‘자기’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다음은 ‘자기’와 ‘자아(이성)’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다음 구절을 읽으며 ‘자기’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자아에게 말한다. “여기서 고통을 느껴라!” 그러면 자아는 고뇌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자주 기뻐할 수 있을지를 숙고한다. 바로 그 때문에 자아는 사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가 자아에게 말한다. “여기서 쾌락을 느껴라!” 그러면 자아는 기뻐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자주 기뻐할 수 있을지를 숙고한다. 바로 그 때문에 자아는 사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p.52


저는 여기서 ‘진화론’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생물은 진화의 산물입니다. 생존에 유리한 개체가 자연선택되기를 반복한 결과 현재의 생물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즉 모든 생물에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 규칙이 심어져 있는데 우리는 이를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본능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찾으라고 명령함으로써 개체가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이끕니다.


저는 니체가 말한 ‘자기’라는 게 ‘본능’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에 소개한 구절 속 ‘자기’를 ‘본능’으로 바꾸어보겠습니다.


본능이 자아에게 말한다. “여기서 고통을 느껴라!” 그러면 자아는 고뇌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자주 기뻐할 수 있을지를 숙고한다. 바로 그 때문에 자아는 사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본능이 자아에게 말한다. “여기서 쾌락을 느껴라!” 그러면 자아는 기뻐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자주 기뻐할 수 있을지를 숙고한다. 바로 그 때문에 자아는 사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가 ‘본능’이라면)


어떤가요? 자연스럽지 않은가요?


니체는 ‘자기’에 충실한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 말합니다. 즉 ‘본능’에 충실한 삶이 인간다운 삶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니체는 ‘인간의 본능’을 무어라고 생각했을까요?



3.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의 본능


모든 동물이 본능에 충실하듯 인간도 ‘인간의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면, ‘인간의 본능’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힘의 의지’입니다. ‘힘의 의지’가 무엇인지 다음 구절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약자는 강자를 섬겨야 한다,라고 약자는 자신의 의지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자기도 보다 약한 자의 지배자가 되려고 한다. 약자도 이러한 기쁨만은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작은 자가 가장 작은 자를 지배하는 기쁨과 힘을 갖기 위해 보다 큰 자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가장 큰 자도 힘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을 건다.

모험을 감행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죽음을 건 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 그것은 가장 큰 자의 헌신이다.

p.201


‘힘의 의지’란 서열과 위계를 만들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려는 본능을 말합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복종하고, 강한 자는 가장 강한 자에게 복종합니다.


그럼 인간은 누구를 가장 강한 자라고 생각할까요? 덩치가 크고 싸움을 잘한다고 해서 리더가 되는 거라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에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대들의 자기는 그 스스로가 가장 원하는 일, 즉 자기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는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는 것은 자기가 가장 원하는 일이며, 자기의 최고의 열정이다.

p.53 내용을 살짝 수정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의 본능’ 둘째이자 핵심은 ‘자기 자신을 넘어선 창조’입니다. 인간과 침팬지의 근본적인 차이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창조’와 ‘힘의 의지’가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탄생합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복종하고, 강한 자는 가장 강한 자에게 복종한다. 가장 강한 자는 어떻게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가? 약한 자는 무엇을 보고 강한 자를 신뢰하는가? 가장 강한 자는 새롭게 창조해 낸 가치(비전)를 제시해야만 한다.

우구리의 정리



4. 니체가 꿈꾸는 세상


니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가장 강한 자를 ‘초인’이라 부릅니다. 니체는 초인들이 등장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나아가 민족, 국가, 종교 단위가 아니라 인류를 지배하는 초인의 등장도 꿈꾸는 듯합니다.


반면 고정된 민족, 국가, 종교가 유지되는 세상을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선과 악’이란 가치에 갇혀 가장 인간다운 본능인 ‘창조’ 의지를 잃어버린 군중으로 가득한 세상에 염증을 느낍니다.


그래서 니체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라고 말합니다. 경멸이 자기 극복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경멸하지 않고서는 ‘기존의 나’를 깨부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니체는 적을 사랑할 뿐 아니라 벗을 미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적을 미워하고 벗을 사랑하기만 하면 ‘기존의 나’를 깨부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니체는 초인들에 의해서 최선의 가치(선과 악)가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을 꿈꿉니다. 끝없이 등장하는 초인들, 끝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가치, 기존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경쟁, 더 최선의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



여기까지 정리가 되시나요? 이제 니체가 하나의 가치로 고정된 세상을 싫어했다는 걸 발견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니체는 선언합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가 살던 당시 인간의 창조 의지를 말살하는 대표적인 존재가 ‘신’이었나 봅니다. 따라서 이때 신이란 비단 종교뿐 아니라 하나의 가치를 수호하느라 인간의 창조 의지를 말살하는 모든 것을 뜻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니체는 여기서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니체 또한 창조자로서 하나의 가치, 하나의 ‘선과 악’을 주장합니다. 니체가 제안한 ‘선과 악’은 무엇일까요?



5. 니체의 ‘선과 악’ 그리고 ‘영원회귀’


니체의 ‘선과 악’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영원회귀’를 소개하겠습니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시간에 대한 저마다의 관점이 있는 듯한데요. 니체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영원회귀’라는 언어에 담은 듯합니다. 다음 구절을 읽어보시면서 ‘영원회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순간이라는 성문 입구로부터 기다란 영원의 오솔길 하나가 저 뒤쪽으로 뻗어 있다. 우리 뒤로 하나의 영원이 놓여 있는 것이다.

만물 가운데서 달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언젠가 이 오솔길을 달렸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만물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이미 언젠가 일어났고 행해졌고 달려 지나가버렸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모든 것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라면 그대 난쟁이는 이 순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성문 입구도 이미 존재했었던 것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만물은 그러한 식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이 순간이 다가올 모든 미래의 일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이 순간은 자신마저도 끌어당기고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만물 가운데서 달릴 수 있는 것은 이 바깥으로 통하는 기나긴 오솔길을 언젠가 한 번은 달릴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p.279-280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한참을 읽고 또 읽었는데요. 제게 가장 꽂힌 문장은 ‘만물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이미 언젠가 일어났다’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엔트로피 법칙’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엔트로피 법칙이란 결국 경우의 수가 많은 쪽으로 현상이 흘러간다는 겁니다. 연기가 피어오르면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데 연기가 한 곳에 모여 있는 특정 경우의 수보다 흩어지는 경우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정리하기도 하더라고요.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


니체는 만물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이미’ ‘언젠가’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엔트로피 법칙을 따르는 일이 일어났고, 또 엔트로피 법칙을 따르는 일이 일어날 뿐이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니체의 이런 생각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니체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게 있을까?
결국 무수한 반복만 남는 게 아닌가?
인간은 무수한 반복 속 아주 짧은 순간, 즉 찰나의 존재가 아닌가?
인간은 무수한 반복의 소모품인가?


그런데 니체의 생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듯합니다. 만물이 영원회귀한다는 건 끊임없이 가치(선과 악)가 교체된다는 걸 뜻합니다. 영원한 가치란 존재하지 않다는 걸 뜻합니다. 즉 만인을 위한 고정불변의 절대 가치(선과 악)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뜻합니다.


여기서 니체는 한 명의 초인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선과 악을 제안합니다.


말하자면 모두가 가야 할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p.347


자기 자신의 본성을 알아낸 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나의 선이고 악이다,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만인을 위한 선과 만인을 위한 악’에 대해 지껄이는 두더지와 난쟁이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p.344



6. 니체의 가치는 실현될 수 있는가?


니체는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를 제안한 셈입니다. 그건 각자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세상입니다. 니체가 제안한 세상에서 선이란 자신의 본성을 깊이 깨달아 실현하는 일이고, 악이란 자신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타인이 만든 가치를 수호하는 일입니다. 즉 니체가 진정으로 꿈꾸는 세상이란 각자가 자신만의 ‘선과 악’으로 살아가는 세상인 듯합니다.


다만 니체 또한 군중을 설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민족, 국가, 종교에 속하여 그 가치를 수호하는 군중은 이미 그 가치와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설 속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연설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자신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길동무를 찾는 방식을 택합니다.


하여튼 니체가 제안한 가치는 실현될 수 있을까요? 니체가 말하는 세상이 올까요? 얼핏 생각하기에 모두가 제멋대로 살아가는 엉망인 세상이 될 거 같은데, 최근에 읽은 송길영 님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떠올리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니체가 제안한 가치가 실현될 세상이 궁금하시다면 송길영 님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제 브런치에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소개한 글이 있으니 살포시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아참! 제가 니체를 오해한 부분도 분명 있을 듯합니다. 특히 '영원회귀'와 관련된 해석은 자신이 없습니다. 혹시 잘못된 해석을 발견하셨다면 댓글로 꼭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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