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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권만 선물한다면 이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by 책뚫기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김신지 작가님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었는데 정말로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제 본업이 초등학교 교사인데 제가 만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딱 한 권의 책을 선물할 수 있다면 저는 이 책으로 하겠습니다.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가르칠 수 없다’는 말에 저는 무척이나 동의합니다.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지식일 뿐 아이의 인생은 결국 아이의 몫입니다. 어른은 아이가 삶을 지혜롭게 가꾸는 여러 길을 안내할 뿐 선택은 아이의 몫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김신지 작가님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한 권씩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자기 삶을 행복하고 지혜롭게 가꾸는 탁월한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블로그 썸네일_복사본-001.png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휴머니스트, 2021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고 인스타그램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방구석 아싸로 살아온 제가 인싸들이 한다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비공개 계정입니다. 하하하. 인스타그램을 자기만의 아카이브(저장고)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네요.


인스타그램 계정에 ‘TinyNoti’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사소한 알림’이란 뜻인데요 일상 속에 쉽게 흘려보냈던 사소한 알림, 사소한 신호들을 포착하여 기록하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 사소한 신호들을 잘 알아차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신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가꿉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에게 혼나고 난 날에는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먹어야 풀려’라든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느끼는 게 좋아’라든지 ‘비 오고 우중충한 날에는 헤드폰을 끼고 ㅇㅇㅇ 노래를 큰 볼륨으로 듣는 게 좋아’라든지.


달리 말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와 대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떨 때 기쁜지, 설레는지, 벅차오르는지, 슬픈지, 짜증 나는지, 화나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할 수밖에 없도록 자기 주변을 가꾸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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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대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일기 쓰기, 글쓰기, 사진 찍기, 명상하기, 기도하기 등 많습니다. 수많은 자기 대화 방법 중 글이나 사진 등 흔적이 남는 방법을 김신지 작가님은 ‘기록하기’라고 이름 붙인 듯합니다.


다만 ‘기록’은 ‘메모’와는 다릅니다. 기록과 메모에 대한 김신지 작가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록은 메모와도 조금 다릅니다. 그때그때 적어둔 메모가 한 알 한 알의 구슬이라면, 기록은 그것을 꿰는 일이 해당하니까요. 낱개의 메모보다는 한 가지 주제로 일관된 기록을 이어나가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p.11


‘순간을 포착해 둔 메모’를 주제로 ‘자기 대화를 한 결과’가 ‘기록’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결국 기록의 핵심은 ‘자기 대화’가 아닐까요? 그로써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에 대해서 한층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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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지 작가님은 기록이란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도 말합니다.


저는 올해 육아휴직 중인데요. 어느덧 제 아들 담박이가 만 2세가 되었습니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담박이는 오전 내내 한 시도 멈춰있지 않지만, 오후 두세 시쯤이 되면 유아차에 누워 새근새근 낮잠숨을 쉽니다. 그동안 저는 식탁에 앉아 꿀 같은 독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는데요. 그날 저를 감정 바다에 풍덩 빠뜨려버린 건 김신지 작가님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였습니다. 수많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감상에 젖었는데 특히 이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빛바래게 할 것이고 10년, 20년이 지나면 지금 이곳에서의 날들은 희미한 추억으로 남겠죠.

아무리 좁고 낡았어도 그 방들을 떠난 뒤에 저는 늘 그곳에서 보낸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으니까요.

p.79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한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무척이나 좁은 방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저 그리고 동생이 누우면 남는 공간이 없는 아주 작은 방이었습니다. 장롱과 서랍장이 나란히 있었던 거 같고 서랍장 위에 작은 텔레비전이 하나 놓여있었던 듯합니다.


특별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기억이지만 무척 그립더라고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 흐릿한 기억에만 남아 있다는 사실, 언젠가 그 기억마저 사라질 거란 사실에 그리움이 조금 더 깊어지더군요.


그리움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어마무시하게 넓은 집,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그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바닥과 장난감들, 햇살이 닿지 않은 바닥 위에 놓인 유아차, 그 안에서 새근새근 낮잠숨을 쉬는 담박이, 그 옆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 저.


지금 제게는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버린 이곳이 10년, 20년이 지나면 무척 그리워지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신지 작가님을 따라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순간이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제 눈으로 본 풍경이 사진에 담겼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제가 10년, 20년은 늙어버린 듯했습니다. 사진에서 너무나 깊고 은은한 그리움이 느껴졌거든요.


이래서 김신지 작가님이 기록은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마침내 제게 주어진 매 순간이 그립고 소중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도 10년, 20년 뒤에는 그리워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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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께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김신지 작가님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내 삶을 행복하고 지혜롭게 가꾸는 길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책을 읽는 순간조차 나 자신과 대화하게 만듭니다.


왜 기록해야 하는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도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그립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가득한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줍니다. 그러니 제가 드리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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