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김신지 작가님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었는데 정말로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제 본업이 초등학교 교사인데 제가 만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딱 한 권의 책을 선물할 수 있다면 저는 이 책으로 하겠습니다.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가르칠 수 없다’는 말에 저는 무척이나 동의합니다.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지식일 뿐 아이의 인생은 결국 아이의 몫입니다. 어른은 아이가 삶을 지혜롭게 가꾸는 여러 길을 안내할 뿐 선택은 아이의 몫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김신지 작가님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한 권씩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자기 삶을 행복하고 지혜롭게 가꾸는 탁월한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고 인스타그램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방구석 아싸로 살아온 제가 인싸들이 한다는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비공개 계정입니다. 하하하. 인스타그램을 자기만의 아카이브(저장고)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네요.
인스타그램 계정에 ‘TinyNoti’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사소한 알림’이란 뜻인데요 일상 속에 쉽게 흘려보냈던 사소한 알림, 사소한 신호들을 포착하여 기록하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 사소한 신호들을 잘 알아차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신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가꿉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에게 혼나고 난 날에는 얼큰한 순두부찌개를 먹어야 풀려’라든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느끼는 게 좋아’라든지 ‘비 오고 우중충한 날에는 헤드폰을 끼고 ㅇㅇㅇ 노래를 큰 볼륨으로 듣는 게 좋아’라든지.
달리 말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와 대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떨 때 기쁜지, 설레는지, 벅차오르는지, 슬픈지, 짜증 나는지, 화나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할 수밖에 없도록 자기 주변을 가꾸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대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일기 쓰기, 글쓰기, 사진 찍기, 명상하기, 기도하기 등 많습니다. 수많은 자기 대화 방법 중 글이나 사진 등 흔적이 남는 방법을 김신지 작가님은 ‘기록하기’라고 이름 붙인 듯합니다.
다만 ‘기록’은 ‘메모’와는 다릅니다. 기록과 메모에 대한 김신지 작가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기록은 메모와도 조금 다릅니다. 그때그때 적어둔 메모가 한 알 한 알의 구슬이라면, 기록은 그것을 꿰는 일이 해당하니까요. 낱개의 메모보다는 한 가지 주제로 일관된 기록을 이어나가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p.11
‘순간을 포착해 둔 메모’를 주제로 ‘자기 대화를 한 결과’가 ‘기록’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결국 기록의 핵심은 ‘자기 대화’가 아닐까요? 그로써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에 대해서 한층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길인 듯합니다.
김신지 작가님은 기록이란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도 말합니다.
저는 올해 육아휴직 중인데요. 어느덧 제 아들 담박이가 만 2세가 되었습니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담박이는 오전 내내 한 시도 멈춰있지 않지만, 오후 두세 시쯤이 되면 유아차에 누워 새근새근 낮잠숨을 쉽니다. 그동안 저는 식탁에 앉아 꿀 같은 독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는데요. 그날 저를 감정 바다에 풍덩 빠뜨려버린 건 김신지 작가님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였습니다. 수많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감상에 젖었는데 특히 이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빛바래게 할 것이고 10년, 20년이 지나면 지금 이곳에서의 날들은 희미한 추억으로 남겠죠.
아무리 좁고 낡았어도 그 방들을 떠난 뒤에 저는 늘 그곳에서 보낸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으니까요.
p.79
문득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한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무척이나 좁은 방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저 그리고 동생이 누우면 남는 공간이 없는 아주 작은 방이었습니다. 장롱과 서랍장이 나란히 있었던 거 같고 서랍장 위에 작은 텔레비전이 하나 놓여있었던 듯합니다.
특별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기억이지만 무척 그립더라고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 흐릿한 기억에만 남아 있다는 사실, 언젠가 그 기억마저 사라질 거란 사실에 그리움이 조금 더 깊어지더군요.
그리움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어마무시하게 넓은 집,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그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바닥과 장난감들, 햇살이 닿지 않은 바닥 위에 놓인 유아차, 그 안에서 새근새근 낮잠숨을 쉬는 담박이, 그 옆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 저.
지금 제게는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버린 이곳이 10년, 20년이 지나면 무척 그리워지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신지 작가님을 따라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순간이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제 눈으로 본 풍경이 사진에 담겼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갑자기 제가 10년, 20년은 늙어버린 듯했습니다. 사진에서 너무나 깊고 은은한 그리움이 느껴졌거든요.
이래서 김신지 작가님이 기록은 미래의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마침내 제게 주어진 매 순간이 그립고 소중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도 10년, 20년 뒤에는 그리워질 테니까요.
독자님께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김신지 작가님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내 삶을 행복하고 지혜롭게 가꾸는 길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책을 읽는 순간조차 나 자신과 대화하게 만듭니다.
왜 기록해야 하는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도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그립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가득한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줍니다. 그러니 제가 드리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