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순간
파바밧!
깜깜한 방에 불이 켜졌다. 비몽사몽.
'무슨 일이지? 나 늦잠 잤나?'
허우적허우적. 잡히지 않는 형광등 빛을 팔과 다리로 치워보려 애쓴다.
"오빠, 나 이상해"
순간, 번뜩!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상황 파악 완료,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내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이 방 저 방을 의미 없이 걸어 다니며 말한다.
"소변인 줄 알았는데 뭐가 계속 나와. 피도 조금 섞여있어."
온몸은 잔뜩 움츠러들고 반대로 심장은 몸 밖을 향해 쿵쾅거린다. 우선 나는 그녀를 침대에 앉힌다.
"생리대 같은 거 있지? 일단 그거 차고, 난 병원에 전화할게"
난 지체 없이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건다. 대여섯 번의 신호음 끝에 한 간호사분이 전화를 받는다.
"네 안녕하세요. 병원 다니는 산모 남편인데요. 양수가 터진 것처럼 물이 나오는데 지금 가면, 진료가 필요한 상황인 지 궁금해서요."
"산모님 바꿔주시겠어요?"
차분하지만 단호한 말. 곧장 아내에게 전화를 넘긴다. 아내는 전화기 너머로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한다. 몇 번의 "네", 그리고 전화가 끊긴다. 아내의 눈이 불안하게 떨리고 덩달아 내 심장도 떨린다.
"옷 입자."
아내와 나는 허둥지둥 집히는 대로 입는다. 가을이지만 부쩍 추운 날씨에 둘 다 패딩 점퍼를 걸친다. 아내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한다. 아내의 입은 끔찍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와 작은 실오라기 희망을 품는 기도를 쏟는다.
"아직 36주밖에 안 됐는데..."
"아직 예정일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태동도 있었는데. 태동이 없어야 출산이 가까워지는 거라 했는데."
"전혀 조짐이 없었는데."
"원래 통증이 오고 나중에 양수가 터져야 되는 거 아니야? 피도 나왔어."
"괜찮을까?"
나는 그녀의 기도문에 희망을 불어넣는 데 집중하며, 차에 시동을 건다.
"36주부터는 그래도 출산 가능하다고 했잖아."
"지금 낳아도 괜찮은 시기야."
"그러게 어제까지도 태동이 있었는데. 담박이가 서두르나 보다."
"이제 조짐이 시작되나 봐."
"양수가 먼저 터지는 경우도 있을 걸? 양수가 먼저 터졌다는 구절을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나"
"괜찮을 거야. 그래도 빨리 알아차려서 지금 병원 가니까 괜찮을 거야."
잠에서 덜 깬 탓인지 정신이 살짝 몽롱하다. 반면 내 몸은 누군가 쥐어짜는 듯 아프고 답답하다. 다행히 새벽이라 도로에 우리 밖에 없다. 우리를 위해서 신호도 모두 청색이다. 평소에 차로 가득했던 길을 홀로 달리니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하다. 유유히, 다급하게 달린다.
도착. 곧장 응급 분만실로 향한다. 다급하지만, 아내에게 전해지지 않길 바라며, 차분히 간호사를 찾는다.
"조금 전에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밖에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차분하지만 단호한 말. 마음이 놓인다. 의료 서비스 영역 안에 무사히 도착했다. 최악의 경우는 넘긴 것이다.
"엄마 먼저 들어오시고, 두 분 코로나 검사는 받으셨어요?"
"아니요."
"보호자 분 여기에 성함, 연락처, 서명해주시고요. 코로나 검사받으셔야 하는데, 78,500원 먼저 결제하셔야 해요. 밖에 앉아서 먼저 작성해주세요."
종이와 펜을 받는다. 아내의 불안한 눈빛을 읽는다. 나는 괜찮을 거라며 지긋이 아내의 눈을 바라본다. 아내는 분만실로, 나는 대기실 의자로 간다.
다시 나온 간호사에게 종이와 신용카드를 건넨다. 간호사가 들어가고 곧이어 결제 안내 알림이 핸드폰에 뜬다. 간호사는 코로나 검사 키트를 들고 나온다. 간호사가 검사기를 내 코 깊숙이 찔러 넣자 눈물이 절로 흐른다. 그리고 다시 기다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몇 시지?'
심장 박동이 수그러들고 정신이 살포시 돌아온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본다. 2시 30분이다. 핸드폰 속 시간이 낯설다. 다여섯시 쯤 되는 줄 알았는데, 어쩐지 피곤하다. 조금이라도 더 자 둬야 할 거 같다는 생각에 머리를 벽에 기댄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눈이 번쩍! 생각을 거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급 분만실 안으로 향하고 있다. '분만실 6'.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아내는 없다. 아내의 옷과 핸드폰이 어수선하게 늘어져 있다. 아내는 관장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는 아내의 핸드폰에 충전기를 연결하고, 아내의 옷가지를 한 곳에 정리한다. 잠시 후 아내가 들어온다.
"어때? 괜찮아?"
"응. 괜찮은 거 같은데... 이제 좀 아픈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자궁이 4cm 정도 열렸데."
아내는 침대에 눕고, 나는 그 옆에 보조 의자에 앉는다.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핸드폰에 출산과정을 검색한다.
'자궁구가 10cm까지 열리는 분만 1기. 초산은 10~12시간 소요'
'실제 아기가 나오는 분만 2기. 초산은 2~3시간 소요'
'후처리를 하는 분만 3기'
"우리가 새벽 한 시쯤 일어났겠지? 그럼 오후 두 시나 세 시쯤에는 담박이 나오겠다."
마라톤은 이제 시작이다. 나는 아내의 눈을 바라본다. 아내는 운명을 받아들인 듯 초연한 듯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다시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간호사님들이 30분 정도 간격으로 들어와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한다. 팔에 링거를 꼽고, 척추에 무통주사를 위한 바늘을 꼽고, 항생제 반응 검사를 하는 등. 간호사님의 방문이 반갑다. 환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간호사님이 들어오실 때까지 버티자'
나는 다음 간호사님이 들어오는 순간까지만 버틴다. 간호사님이 들어오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기다리는 걸 잠시 쉬는 느낌이다. 간호사님이 나가면 다시 기다리고, 들어오면 다시 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목표를 달성하듯, 조금씩 조금씩 기다리는 일을 해낸다.
"보호자님 잠시 나가 계세요."
생각보다 자궁구가 열리는 속도가 빠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못 보던 간호사님이 들어온다. 무언가 다른 역할을 하는 분 이리라. 나는 간호사님의 말에 잠시 분만실 밖을 향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진다. 답답하다. 핸드폰을 켜도 할 게 없다. 뒤통수를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졸기 시작한다.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허겁지겁 분만실로 들어간다. 아내는 곧장 담박이를 쏟아낼 듯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다. 출산이 임박했다.
"벌써 나올 준비하는 거야? 아직 8시도 안 됐는데?"
"그런가 봐. 아랫배에 힘 받는 느낌이 안 들어서 잠깐 더 기다려보자고 하시네. 무통주사도 멈췄어. 이제 다시 아프기 시작하네... 어후.."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는다. 별일 없을 거다. 부디 건강하길. 힘든 아내가 안쓰럽다. 이제 곧 끝나겠지? 온갖 생각이 지나지만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벨 좀 눌러줘.. 이제 좀 힘 받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은 채, 아내가 말한다. 나는 곧장 벨을 누른다. 간호사님이 들어온다. 나는 다시 분만실 밖으로 나가 기다린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간호사님의 호출에 일어선다. 간호사님은 내게 파란 위생복과 일회용 머리캡을 입힌다.
"바로 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문 밖으로 남자 의사님의 목소리와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때요? 긴장돼요?"
"네.."
"괜찮을 거예요. 걱정 마시고, 아기 머리가 보이거든요. 몇 번 더 힘주면 되겠어요. 자 힘주세요. 좋아요. 또 힘주세요."
그때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부드럽지만 명료하게 문을 뚫고 나온다.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나는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담박이? 담박이? 담박이다! 아내의 배 위에 담박이가 놓여있다. 담박이가 운다. 힘차게 운다.
아내의 표정도 온화하다. 오히려 손쉽고 빨리 나온 담박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다행이다. 둘 다 모두, 무사하다.
2021년 10월 22일 8시 54분. 담박이는 울음으로 나의 세상은 또 한 번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