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으로 해결방법 찾기
변화를 시도하는 분들께
우리는 환경 속에 살아간다. 즉 우리는 환경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려면 환경을 고려하거나 바꿔야 한다.
우리가 고려하거나 바꾸려는 환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환경을 고려하거나 바꾸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꾼다는 말일까?
시간, 공간, 사람, 사물, 사건, 제도가 환경을 구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환경 속에 살아간다.'는 말은 '우리는 시간, 공간, 사람, 사물, 사건, 제도 속에 살아간다.'라고 달리 말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지향을 이루기 위해 시간, 공간, 사람, 사물, 사건, 제도를 고려하고 때로는 시간, 공간, 사람, 사물, 사건, 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다. 학교 밖 사람들이 상상하는 교직원 회의의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교직원 회의 분위기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다. 마치 식물들의 회의 같다.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도,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도 늘 하던 대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런 점에서 마치 매번 똑같은 역할극을 보는 듯하다.
대게 업무 담당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소개하는 것으로 회의를 시작한다. 업무 담당자는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소개한다. 그러나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업무 담당자가 업무를 수행하기 편안한 선택 또는 관리자(교감, 교장)의 뜻이 반영된 선택이다. 그래서 업무 담당자가 운을 뗀다.
"1번 안이 아무래도 좋을 거 같은데. 선생님들도 괜찮으시죠?"
"네~"
초등 교사들은 이런 문화에 길들여진다. 그래서 몇몇 교사들은 답답하다고 느낀다. 의사결정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게 그들의 목소리다. 몇 년 전부터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다양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업무 담당자들은 민주적인 의사결정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상 제 의견이었고요.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정적.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어느 누구라도 용기를 내어 아무 의견이라도 내어주길 기대한다. 그 화살은 주로 부장 교사들에게 향한다. 부장 교사들은 또 하나의 업무를 부여받는 셈이다.
왜 이럴까? 왜 교사들은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을까? 나아가 교사들이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교사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교사 삶의 시간, 공간, 사람, 사물, 사건, 제도를 파악해야 한다. 만약 문제의 원인이 교사 개개인에 있다면 어렵겠지만, 문제의 원인이 환경 요소에 있다면 그 환경 요소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학교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걸로 보아 문제의 원인은 교사 개별성보다 환경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부터 따져보자. 학교 밖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교사 또한 굉장히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한다. 즉 교사가 해결해야 할 업무 대비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따라서 교사는 바쁘다. 그런 교사에게 교직원 회의는 해결해야 할 업무로 여겨진다. 게다가 주 업무도 아니고 부차적인 업무로 여겨지기에 교사들은 교직원 회의가 빨리 끝나기를 희망한다.
공간을 살펴보자. 교사들은 흔히 상상하는 학교 교실 같은 공간에서 회의한다. 업무 담당자가 교실 앞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다른 교사들은 학생처럼 모두 업무 담당자를 바라본 채 앉아 있다. 교사들은 서로의 얼굴, 몸짓, 기분을 살필 수 없고 업무 담당자만 바라본다. 당연히 상호 간에 의견을 주고받기 어렵다. 모든 의견은 업무 담당자에게 향하고, 업무 담당자를 통해 의견이 오고 간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사실 업무 담당자란 창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사람이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지만, 생판 남이다. 그가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지는 고사하고, 그의 목소리나 말투도 잘 모른다.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얼굴도 잘 모른다. 만약 내가 손을 들어 의견을 낸다면 수많은 낯선 타인의 시선이 내게 집중될 테다. 불편하다.
다음은 사물이다. 회의에서 사물은 공간과 밀접히 연결된다. 회의실에 놓인 책상과 의자 배치, 프로젝터의 위치, 마이크 및 음향시설도 하나의 요소다. 이처럼 회의에서 사물은 공간을 구성한다.
다음은 사건이다. 교사들은 회의에서 반복된 사건의 형식을 경험한다. 고경력 교사일수록 반복된 회의 사건을 기억하고, 회의에 대한 하나의 상을 갖게 된다. 이는 우리의 관습, 즉 하나의 제도로서 힘을 갖는다. 따라서 교사는 회의에서 똑같은 사건의 형식에 길들여지고, 이는 교직원 회의 제도가 된다. 제도는 꽤 강한 힘을 갖기에 교사들은 이 제도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경험한 교사들이 말하는 일을 싫어하거나 말할 줄 모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말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도 많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그러나 교직원 회의를 구성하는 환경이 교사에게 말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교사는 그 환경의 요구를 잘 읽고, 잘 따를 뿐이다.
그럼 남은 질문, 교사들이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들이 회의에서 의견을 말하기에 적절한 시간, 공간, 사람, 사물, 사건, 제도를 찾아야 한다. 즉 교사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다만 억지로 환경을 바꿔준다고 교사들이 그에 맞춰 따라줄 거란 기대는 버려야 한다. 교사 또한 주체적인 사람이다. 물만 준다고 싹을 틔우는 식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도 고민은 해볼 수 있다. 교사들이 여유 있게 회의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장소와 어떤 가구 배치가 필요한지, 낯선 타인에게 익명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달라지는 회의가 교사에게 어떤 경험으로 다가갈지 등을.
어쭙잖은 글이지만, 새로운 시도나 프로젝트 또는 갈등으로 고민하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단서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