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꼭 필요한 안목
꿈을 좇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학창 시절 자주 듣던 말이다. 그 당시 어른들은 '돈을 좇지 말고 꿈을 좇아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라고 자주 말했다. 그들의 말투와 표정에는 자신이 멋진 어른이라는 자부심까지 담겨 있었기에,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 또한 그들의 말을 따라 했다.
"아들. 돈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만 집중해. 열심히 노력하면 돈은 나중에 저절로 해결될 거야."
어머니의 말과 표정에는 그들과 다르게 자부심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만큼 분명하고 강력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세상'이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내게 공부와 노력을 강조했고, 내 주변에는 꿈과 공부와 노력이란 단어가 가득했다. 그 당시 한 문제집의 표지에 쓰인 글귀가 이때를 대표했다.
'꿈이 없는 10대는 틀린 문장의 마침표와 같다.'
꿈, 공부, 노력은 강력한 빛과 같았다. 눈부실 정도로 쏟아지는 빛. 덕분에 어둠도 짙었다.
'돈은 신경 쓰지 말아라.'
돈에 대해 고민하고,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암묵적인 금기 사항 같았다. 꿈과 공부와 노력이 눈부신 빛이라면, 돈은 블랙홀과 같이 위험한 어둠이었다. 그래서 나는 위험한 돈을 멀리했고, 꿈과 공부와 노력을 가까이했다.
어머니는 굉장히 성실하고 헌신적인 분이었다. 그만큼 고지식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대로변에서 작은 만화 가게를 운영했다. 대로변이고 교통량도 많았기에 차량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견인차 회사는 어머니에게 자주 명함을 건넸다. 사고가 날 때마다 자기네 회사에 연락을 달라는 부탁이었고, 자기 회사가 견인하게 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연락하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로 돈을 버는 건 옳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어머니는 로또 회사의 제안도 거절했다. 대로변이고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니, 로또 회사는 어머니에게 로또도 판매하길 제안했다. 분명 매출이 많이 나올 거라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어머니는 단호히 거절했다. 사행성 게임과 관련된 일로 돈을 버는 건 옳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어머니는 굉장히 성실하게 가게를 운영했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가게를 운영했기에 단골손님을 꽤 유지할 수 있었고, 단골손님이 끊길 게 두려워 명절에도 가게를 쉬지 못했다. 어머니는 1년 중 365일 가게를 운영했고, 아버지 또한 주말 특근을 마다하지 않고 회사에 나갔다. 가족 여행 등 가족과의 추억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우리 집의 부는 늘지 않는 듯했다. 돈은 쌓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꿈꿀 수 있는 집은 작아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노력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족 여행은 우리 가족 사전에서 사라졌다.
어머니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꽤 늦은 뒤였다. 어머니는 자신처럼 성실하게 살지 않고 빚을 내어 집이나 땅 등에 투자한 사람들이 훨씬 부유한 삶을 누리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했다. 한두 명이 그랬다면 요행이라 생각하셨을 테다. 하지만 한두 명이 아니었고, 점차 주변 대다수가 그러했다. 어머니의 가치관은 외톨이가 되었고, 이내 어머니는 바보처럼 살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아무리 바보 같은 선택을 했을지라도, 자책의 늪에 빠질 만큼 자존감이 낮지 않다. 내가 경험한 어떤 사람보다도 강인한 분이다. 어머니의 가치관과 어머니가 생각하던 세상이 무너졌지만, 어머니는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만큼 강인하게 살아낼 자신이 없다. 하여튼 어머니는 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끝에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돈에 게을렀다.
어머니는 성실한 사람이다. 내가 봐온 어떤 사람들보다 성실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가정에 성실한 어머니였고, 일에 성실한 노동자였으며, 시댁에 성실한 며느리였다. 성실성만 따지면 대한민국 상위 0.1%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돈에 게을렀다.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 말했는데, 아니었다. 돈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말했는데, 노력이 필요했다. 돈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말했는데, 공부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아서 바보가 되는 삶을 살았다. 물론 바보 같은 삶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바보는 부지런해도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기에 고단하다.
어머니와 나는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소비, 지출, 저금, 기부만 알던 나의 경제 세계에 투자란 단어가 등장했다. 주식 관련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무작정 시작했다. 공부를 마치고 시작하면, 평생 시작하지 못할 거 같아 무작정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자본에 대해 몰랐는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 최소 두 가지 기본 안목이 있어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는 정치적 안목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안목이다. 대한민국 정치에 게을러서도 안 되고, 자신의 자본에 게을러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꼭 참여해야 하듯, 자본주의의 꽃인 자산 관리에 관심을 둬야 한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기에, 내가 나서서 해야 한다. 그래야만 더 다양한 기회를, 원하거나 필요할 때,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