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어서 오세요. 책뚫기의 북라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최근에,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철학책을 읽다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그 책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인데요. 진짜 딱딱하고 감성이라고는 1도 안 느껴지는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나다니? 제가 생각해도 제가 참 별종 같더라고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건 아니고요. 딱 한 부분! 최초의 기동자, 다른 말로 하느님이 나오는 부분에서 이유 모를 눈물이 났어요. ‘이게 눈물이 날 구절인가? 내가 슬픈 건가? 기쁜 건가? 감동받은 건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는데 하여튼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홉스와 이유 모를 눈물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하는데요. 요즘 제 고민이 묻어 있기도 해서요. 한번 들어보시고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도 많이 남겨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책뚫기의 글을 오디오로 만나보세요]
제가 눈물을 흘렸던 부분은 최초의 기동자, 다른 말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예요. 간단히 소개해볼게요.
홉스는 다른 생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 중 하나로 ‘호기심’을 꼽아요. 인간은 호기심 때문에 대상이나 현상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데요. 심지어 그 원인의 원인을, 또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을 찾으려 한데요.
이처럼 인간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를 반복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어떤 원인도 없고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원인인 듯한 원인, 즉 최초의 기동자’를 찾게 된데요. 그러니까 ‘이거는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져도 더 이상 원인을 찾을 수 없고 ‘그냥 그런 거야.’라는 식의 답밖에 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거예요.
더 이상의 질문이 무의미한 문장, 즉 ‘최초의 기동자’를 홉스는 ‘하느님’ 또는 ‘자연의 질서’라고 불러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물리법칙’, 노자식으로 말하자면 ‘천지자연의 도’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한데요. ‘물리법칙은 왜 그렇게 생겨 먹은 거야?’라고 질문을 던져도, ‘그냥 그런 거야’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정리해 볼게요. ‘왜 하느님이 존재할까? 왜 자연의 질서가 존재할까?’라는 질문은 무의미해요. 왜냐하면 하느님, 자연의 질서는 최초의 기동자이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그냥 그런 거야’라는 답뿐에요. 그리고 하느님 또는 자연의 질서는 우주만물에 새겨져 있어요. 따라서 우주만물은 하느님 또는 자연의 질서대로 흘러간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질문 하나가 떠올랐는데요. 그 질문은 ‘나는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였어요. 그리고 이 질문이 떠오른 순간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여러분은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일 건가요?’
여러분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여러분의 선택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최초의 기동자를 말하는 홉스는 자유와 필연이 같은 말이라고 주장해요. 왜냐하면 우주만물은 하느님 또는 자연의 질서 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태엽을 감으면 움직이는 관절 인형이 있다고 해볼게요. 태엽을 감고 손을 놓으면 태엽에서 시작된 힘이 줄과 톱니바퀴에 전달되어 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해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인형이 무척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데요. 하지만 관절 인형은 제작자의 의도대로 움직이기에 필연적 존재예요.
홉스는 인간이 관절 인형과 마찬가지라고 말해요. 인간의 행동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 제작자의 의도대로 움직이기에 필연이라는 거예요. 이때 제작자란 최초의 기동자, 즉 ‘하느님’ 또는 ‘자연의 질서’인데요. 다시 말해 인간은 하느님에 따라 움직이는 필연적 존재라는 말이에요.
정리해 볼게요. 우주의 모든 것에는 하느님 또는 자연의 질서가 새겨져 있어요. 다시 말해 저의 몸에도, 여러분의 몸에도 하느님이 새겨져 있어요. 이런 맥락에서 자유와 필연은 같은 말이래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를 자유와 필연을 지녔듯이, 새가 하늘을 나는 자유와 필연을 지녔듯이, 고래가 물속에서 유영하는 자유와 필연을 지녔듯이 우리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자유와 필연을 지녔어요.
따라서 자유롭게 산다는 건 필연대로 산다는 말과 같아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자유롭고, 새는 날 수 있어야 자유로워요. 고래는 바닷속을 유영해야 자유롭고,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해야 자유로워요. 왜냐하면 그게 각각에 새겨진 하느님 즉, 필연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리고 이 질문에서 저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요?
저는 지난 9월에 복직을 했어요. 1년 6개월 간의 육아휴직이 끝났거든요. 처음에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니 주변 선배님들이 안쓰럽게 쳐다보더라고요. 남자들은 대개 육아를 힘들어해서 육아휴직을 해도 6개월만 하고 서둘러 복직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면서요. 그런데 저는 1년 육아휴직을 마치고도 6개월을 연장했고요. 생활비 문제만 아니라면 더 하고 싶었어요.
육아휴직 동안 정말 행복했거든요. 아이를 통해 그리고 책과 글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저만의 관점을 창조하는 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덧붙여 에니어그램 성격 유형 검사를 통해 제가 ‘사색가, 탐구가’ 유형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홉스식으로 표현하자면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 또는 자연의 질서에 대해 알게 된 건데요. 육아휴직 덕분에 비로소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 거예요.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은 이렇게 말해요. “너는 사색가다.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탐구하라. 그리고 너만의 관점을 창조하라. 그 관점으로 너를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이야기하라. 그게 너의 자유고 필연이다.” 어째서인지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은 이렇게 말해요.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그냥 그런 거래요. 다만 하느님의 말을 따르면 재밌고, 즐겁고, 행복해요.
하지만 지난 9월에 복직을 했어요. 누구나 그렇듯 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하는데요. 나름대로 보람과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퇴근하고 나면 무언가 허망해요. 고래로 태어나서 바닷속을 유영하지 못하는 느낌, 새로 태어나서 날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은 ‘사색가’로 살라 말하는데, 직장에서는 사색가를 원하지 않거든요. 따라서 하루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고 퇴근 후에 육아를 하고 나면 제가 온전히 사색가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자투리 시간뿐이더라고요.
그 자투리 시간에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찾아왔고, 제게 질문을 던진 거예요. ‘내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는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바꿀 수도 없고요. 그렇다고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충분히 따르지도 못하는 처지예요. 바로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제 눈물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사색가로 밥벌이하고 싶다!’인데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오만방자한 생각이에요. 제가 지금 밥벌이하고 있는 직업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았던가요? 또 누군가는 저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고도 얻지 못한 자리에 제가 앉아 있지 않던가요? 감사하지 못할 망정 신세한탄을 하다니요! 게다가 이제야 사색가로 걸음마를 시작하는 주제에 밥벌이를 논하다니요.
그래서 지금은 홉스에게 참 감사해요. 눈물 흘린 덕분에 ‘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명확히 정리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다짐했어요. 저는 앞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쓸 거예요. 나아가 저만의 관점을 창조할 거예요. 그리고 그 관점으로 저를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이야기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게 저의 자유고 필연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구독자님들께 참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사색가로서 걸음마를 시작한 제 이야기를 듣고 구독과 좋아요를 진짜 많이 눌러주시더라고요. 또 예전 영상에서 ‘사이공간 틈새’라는 공동체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남는 공간이 있으니 필요하면 쓰라고 연락 주신 분도 있었어요. 오래도록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 연락이 닿아 함께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고요. 지난주에는 구독자 찰스 님께서 제 영상을 보시고 글·그림 선물을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구독자님들이 하나 같이 덧붙이시는 말씀이 ‘앞으로도 좋은 영상을 계속 만들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구독자님들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꾸준히 할게요. 사실 ‘책뚫기의 북라디오’가 제게는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자 필연적인 공간인데요. 그 공간에 찾아와 주시는 여러분 덕에 제가 사색가로 존재할 수 있어요. 따라서 여러분이 저의 자유이자 필연이라는 거, 그래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는 거,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다만 복직을 하다 보니 한 달에 겨우 영상 한 편 올리겠더라고요. 그래도 ‘책뚫기의 북라디오’는 계속 간다는 점 약속드릴게요.
지금까지 책뚫기의 북라디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저 많이 많이 응원해주세요. 그리고 댓글도 많이 많이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댓글과 피드백 먹고 무럭무럭 성장할게요. 우리 앞으로 10년, 20년 쭈욱~ 함께해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