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글쓰기 양치기 소년

내 내면의 목소리 찾기

by 책뚫기

⌜엄마의 말 공부⌟란 책에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 나오는 실험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느 도자기 공예 교수가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채점 기준을 제시했다. 한쪽 그룹은 도자기 50개를 만든 학생은 A 학점을, 40개를 만든 학생은 B학점을 주겠다고 했다. 많이 만들수록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이다. 다른 그룹에는 한 학기 동안 만든 작품 중에서 최고로 잘 만든 작품 한 점만으로 점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질적으로 높은 작품 하나를 집중해서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한 학기가 끝난 후 미적 완성도나 기술적인 섬세함이 뛰어난 도자기는 주로 어떤 그룹에서 나왔을까?


나는 훌륭한 결과물을 내려면 많은 고민과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질적으로 높은 작품 하나를 집중해서 만드는 그룹’이 더 훌륭한 결과물을 내리라 예상했다.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질적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훌륭한 작품이란?’,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내리려 노력해야 할 테니 말이다.


반면에 ‘많이 만들어야 하는 그룹’은 그냥 반복 작업을 요구받은 셈이다. 내 작품이 훌륭하든 훌륭하지 않든 기계적으로 도자기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다. 즉 질보다 양이 먼저고, 이럴 때는 효율성이 중요한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도자기를 완성하느냐의 싸움이 시작된다.


한 학기가 끝난 후 작품을 평가하면서 교수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적 완성도뿐 아니라 기술적인 섬세함 면에서도 최고의 작품은 ‘많이 만든 그룹’에서 나왔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그들은 도자기를 반복해서 빚으며 실수를 했다. 아마 하나하나 만들 때마다 별로 정성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흙을 다루는 일 자체에 점점 능숙해졌고, 아름다움을 보는 심미안도 발전했다. 손으로 흙을 빚는 기술뿐 아니라 미적 감각도 함께 향상되니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부담 없이 놀이처럼 반복적으로 만들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결과였다.


엥? 단순히 많이 만들게 한 ‘원초적인 평가 방법’이 최고 작품 한 점을 평가하는 ‘보다 세련된 평가 방법’보다 떨어진다고? 뭐야? 애써 고민해서 괜찮은 평가 방법을 만들어 낸 거 같은데,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무언가 억울한 느낌마저 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국어였다. 다른 과목들은 목표 등급을 왔다 갔다 하는데 유일하게 국어만 5등급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아무리 열심히 수업을 듣고, 노트 필기를 해도 국어 성적은 늘 한결같았다. 국어 성적을 올리고 싶었던 만큼 스트레스가 꽤 심했는데, 국어 시험을 망치는 꿈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이 늘었다. 악몽은 점점 심해져 나의 수면시간을 갉아먹었고, 나중에는 몸 상태가 무너져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엎드려 있다 퀭한 눈으로 일어나 교과서를 꺼내던 내게 영어 선생님이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냐는 질문에 국어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 잠을 잘 못 잔다고 답했다. “어쭈?! 영어는 자신이 있나 보네?” “예? 아.. 아..” 내가 말실수를 한 건가? 내가 잘못한 건가? 영어 선생님을 더 배려했어야 했나? 나는 퀭하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런 건 아니라며 황급히 영어 선생님을 달래주었다.


점점 현실도 악몽 같았다. 꿈과 현실의 구분이 사라졌다. 꿈도 현실도 악몽이었다. 나는 악몽을 이겨낼 절대 공부 비법이 필요했다. 무림인들이 절대 무공 비법을 얻은 뒤 절정 고수가 되듯 나 또한 절대 공부 비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대입 시험을 본 적이 없었고, 학교는 나 같이 어중간한 성적을 가진 학생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흙수저가 달리 방법이 있나!? 무작정 교무실로 가서 국어 선생님들에게 도와달라고 빌었다. 어떻게 하면 국어 점수를 올릴 수 있냐고,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뭐냐고 물었다. 간절하게 공부하겠다는 학생의 등장에 선생님들이 열렬히 반겨주리라! 나는 절대 공부 비법을 전수받고 말리라! 하지만 국어 선생님들은 당황했다. 얼어붙고 어정쩡한 낯빛, 내가 반가운 존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반겨주지 않는 선생님들의 낯빛에 조금 상처받았지만 절대 공부 비법을 얻는 일이 쉬울리는 없을 터, 나는 돌아설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내게 문제지를 몇 권씩 추천해주었다. 한 선생님은 출판사에게 받았지만 자신에게는 쓸모없는 교사용 문제지(답과 해설이 표시되어 있는)를 내게 주었다.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추천받은 문제지를 모두 주문하고, 교사용 문제지에 표시된 정답을 사인펜으로 지웠다. 그리고 나는 무작정 문제지를 풀기 시작했다. 허기졌던 만큼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한 주에 한 권씩, 세 달이 지날 무렵 내 자리 옆 바닥에는 총 열세 권의 문제지가 탑처럼 쌓여있었다.


몇 가지 깨닫는 게 있었다. 지문을 읽기 전에 문제를 먼저 읽는다. 문제가 원하는 답을 지문에서 찾는 식으로 지문을 읽는다. 결국 문제 유형은 거기서 거기다. 비슷한 유형의 문제는 비슷한 방법으로 푼다. 심지어 자주 출제되는 지문이 있다. 특별히 어려운 지문도 반복하여 풀다 보면 답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 뒤로 나의 국어 등급은 1~3등급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능에서는 2등급으로 마무리지었다.


나는 이렇게 국어를 극복했노라!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 양치기 했구나~”라고 답했다. 양! 치기! 무작정 많은 양의 문제 풀기. 풀어낸 문제의 양이 결과의 질을 보장한다는 단순 무식한 전략! 아~ 그렇구나! 그때 내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에게 전수받은 비법이 바로 ‘양치기’였구나. 나는 양치기 소년이었구나!


양치기는 수능 국어에만 쓰이는 비법이 아닌가 보다. 질적으로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도 양치기가 필요하다니, 혹시 양치기는 절대 공부 비법이 아니라 절대 인생 비법이 아닐까? 좋은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좋은 사진을 찍어내기 위해서도,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도 양치기가 필요한 거 아닌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데 심지어 잘 먹기 위해서도 양치기가 필요하다니!




나는 요즘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고 싶다. 내 삶을 둘러싸왔던 정답들을 걷어내고 잠자고 있는 내 목소리를 찾고 싶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보석 같은 내 내면의 목소리가 짜잔 하고 나타나리라 생각했는데, 열심히 수업 듣고 노트 필기하던 고등학생 때 내가 떠오른다. 다시 양치기 소년이 되어야 할 때다.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목소리를 많이 내봐야겠지? 나는 글쓰기 양치기 소년이 될 테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조회수나 라이킷을 많이 의식했다. 훌륭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조회수와 라이킷을 많이 받으면 훌륭한 글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늘 조회수와 라이킷을 확인했고, 적은 라이킷에 새초롬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참 웃긴 게 나는 아직 내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지도 않은 주제에 ‘훌륭한 글, 인정받는 글’을 꿈꾼다. 그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더 힘들게 했던 듯하다. 그래서 내게 숨어있던 무의식을 오늘부터 버리기로 했다!


나는 글쓰기 초짜다. 나는 아직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글쓰기 양치기 소년이다. 무작정 많은 글을 꾸준히 쓴다.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다. 꾸준히 쓰다 보면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을 거다. 비로소 나의 글은 가치 있어질 거다. 나는 가치 있는 글을 쓰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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