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맞히기 식 삶에서 벗어나기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나는 늘 고되고 외로운 등하굣길을 걸었다. 그때는 학교 사물함에 교과서를 두고 다니지 못해 매일매일 무거운 책들을 가방에 한가득 들고 다녀서 힘들었고, 집이 같은 방향인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다. 그리고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30분 거리의 통학길이 무척 지겨웠다. 그래서 내 인생이 마치 기계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된 행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누군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계 같았다.
그날도 고되고 외로운 하굣길이었다. 절반쯤 갔을까?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매일 반복되던 의문이 가득 찼던 모양이다. 나는 정해진 대로 사는 기계인가?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나? 그럼 나는 운명이 정해준 대로 사는 건가? 반에서 제일 작았던 그 3학년짜리 땅꼬마가 뒤를 돌았다. 그러더니 다시 학교를 향해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운명에서 벗어난 건가? 평소와는 다르게 움직이니 나는 내 마음대로 살기 시작한 건가? 열 발자국 걸었을까? 땅꼬마는 이내 깨달았다. 이것마저 운명인가? 운명은 내가 뒤를 돌아 걸을 거까지 정해놓았나? 결국 꼬마는 다시 뒤를 돌아 집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K가 만약 지금 다른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그 생각조차 입력된 정보에 따른 빅브라더의 지시 때문이며, 빅브라더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서 일부러 커피를 마시지 않고 오렌지 주스를 선택한다 해도 이러한 사소한 일탈 역시 사전에 계획된 빅브라더의 의중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최인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여백, 2011), 250
어린 시절 나는 반복되는 등하굣길이 싫었고, 그 등하굣길을 바꿀 수 없는 게 더 싫었다. 성인이 되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면서 어린 시절의 내 고민은 옅어졌다. 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운명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교육대에 합격했을 때도, 교사가 되었을 때도 그 질문은 나를 늘 미행하고 있었다. 내가 교사를 선택한 걸까? 아니면 교사를 선택하도록 만들어진 걸까?
미행하던 질문의 흔적을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늘 과거를 회상했다. 과학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에 숨겨진 신비로운 퀴즈를 풀어 대단한 발명을 하여 내 이름으로 한 권의 위인전이 쓰이리라! 건축 폐자재가 쌓여있는 가건물 안, 임시 벽으로 만든 방 안에서 나는 당당히 세상에 이름을 떨치리라 꿈을 꿨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눈이 청소년의 눈이 되면서 나는 ‘우리 집 형편’이란 표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 형편’을 무척 잘 아는 아들이자 학생이었다. ‘타 지역 대학은 꿈꾸지 않는다. 등록금이 비싼 대학은 꿈꾸지 않는다. 취직이 보장되지 않는 대학은 꿈꾸지 않는다.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나는 알았다. 나의 무의식이었다. 그래서 불행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였으니 탓할 것도 아니었다. 내가 교사를 선택한 걸까? 아니면 교사를 선택하도록 만들어진 걸까? 나의 무의식은 사회의 기대와 요구를 잘 읽었고, 훌륭한 정답을 선택하게 했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를 하루 10쪽씩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저자인 한스-게오르크는 뇌과학, 마케팅, 경제학을 접목한 신경마케팅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신경마케팅? 생소한 용어다. 내가 이해한 바로 이 책은 고객과 소비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지를 뇌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고객과 소비자에게 제품을 잘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책인 듯하다.
우리가 이미 관찰한 보편적인 동기 모형과 거의 일치하는 신경생물학적 모형이 뇌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흥미진진한 사실을 알게 됐다.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농도는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것이 소비패턴을 예측하는 데 설문조사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의 뇌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경험하거나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소비행동과 구매패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중략) 모든 소비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출처: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강영옥 외, (비즈니스북스, 2019), 15
저자 말의 핵심은 ‘모든 소비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이다. 즉 무의식이 소비자의 결정을 좌지우지한다는 거다.
“의식이란, 자신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당신 뇌의 홍보 활동일 뿐이다.” 무의식의 힘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우리가 하는 결정의 70~80퍼센트 이상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출처: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강영옥 외, (비즈니스북스, 2019), 17
내가 물건을 소비할 때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소비한다? 게다가 내가 하는 결정의 70~80퍼센트 이상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충격적이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인 ‘교사’ 또한 나의 무의식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 인생 대부분은 나의 무의식이 꾸준히 선택해 온 우리 사회의 퇴적물인 셈인가?
나는 정답 맞히기 식 삶에서 벗어나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고 싶다. 이를 위해 미라클 모닝, 10쪽 독서법, 일기 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정답 맞히기 식 삶에서 벗어나려면 무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의 요구와 기대를 듬뿍 머금은 나의 무의식을 알아차리고, 이를 내 내면의 목소리로 대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늘 정답 맞히기 식 선택을 반복할 테고, 내 내면의 목소리가 내 인생을 결정할 기회를 주지 못할 테다.
내게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나의 무의식을 해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