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맞히기 식 삶에서 벗어나기
나는 정답 맞히기 식 삶에서 벗어나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는 여정 중이다. 한 달 반 정도 [10쪽 독서]와 [꽂힌 문장 글쓰기]를 실천하며 미숙하게나마 내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다. 내가 정답 맞히기 식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게 꿈이 없었다는 거다. 대신 내 삶에는 타인이 만들어놓은 목표만이 가득했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목표에 내 인생을 올곧게 쏟은 덕분에 ‘부부교사’라는 지위를 얻었다. (이 문단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에 담겨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이 참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 인생이 참 서글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렵고 험난한 세상에 ‘부부교사’라는 지위를 얻었다니. 모두들 노력하지만 입시나 고시에 실패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나는 운이 좋게도 성공했다. 남이 죽고 나는 살아야 하는 전쟁터에서 나는 다행히 승자였다. 그래서 참 복 받은 인생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타인이 만들어놓은 목표 위에 살았다. 아무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너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어? 네가 꿈꾸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야? 대신 협박과 조롱이 가득했다. 먹고살려면 공부해야지. 쉬는 시간에 잠을 자니? 그렇게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나는 타인이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 춤추는 마리오네트처럼 살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 내 처지가 참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동시에 세상이 원망스럽다. 나는 늘 내 지인들에게 감사를 느끼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시스템에 분노를 느낀다. 내가 가진 지위를 내려놓을 용기는 없으면서 내게 지위를 준 시스템에 미움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래서 현실 속 나는 장난기도 많고 웃음도 많지만, 글 속 나는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특히 교육 시스템에 대해 나는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그러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의 책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에서 ‘규율 숭배자’에 대해 설명한 내용에 눈이 확 꽂혔다.
[규율 숭배자]
- 비관적 성향의 우뇌가 우세하고 좌뇌에서 테스토스테론이 관여한다. (좌뇌에서 도파민은 관여하지 않는다.)
- 쾌락주의자의 정반대다.
- 비관과 불신으로 가득하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쾌락 역시 가치가 없다.
- 쓸데없는 물건은 사지 않고, 순수하게 기능성을 고려해 꼭 필요한 것만을 구매한다.
- 세상이란 확실하고 제어 가능한 곳이어야 하고, 예기치 못한 성가신 사건을 증오한다.
- 순수한 기능적인 측면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하는 만큼 최신 유행은 이들의 관심 밖이다.
출처: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강영옥 외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9), 169-170 중 일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우와! 이거 나네! 불필요한 지출을 싫어하는 점도, 순수한 기능적인 측면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하는 점도, 예기치 못한 성가신 사건을 증오하는 점도, 무엇보다 비관과 불신으로 가득한 점도 모두 나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은 나와 다르지만,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이 구분한 일곱 가지 동기 및 감정 유형 중에 나는 분명 ‘규율 숭배자’다.
최근 동료 선생님과 대화 중에, 역시나 나는 우리 교육의 미래는 어두울 거라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앞으로 교육계는 더 힘들어질 거예요. 마음에 병이 있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질 거고, 마음에 병이 있는 학부모도 많아질 거예요. 자연스레 악성 민원은 더 많아질 거고, 교사는 살아남기 위해 법과 절차가 허락하는 대로만 하는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괜히 자율적인 시도를 하다가 과도한 책임을 질 수 있으니까요. 결국 교육에서 사람 냄새가 사라지고 말 거예요.
하지만 동료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유쾌하게 답했다.
어차피 아이들은 지금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앞으로 살아가게 될 거예요. 아이들은 아이들의 시대를 살아가는 거죠. 학교는 아이가 지금 친구들과 어찌 됐든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아이는 자기 시대의 사람들과 어찌 됐든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듣고 보니, 어찌 됐든 그 말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렇게 비관적일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스템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쁜 건 아닐 수도 있나? 내가 너무 시스템을 나쁘게만 여기고 있나? 그러던 중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의 ‘규율 숭배자’가 나의 질문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너의 뇌는 비관과 불신으로 가득해!
나는 비관적이다. 내 뇌의 특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늘 비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남들보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나 비관적이다!
나는 남들보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인정하고 나니 내 생각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시스템을 미워하고 원망하는데, 사실 시스템은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는 만큼보다는 괜찮을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세상이 밉고 원망스러울 때, 스스로를 타일러줘야겠다. 비관 안경을 또 쓰고 있네? 내가 벗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