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을 바꾸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사전을 찾아보면 이념, 사상, 사고방식 등의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저는 이데올로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사회 집단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기준’
사회 집단은 집단 속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중 무엇이 옳은지/그른지, 맞는지/틀린 지, 좋은지/나쁜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좋고 나쁨을 가르는 선( / ), 바로 그 기준이 이데올로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는 겉으로 ‘옳은 사회, 정의로운 사회, 좋은 사회’를 주장합니다. 반면 안으로는 주로 지배계층의 이익을 지키기 바빴습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는 왕족과 귀족, 평민, 노예를 나누고 각 계층별 역할을 강요했습니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왕족 또는 귀족 편이었습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나누고 착한 사람에게는 천국을 나쁜 사람에게는 지옥을 약속했습니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착한 사람의 편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이데올로기의 변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데올로기는 어찌 됐든 ‘보다 나은 사회 집단’,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즉 인류의 역사는 ‘보다 나은 사회 집단’, ‘보다 나은 삶’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나은 사회 집단’, ‘보다 나은 삶’은 이내 ‘인권’이라는 가치에 도달했습니다. 인권은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그리고 이를 담은 이데올로기가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모두 그렇습니다.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또한 인권이란 가치를 인정하고,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가 만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이데올로기가 인권을 보장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국민의 안목이 갖춰지지 않은 민주주의는 가짜 뉴스와 선동 등에 가스라이팅 당할 수 있고, 이는 국민들 간 싸움을 부추기는 등 독재 정치보다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부의 균형을 고민하지 않는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낳고 가난한 사람의 인권이 짓밟히는 걸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데올로기란 늘 지배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바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인권을 짓밟지 않도록, 우리의 인권을 보장하도록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인’이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자유인이 되고 싶습니다. 늘 남이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살아왔던 저를 발견했고, 반대로 자기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자유인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 집안은 그렇게 감정 짜내고 트렌드 좇지 않는 걸 전통으로 삼고자 한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정치적 이념도 분명히 세우고 싶지 않다. 강요가 될 것이니까. 오히려 인간을 옥죄는 모든 지배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거리를 두라 하고 싶다. 무엇에도 사로잡히거나 종노릇 하지 말고 당당히 자유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 238
자유인이 된다는 말에는 ‘지금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무엇이 저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걸까요? 변상욱 님의 말에 따르면 ‘지배 권력’과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리고 ‘지배 권력’과 ‘이데올로기’ 안에는 종교나 정치적 이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인이 되려면 먼저 저에게 영향을 준 지배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피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그 영향들을 받거나 선택해 추종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하려면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고 무엇의 지배를 받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무엇을 알면 그것을 움직일 수 있지만 모르면 그것이 우리를 휘두른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이념을 어디서 배워 어느 정도 따르고 있다고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좌표를 분명히 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한데 요즘의 사회는 상대의 좌표를 찍는 데 더 골몰한다.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 208
변상욱 님은 자신의 좌표를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대의 좌표를 찍는 데 골몰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상대의 좌표를 찍는 순간, 예를 들어 ‘OO주의자’라고 도장 찍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함께할 건지, 거리를 둘 건지, 공격할 건지를 선택하는 문제만 남습니다.
저 또한 이런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좌표를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대의 좌표를 찍은 뒤 편을 나누고 싸우는 모습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요? 누가 원하는 모습일까요? 이데올로기란 늘 지배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바빴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하여튼 변상욱 님의 말을 곱씹어 보니, 자유인이란 자신의 좌표를 분명히 알아차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되, 함부로 상대의 좌표를 찍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사람인 듯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유인인 것처럼 상대 또한 자유인이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표현하면 자유인이란 상대를 존중하되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좌표를 분명히 알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즉 자유인은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생각, 스스로 선택한 이데올로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변상욱 님에게도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변상욱 님이 따르는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데올로기를 따를 것인가’가 마지막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나는 지금껏 인간의 존엄과 인간 공동체의 위엄을 지키고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또 존엄과 위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해방과 자유가 곧 하나님의 갈망이라는 것이 예수의 사유였다고 나는 사유한다.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 208
변상욱 님은 모든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인간 공동체의 위엄이 무너지지 않은 세상을 꿈꿉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자유인이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다만 변상욱 님의 꿈이 커 보이는 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배 권력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서로를 헐뜯고 괴롭히기도 하고, ‘가난하게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너의 잘못이다’라는 빌게이츠의 말을 인용하며 가난한 자들을 죄인 취급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존엄과 인간 공동체의 위엄을 지키고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자유인이 가득한 세상이 올까요? 다음 글에서는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에 담긴 변상욱 님의 눈으로 자유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 태도, 인식 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남은 이야기를 들으러 또 놀러 와주실 거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