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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통 Jun 29. 2023

고독을 나누는 워크숍

<고독사 워크숍>을 읽고 - 늦은 기록


슬픔 없는 고독사는 정말이지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62P.


나쁘지 않다는 말은 정말 나빴다. 완벽히 나쁘지도 못하기 떄문에 더 나빴다. 127P.


좋은 어른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그럼 좋은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되잖아여. 149P.


#고독사워크숍 #박지영 #소설


읽은 책들이 쌓였고, 최근에 읽은 책부터 독후감을 다시 써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혼자만의 타협점을 찾았다. 가장 오래 들고 다녔던 책. 그만큼 진도가 쉽게 나가진 않았다. 그에 비해 읽게 된 계기는 한없이 가벼운 책.


올해 초인가 작년 말인가, 아는 분한테 농담으로 ‘고독사 하지마라’는 연락이 왔다. 매번 혼술하고 있으니 걱정되니 말한 거겠지만, 가방 속에 이 책이 있어 읽고 있던 책이라고 헛소리로 답변했다. 그래도 어차피 좋아하는 ‘젊은 작가’ 시리즈니 금방 다 읽을 줄 았았다.


한 파트씩 읽는데, 고독사라는 무게 때문일까 내용들이 꽤나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막상 웃음 포인트도 좀 블랙 코미디 같았고. 다만 읽는 내내 스스로도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 워크숍의 의미가 뭘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 무식한 판단은 ‘고독’과 ‘워크숍’이라는 단어의 간극이었다. 워크숍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보통은 ‘단합’, ‘단란함’을 떠올릴만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독을 공유하는 것. 자신만의 고독사 방식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고독사死보다는 자신이 고독하게 된 역사史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 죽을 만큼 힘든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왜 힘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각자의 대답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돌리고 다시 보니 공동체의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사실 공동체의 따뜻함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니까, 달리 말하자면 각자의 고독에도 따뜻한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공동체로서의 따뜻함보다는 각자의 힘듦을 말하는 그 힘이, 오히려 지독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느슨한 공동체지만 그들만의 연대가 생성될 때, 일종의 그들만의 암호가 생길 때 묘하게 읽는 나까지 소속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지독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란걸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각자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말이다. 제목의 간극처럼, 모순적이어도.


- 2023050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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