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워크숍>을 읽고 - 늦은 기록
슬픔 없는 고독사는 정말이지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62P.
나쁘지 않다는 말은 정말 나빴다. 완벽히 나쁘지도 못하기 떄문에 더 나빴다. 127P.
좋은 어른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그럼 좋은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되잖아여. 149P.
읽은 책들이 쌓였고, 최근에 읽은 책부터 독후감을 다시 써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혼자만의 타협점을 찾았다. 가장 오래 들고 다녔던 책. 그만큼 진도가 쉽게 나가진 않았다. 그에 비해 읽게 된 계기는 한없이 가벼운 책.
올해 초인가 작년 말인가, 아는 분한테 농담으로 ‘고독사 하지마라’는 연락이 왔다. 매번 혼술하고 있으니 걱정되니 말한 거겠지만, 가방 속에 이 책이 있어 읽고 있던 책이라고 헛소리로 답변했다. 그래도 어차피 좋아하는 ‘젊은 작가’ 시리즈니 금방 다 읽을 줄 았았다.
한 파트씩 읽는데, 고독사라는 무게 때문일까 내용들이 꽤나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막상 웃음 포인트도 좀 블랙 코미디 같았고. 다만 읽는 내내 스스로도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 워크숍의 의미가 뭘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 무식한 판단은 ‘고독’과 ‘워크숍’이라는 단어의 간극이었다. 워크숍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보통은 ‘단합’, ‘단란함’을 떠올릴만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독을 공유하는 것. 자신만의 고독사 방식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고독사死보다는 자신이 고독하게 된 역사史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 죽을 만큼 힘든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왜 힘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각자의 대답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돌리고 다시 보니 공동체의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사실 공동체의 따뜻함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니까, 달리 말하자면 각자의 고독에도 따뜻한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공동체로서의 따뜻함보다는 각자의 힘듦을 말하는 그 힘이, 오히려 지독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느슨한 공동체지만 그들만의 연대가 생성될 때, 일종의 그들만의 암호가 생길 때 묘하게 읽는 나까지 소속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지독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란걸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각자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말이다. 제목의 간극처럼, 모순적이어도.
- 20230504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