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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May 10. 2019

가장 좋아하는 고전 소설 - 소설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제럴드, 민음사, 2003

1. 나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책이다. 2003년 학원 지하에 있던 동네 서점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다 읽고서는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도 이렇게 재밌구나, 했던 책. 자주는 아니지만 2-3년에 한 번씩은 꼭 읽는 책.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등 큰 출판사에서 출간한 판본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책. 정말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책.


2.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 어릴 적에는 그저 테스트를 좇고 끝을 보기 위해서 책장을 넘기기 바빴는데 커가면서 각 인물들의 모습과 성격이 매번 달리 보인다. 개츠비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토록 순수해 보였는데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만약 다시 한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라는 문장을 읽고 나니, 이제는 이 인간이 순수해서인지 멍청해서인지 정말 얼탱이가 없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가 데이지를 정말 사랑했던 건지, 아니면 데이지가 속해 있는 상류사회와 그 속에서 나른하게 퍼질 수 있는 분위기(그런 점에서 개츠비의 연정의 대상이 꼭 데이지가 아니어도 됐으리라)를 열망한 건지 헷갈린다.


데이지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순수한 인물로 기억됐는데,


(개츠비의 저택을 둘러보며)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그녀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같은 문구를 보니 돈과 여유만 밝히는 미련퉁이에 엄청나게 수동적인 인물의 이미지로 바뀌었다(전형적인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3. 닉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부도덕적인 사실은 이번에 다시금 느껴졌다. 톰 뷰캐넌(폭력과 거친 말투를 쓰고, 배우자가 있음에도 정부를 둬서 시시덕거림), 조던 베이커(골프 경기 중 반칙을 쓰는 등 부도덕적인 인물로 그려짐) 등이 보여준 모습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자질을 가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흘러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하루 걸러 하루 성대한 파티를 열었던 당시의 미국이 이겨내지 못한 도덕적 해이를 아주 뚜렷이 보여준다.


4. 디카프리오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서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영화의 장면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개츠비요.”라는 대사와 함께 뒤에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나, 강렬한 색감과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파티 장면은 책이 묘사하지 못한 미국의 ‘황금시대’의 색채를 얼마나 잘 옮겨놓았는지, 나에게는 책과 영화 모두 만점짜리 작품들이다.


6. <위대한 개츠비>는 첫 문장뿐 아니라 마지막 문장도 정말 유명한데,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다소 알 수 없는 문장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방해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흘러간 것들을 다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계속 손을 뻗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저택을 구경할 때 개츠비가 느꼈던 감정에서 실마리를 잡아보자면


“안개만 끼지 않았더라면 만 건너에 있는 당신 집이 보일 겁니다. 당신 집의 부두 끝에는 항상 밤새도록 초록빛 불이 켜져 있더군요.” 개츠비가 말했다.
데이지는 느닷없이 개츠비에게 팔짱을 끼었지만 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그 엄청난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달 가까이 있는 어떤 별처럼 그렇게 가깝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한낱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색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마법을 부렸던 물건 중 하나가 줄어든 셈이다.


라는 문장에서처럼, 과거를 애타게 그리다가 그것을 기껏 잡고 나니, 그것은 그저 미화된 기억을 두르고 반짝였을 뿐이었고 실상은 별거 없었던 것이다.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보았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일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장을 남기고 책은 다시 덮였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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