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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Aug 22. 2019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김영사, 2019

책을 펴서 몇 장 넘기면 퀴즈 13개가 나온다. 저작권 문제로 이를 모두 옮기지 못하지만, 퀴즈는 이런 식이다. 첫 번째 문제.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20%, 40%, 60% 중에 하나를 골라보자. 아홉 번째 문제.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20%, 50%, 80% 중에 답이 있다. 열두 번째 문제.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역시 20%, 50%, 80% 중에 어떤 게 답일까?


나는 13문제 중 3개밖에 못 맞췄다. 보기가 3개여서 침팬지가 무작위로 찍어도 33%의 정답률이 나와야 하는데, 나는 침팬지보다 못한 것이다. 사실 함께 책을 읽은 이들 대부분 침팬지보다 정답률이 떨어졌다. 다행인 것은 선진국의 많은 이들이 비슷한 정답률을 보인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인 <팩트풀니스>를 번역해보자면 '사실충실성'이란다. 흠, 이 단어도 영 이해하기 힘들다. 부족한 머리로 끙끙 앓으며 도출해낸 결과 팩트풀니스란 어떤 현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분석하는 사고 도구이자 힘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를 열 가지의 잘못된 본능을 장착한 채 바라본다고 말한다. 열 가지를 간략히 소개해보자면,


1. 간극 본능 - 현실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2. 부정 본능 -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3. 직선 본능 - 긍정이든 부정이든 도표의 선이 계속 직선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4. 공포 본능 - 세상이 나쁜 일들은 다 내게 일어날 것만 같다.
5. 크기 본능 - 어떤 수치를 볼 때 비율이 아닌 크기만을 본다.
6. 일반화 본능 - 개념을 범주화시켜서 일반화를 시킨다.
7. 운명 본능 - 제3세계의 저소득국가는 앞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고 선진국이 될 수 없다.
8. 단일 관점 본능 - 우리는 단순한 관점으로 통계와 세계를 본다.
9. 비난 본능 -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무조건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10. 다급함 본능 - 다급한 나머지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이란다. 이 본능에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사건이나 사회현상을 맞닥뜨렸을 때 더 좋은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는 단순히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으로 나뉘지 않는다(간극 본능). 우리가 생각한 양극단 사이에는 수많은 점들이 있는 것이다. 극과 극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편견에 빠져 옳은 판단을 하기 어렵다. 또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나아지고 있다(부정 본능).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언론이나 방송에서 보여주는 자극적인 방송을 보면 비율이 더 늘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저자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잘못된 본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까지 말이다. 사회지도층과 사업가가 세계를 잘못된 방식으로 인식한다면 사회와 조직의 문제를 두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저자가 사실충실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사실충실성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와 통계에 주목해 세계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포 본능 장에서 저자는 자연재해(총사망자의 0.1%), 항공기 사고(0.001%), 살인(0.7%), 방사성물질 유출(0%), 테러(0.05%) 같은 끔찍한 사건을 다룬다. 연간 총사망자의 1%를 넘는 경우는 없지만 언론은 이를 집중적으로 다뤄 우리의 공포를 자극한다. 물론 사망률이 낮더라도 더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사망률이 더 높은 기초 위생 분야에서 우리의 관심을 덜어냄으로써 하나의 사회적 발전을 저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모 기업의 임직원 연봉 평균이 1억이란다. 하지만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연봉은 이보다 터무니없이 낮다. 높은 연봉을 받는 임원이 포함되어 있어 평균값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것이다. 이 경우에는 중앙에 위치한 중앙값을 말해야만 한다. 또한 두 집단의 평균값이 동일해도 산포를 고려하지 않으면 집단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점을 비교할 수 없다. 몇 년 전 논란이 되었던 대한민국 가임기 지도처럼, 데이터는 사실이지만 통계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입맛대로 가공되고 만다. 저자가 말한 대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려면 좋은 통계와 나쁜 통계를 구별할 능력도 갖춰야만 한다.


저자가 말하는 '객관적' 지표에도 함정이 있다. 수치와 도표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말은, 자칫 효율을 중시한 나머지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 현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공리주의의 함정에 빠져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흘를 수도 있다. 저자는 '수치 없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했지만 효율성의 함정에서 빠져나가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통계를 보면 세상은 오로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폭이 좁더라도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좋아진다는 의미이지 차별과 불합리가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전 세계에 만연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상황이 나쁠 수도 있고 동시에 좋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좁게는 나라는 개인과 주변의 작은 사회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힘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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