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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May 18. 2020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열림원, 2019

‘당신과 조우’(45쪽)을 읽고 - 본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대학 시절, 작가는 등단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화로 전한다. 어머니는 그날 가게 문을 닫고 초저녁부터 노래방에 있었는데, 좀 취해 있었지만 딸의 좋은 소식에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가계의 형편이 어려워지던 무렵이어서 그의 어머니는 마음을 달래려 노래방에 몇 번 더 갔다고 한다. 그렇게, 가사를 잘 몰라도 박자를 놓쳐도 음치여도, 그저 흥이 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을 사람들.


음치인 어머니가 삶의 진부함을 인정하며 목놓아 불렀을 노래, 노랫말도. 문학도 처음에는 모두 노래였으리라라.  _47쪽


문자가 없던 시절. 그때 문학이래 봐야 뭐겠어, 시장바닥 길바닥에서 에헤! 어히! 하면서 가락에 맞춰 노래 부르는 것 아니었겠어?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해서 형식을 잊고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며 길바닥의 노래는 지면을 통해 언어로 순화되면서 단순해지고 정갈해졌다. 카버의 단편 중 하나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제빵사가 ‘한 뚝배기 하실래예?’라고 물어보는 대신 ‘당신들 뭘 좀 먹는 게 좋을 것 같소’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37쪽).


길바닥의 노래는 우리에게 과잉된 감정을 남겨주었고, 일부는 부사로 전해 내려오지 않았나 모르겠다. 글을 쓸 때 피해야 할 품사 1순위인 부사. 부사가 쓰인 문장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부사를 지우며 더 짧은 문장으로 바꿔본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고 사랑스런 부사다.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는, 다른 방법을 놔두고 단순하고 무능한 부사를 쓴다고 하지만 - 그만큼 촌스럽거나 순진하거나 다급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리라(88, 89쪽). 아름다움과 우아함만이 아닌, 글쓰기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과함이 있기에 우리를 흔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들.


작가들은 그 말 주위를 부지런히 싸돌아다닌다. 삶이 가진 진부함의 잔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그러다 가끔은 말들의 뒤뚱거림 속에서 또 새로운 박자를 발견해가면서 말이다.  _100쪽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노래들 사이에서 작가는 본연의 감각으로 새로운 박자를 찾아 작품을 써내려간다. 아무 규칙이 없어 보이던 우리네 일상은 작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때 느껴지는 한 줄기 아름다움은 우리의 단조로운 일상이 새로운 의미를 품은 작품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때마다 우리는 기저에 빛나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그러니까, 한번 토해내 보자. 빛나는 무대에서 수상소감을 말하지 못하더라도, 가슴속 이야기라도 속시원이 뻥! 하고 말이다. 무대 위에서야 보는 눈이 많다지만 코인 노래방에서 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하나 없다. 고야하고 아름다운 문학 말고, 거칠고 조악하고 저열하고 못생겼지만 - 내 목소리와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이 가득 담긴 문학을 말해보고 싶다. 이 세계가 전부 노래방이다.


문학이란 어쩌면 당신들을 초대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 기꺼이 와준 당신, 바로 그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학은 하나의 선을 편드는 문학이 아니라, 이제 막 사람들 앞에 선 당선자의 허영, 그 헛폼 안에조차 삶의 이면을 비출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손들어주는 , 여러개의 팔을 가진 문학이었다.  _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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