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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Jun 26. 2016

업무 시작

미국 출장 이야기

목요일, 전임 출장자들이 아침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떠났다.


전임자와 짧게 겹친 기간에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다. 주로 반복적인 업무들. 매일 아침 전날의 데이터를 뽑아 전송하기. 매주 답변해야 하는 메일. 주기적인 미팅이 언제 어디서 있는지.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는 아이템들의 현황. 노하우. 등등.


반복적인 업무가 많고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업무가 적었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고, 영어 선생님이 말해준대로 한국과 미국을 잇는 middle man의 역할이 다였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기 전보다 부담감은 적어졌다. 징검다리 역할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임자의 마지막 근무날. 아침에 한국에서 메일이 왔다. 미국의 상황을 확인해달란다. 온통 한국어로 된 메일과 자료를 영어로 바꿔 미국 직원들에게 보냈다. 출장 와서 처음으로 혼자 해본 일이었다. 번역도 나름 괜찮게 느껴져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부서 주재원분이 나를 찾았다. 어제 보낸 메일을 봤는데 미국 사람들은 이렇게 메일을 보내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른단다. 모르면 일을 안한다, 네가 러시아어로 된 메일을 그대로 받아서 일한다고 생각해봐라, 한참동안 이것저것 업무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첫 업무부터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자괴감이 들었다. 주재원분들은 너무 심각해지지 말라고 하셨다. 주재원으로 2년 동안 일했어도 일하는데 아직도 어렵고 버벅인다며 다독여주기도 하셨다.


놀러온 게 아닌데 너무 업무를 가볍게 봤을까. 여기서 큰 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받을 필요 없다는 주재원의 조언에도 마음이 쉬이 안정되지 않는다. 영어도 문제. 로컬들은 대화하면서 재밌다고 웃는데, 알아듣지 못해 나 혼자 가만히 있을 때가 있어서 민망하기도 하다. (가끔 못 알아들어도 눈치보고 웃기도 한다)


세 달의 출장 기간. 이 짧은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이다.


사진은, 전임자들 마지막날 퇴근길에 찍은파아란 하늘이다. 일도 일이지만, 세 달 동안 남이 주는 집과 차를 가지고 미국에 있을 기회가 얼마나 되겠냐며 미국을 즐기라고 했다. 맞아. 살면서 저런 하늘을 볼 날이 얼마나 있겠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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