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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Jun 19. 2016

미국 출장길에 오르다

미국 출장 이야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 출장이, 드디어 시작됐다.


  게으른 성격탓에 그동안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 출장이 결정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밀린 일들을 시작했다. 덕분에 퇴근 시간은 9, 10시를 넘어갔다. 출장을 위해 미국 로컬과 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비자 발급 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준비를 제때 하지 않아 최종 출장 결재가 마지막 날 난 것도, 나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진심으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출장이 취소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꾸역꾸역 준비를 마치고 부서 동료와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12월 유럽 여행 때와 같은 비행 시간(13시간)이었는데 이번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전자책을 잔뜩 담아갔는데 착륙 한 시간 전에야 정신을 차리고 조금 볼 수 있었다. 창문을 통해 하늘과 땅을 보려고 창가 좌석에 앉았다.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려 오히려 불편했다.(다음에는 꼭 복도 좌석으로 타고자 동료와 약속했다) 이륙하자마자 창문을 가려달라고 해서 사진도 얼마 찍지 못했다. 미국 땅에 들어서는 햇빛이 너무 밝아 밖을 볼 수 없었다.


이륙 직전, 그나마 파란 하늘을 찍을 수 있었다. 날개 자리라서 아래는 보지도 못했다.


  인천에서 댈러스까지 13시간의 비행. 아픈 엉덩이와 허리를 잡고 땅을 밟았다. 환승까지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얼른 나가 밖에서 뭐라도 사먹자고 했다. 넉넉할줄 알았던 두 시간이었는데 실상은 환승 비행기를 겨우 탈 정도로 빡빡했다. 댈러스에서 입국심사가 생각보다 길었다. 가뜩이나 빨리 가야 하는데 비자 입국자는 이것저것 물어봐 시간이 지체됐다. 전체 일행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입국심사를 마쳤다.


  다음 관문은 세관 신고. 다른 줄은 휙휙 통과하는데 이상하게 내가 선 줄만 더뎠다. 앞에 서 있던 한국 사람이 과일을 가져와 세관에 걸려 으슥한(?) 사무실로 끌려갔다. (같이 서 있던 한국분 말로는 가공되지 않은 과일을 가져오면 안된단다. 껍질 깐 사과는 되고 그냥 사과는 안된다니) 세관 업무하는 사람은 그 업무만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 사무실에 계속 들락날락하며 업무를 본다. 탑승시간까지는 40분이 채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다행히 다른 줄이 비어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환승기를 타러 나갔다. 우리가 있는 곳은 D라인. 탑승구는 C라인. 표지판을 보고 한참 찾았지만 C는 보이지 않고 온통 D뿐이다. 하는 수 없이 부끄러움을 마주하고 직원에게 C로 가고 싶다고 영.어.로 물었다. 저기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솔직히 뒤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계속 설명했다. 바쁜 우리는 직원의 말을 땡큐땡큐하며 반강제로 끊고 얼른 걸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어라, 무슨 열차 타는 곳이 나온다. 표지판을 보니 모노레일(?)을 타야 C라인으로 갈 수 있다. 막 도착한 모노레일을 탔다. 워낙 경황이 없어 사진을 못 찍었는데, 댈러스 공항은 인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타고 내리는 곳이 4곳이나 있는데 그걸 또 모노레일을 타고 한참 가야 하다니. 역시 미국은 넓고 넓었다.


  출발 10분 전에야 겨우 비행기에 올랐다. 경황이 없어 전자책이고 뭐고 하나도 못 꺼내고 자리에 앉았다. 손에는 초라한 여권뿐이었다. 창문 밖을 보고 싶었는데(젠장, 또 창가 좌석이었다) 다들 창문을 가리길래 눈치봐서 내렸다. 사실 사진기를 꺼내지 못해 찍을 생각도 못했다. 심심한데 읽을거리는 없고, AA에서 제공하는 잡지를 봤으나 역시 문자는 영어. 영화 '나우 유 씨미 2'에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참여하고 리암 햄스워스가 새 '인디펜던스 데이'의 주연이라는 기사를 띄엄띄엄 봤다.


  최고도에서 잠깐 날더니 곧 착륙했다. 오스틴 공항을 나오자 우리를 맞이한 건 더위. 한국이 한여름과 비슷한 온도였다. 6월 말에는 40도까지 올라가 최고조를 찍는다니, 진짜 고개가 절로 절래절래.


  짐을 찾고 회사 사람이 모여 셔틀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두 명이 나오지 않는다. 선탑자가 한국에 연락을 하니 이 두 명이 비행기를 놓쳤단다. 아까 과일 때문에 세관에서 걸린 사람과, 우리랑 쭉 같이 오다가 환승기 타면서 짐 검사를 하다가 백팩이 걸린 사람인 듯싶었다. 한 시간 동안 공항에 있을 수 없으니 둘은 택시를 타기로 하고 우리는 셔틀에 올랐다.


오지 않은 두 사람을 기다리며, 오스틴 공항 슈퍼셔틀 앞에서.
역시 슈퍼셔틀 앞. 아저씨 눈치를 보다가 나를 안 보는 새에 도촬을...
셔틀 타러가는 길. 정말 푹푹 찐다.


  셔틀을 타고 한참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이 거리를 택시타고 오라고 했으니... 요금이 얼마나 나왔으려나. 생각도 하기 싫다. 도로는 우리나라랑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외려 차가 더 많게 보인다. 부장님이 말씀하신 서비스 도로도 봐두었다.


  숙소에 들어와 씻고 몸을 누였다. 짐정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전임자가 사둔 냉동 피자를 오븐에 돌려먹었다. 오븐 조작법을 잘 몰라 덜 데펴진 피자를 먹었다. 빵은 흐물흐물한데 치즈가 덜 녹아 정말 맛이 없었다. 오븐 사용법을 배운 뒤 다시 해먹어보자고 다짐했다.


  방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침대도 거의 킹사이즈에 가깝고 수납공간도 많다. 특히 옷장이 커서 마음에 든다. 에어컨도 계속 돌아 쾌적하다. 발코니에 빨래를 널지 말라고 해서 조금 아쉽다. 이 햇볕에 빨래를 말리면 정말 바싹 마를텐데. 그래도 건조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없는 물건 - 휴지, 세제, 슬리퍼, 샴푸 - 이 꽤나 많아서 내일 근처 아울렛에 들러서 다 사야겠다. 이 더위를 견디기 위해 얇은 바지도 몇 벌 사야겠다.


  안 올 줄 알았던 출장이 진짜 시작됐다. 비행기를 탈 때는 몰랐는데, 미국에 발을 딛으니 너무 떨린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출장이라니. 한국에서도 일 잘 못했는데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전임자 둘 모두 영어를 꽤나 잘해서 더욱 걱정이다. 미국인들이 이번에는 뭔 이런 놈들이 왔어, 하는 생각하면 안되는데. 설렘은 1도 없고 걱정과 두려움만 가득하다. 으아, 잘 할 수 있을까?


ps. 같이 온 동료와, 주말 하루 쉬더라도 방에 있지 말고 어디든 나가자고 약속했다. 천성이 게으름뱅이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나중에 안 나간다고 땡깡부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으으, 계속 걱정 걱정, 걱정 투성이네.


All pictured Fujifilm X-pro2, xf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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