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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Jul 11. 2016

숙소 이야기

미국 출장 이야기

  숙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꽤나 좋은 곳이다. 처음 숙소에 들어왔을 때 놀랐다. 출장 오기 전 생각했던 기숙사 형태가 아니어서이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가정집 형태도 아니지만, 약간 팬션 느낌의 집이다. 넓직한 주방, 인덕션 아래의 오븐(오븐! 오븐!), 왼편의 식기세척기까지, 우리집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거실 위에는 팬이 돌아가고 있고 방도 마찬가지다. 방 안에는 책상은 없지만 혼자 눕기에 꽤나 큰 침대가 놓였다. 수납공간도 꽤나 많고, 특히 내 방은 옷 보관실이 다른 방보다 넓다. 3인 1실에 같이 출장 온 부서 동료와 화장실을 같이 쓰는 것만 빼면 좋다. 영상통화를 하던 여자친구가 방이 너무 좋다며 부러워 한다.


이건 첫 인상일 뿐. 지내다보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첫째로, 집이 너무 어둡다. 자연광이 세서 낮에는 괜찮지만 해가 지면 모든 조명이 주황색이어서 미칠 노릇이다. 한국처럼 환한 형광등 빛이 없다. 눈은 편하지만 전혀 익숙치 않다. 둘째로, 여긴 자연이 충만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출장자 교육 때 들었는데, 미국은 방에서 과자를 먹다가 흘리면 며칠 내로 개미가 들끓는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숙소에도 개미가 꽤나 많다. 화장실 바닥에 몇 마리씩 모여 있는 걸 보면 미칠 지경이다. 거실 쇼파에 누워서 며칠 잤는데, 그새 몇 방 물렸다.


  그래도 미국이 너무 좋다.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제대로 된 주택가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국 주택가. 넓다란 정원에 큼직한 집, 조용하고 깨끗한 도로, 가끔 보이는 러너들. 그런 곳으로 들어가면 진짜 미국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고, 한편으로 꽤나 부럽다. 넒은 대지만큼 여유롭고 자유로운 미국인들. 주말이 되면 공원 안의 자연 풀에서 신나게 놀고 수영복 차림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심지어 공원에서 삼각수영복과 비키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커플을 보기도 했다. 오, 지져스! 물론 오스틴이 잘 사는 동네라 더욱 그렇겠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인들은 항상 웃고 긍정적이다. 미팅 시간에 발표를 하다가 공격이 들어와도 땡큐 땡큐,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줘도 땡큐 땡큐.


  숙소 얘기 하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다. 영어만 잘하고 능력만 되면 여기서 로컬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여기라고 일을 열심히 안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 주변에 깔린 그 여유가 너무나 부럽다.


  사진은, 오늘 메일박스를 확인하러 가는 길에 찍은 숙소 계단. 언제나 그렇지만 있어보이려고 찍었다. 그것도 흑백으로... 아 더 있어보여. 크하하하.



@fujifilm x-pro2, xf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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