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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Jul 25. 2016

Leica M9 첫 개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M9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구입한 라이카M9(이하 엠구). 이번주에 ups 스토어에서 받아 손에 넣었지만 매일 7시 넘어서 집에 오는 바람에 찍은 거라곤 브랜드 자랑하는 셀카밖에 없었다.(부끄럽도다) 이중합치를 연습할 새도 없었다. 매뉴얼을 보면서 카메라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계속 공부했다.


  는 거짓말. 이 카메라는 별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 후지 플래그십 x-pro2에 비하면 정말 초라할 정도로(라무룩...) 기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시된지 7년이 다 되어가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하지만 사진은 노출의 3요소 -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만 알면 된다. 어떤 카메라든 이 세 가지만 알면 다른 기능은 뭐, 고만고만하다.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오스틴 공항 주변에 있는 매키니 폴스 공원에서 자연을 벗삼아 사진을 팡팡 찍어대려고 했다. 먼저 점심을 먹기 위해 현지인이 추천해준 피자집으로 향했다. 하필 가장 사람이 몰릴 시간에 가서 거의 40분을 기다린 끝에 자리에 겨우 앉았다. 주문하면 그때서야 으라챠 으라챠 피자를 만드는 시스템이어서 주문을 한 뒤 또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남정네 둘은 그 큰 피자를 20분만에 다 먹었다고 합니다. 잘 먹었다, 하며 가게를 나섰다.


  화장실을 간 친구를 기다리며 하늘을 찍었다. 미국은 정말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많다. 산이 많지 않아 드넓은 평원에 뜬 수많은 구름이 보인다. 오스틴을 가로지르는 I35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정말 장관을 볼 수 있다. 매번 감탄할 정도로 많은 구름떼가 떠 있다. 미국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가게 앞 횡단보도에 서서. 미국에서 가장 볼만한 건 파란 하늘과 간간히 떠 있는 구름이다.
이 무더운 날씨에 자전를 타는 사람이 꽤 있다. 잠깐 신호를 기다리길래 몰래 찍었다. 만약 나를 봤다면 굿럭! 이라고 해주려고 했다.


  15분여를 달려서 매키니 폴스 공원에 들어섰... 어어? 입구에 주 경찰차가 사이렌을 깜빡이며 서 있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간판을 보니 오늘은 공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내가 가자고 해서 몸도 안 좋은 친구를 데리고 나왔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몇몇 차들도 우리처럼 간판을 보고 차를 돌렸다.


  잠시 차를 세우고 어디 갈만한 곳이 없나 검색한다. 시간은 아직 4시. 웨이팅만 주구장창하며 피자를 먹은 게 오늘 하루의 다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하지만 오스틴은 심심한 동네다. 그냥 사람 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우리가 원하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할 곳이 없다. 가장 번화가라는 6번가는 해가 뉘엿 질 때에나 사람이 많아지니 지금 가면 그냥 땡볕에 거리를 걷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한참 주변을 찾다가... 결국 갈 곳을 못 찾고 시내 중앙에 위치한 질커파크를 가기로 했다.


  그래서 뭐하고 놀았냐고? 재밌게 놀았으면 이런 글은 안 쓰지. 공원 안에 식물정원이라고 있어서 그럼 꽃이라도 찍어야겠다, 싶었는데 해의 열기가 너무 강해서인지 풀이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맥을 못차린다. 좋은 사진을 찍는 능력이 없으니 예쁜 피사체라도 있어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다 엉망이다. 정말 슬펐다.


하늘...을 찍었는데 너무 어두웠다. RAW 파일로 저장하니 그나마 보정의 관용도가 넓어졌다. 다행이다. 역시 사진은 보정빨이다.
식물정원에서 유일하게 본, 생생히 살아 있던 꽃이다. 너가 너무 반가웠어.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드라이브하고, 멋진 구름을 본 것만 해도 어디냐 하면서 나름 긍정적인 기분으로. 달리는 차에서는 사진을 못 찍으니 기분이라도 내려고 숙소에 도착해 하늘을 찍었다.


  집에 들어와서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땄다. 평소에는 배가 불러 반 정도 마시고 냉동실에 두는데 오늘은 목이 너무 타 한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쇼파에 앉아 오늘 찍은 100장의 사진을 본다. 보정으로 살릴만한 게 있나, 한참 들여보다가 몇 장 골랐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 라이트룸 프리셋을 꺼내 이것저것 대본다. 역시 보정이 반이다. 보정 만세다. 사진을 1도 모르겠고, 라이트룸이랑 vsco 만만세다!



  아차, 사진기 이야기를 하다가 일기로 넘어가버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연식이 된 모델이라 사용하는 데 조금 불편하지만(코닥 센서는 해 지면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야 한다는 농담이 돌 정도로 고감도에 약하단다) 크게 힘들지는 않다. 이중합치가 가끔 스트레스를 주지만 핀이 안 맞아도, 흔들려도 그냥 나름대로의 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 사용하던 카메라들은 포커스가 되지 않으면 무진 짜증났는데 말이다. 라이카라는 브랜드에서 오는 가짜 감성인 게 분명하지만, 시간과 장소를 기록한다는 사진 본연의 의미를 생각하면 뚜렷하고 날카로운 이미지가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사실 사진의 색감 같은 건 보정을 통해서 충분히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실질적인 결과물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결과물보다 사진을 찍는 과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카의 RF 방식의 포커싱은 여타 브랜드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겨우 하루 사용한 걸로 훈계질(?)이 길었다. 다음 주말을 기약하며, 엠구 고생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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