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평소에 건강 분야의 글(정확히는 에세이지만)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건강에 자신은 없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쪽 분야의 글이 워낙 천편일률적으로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육질의 남성이나 여성이 몸매를 드러내며 운동은 이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사는 건 틀렸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 지겹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영미 저자의 마녀체력은 콘셉트가 참 매력적이다.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카피와 함께 자신을 '고혈압과 스트레스, 저질 체력만 남은' 평범한 직장인 여성이었다고 소개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이웃이 옆에서 차분하게 '나는 운동을 이렇게 시작하게 됐고, 덕분에 이런 부분이 달라졌어요.'라고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다. 부담스럽지도 않고 거부감이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운동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30대 후반의 애 엄마가 되어 책상에만 앉아 일한 지 10여 년. 지리산은커녕 동네 아차산도 올라가 본 게 언제인지 모를 만큼 저질 체력이 된 것이다. 겉으로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어떤 산이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지금의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부류에 속했다. _36쪽
저자는 '대에디터'라 불리는 출판 편집자다. 무려 13년 차다. 나와 같은 직종이어서 더 몰입되었던 부분도 있지만, 직장을 다니는 중년부터 사회초년생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굳이 '여자'라고 특정 지어 체력을 기르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 같다. 남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이다. 에세이지만 동시에 건강 분야의 책이고, 또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어쨌든 에세이답게 술술 잘 읽힌다. 카페에서 처음 읽기 시작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었다. 아들의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하다 두 차례나 넘어지는 치욕(?)을 당한 그녀의 남편은 그날 이후 달라졌다. 담배도 끊고(임신을 했을 때도 끊지 않았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까지도 아내인 저자는 운동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가족끼리 함께 간 여행지에서 남편이 다른 가족과 산의 정상을 등반할 동안 밑에서 처량하게 기다리기만 했던 일이 계기가 되어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어렸을 땐 어떤 산이든 도전하고 체력적으로도 당당했었는데, 체력이 약해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핑계로 함께 산을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이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수영부터 자전거, 마라톤까지 저자가 겪은 다양한 실패담, 성공담과 함께 소소한 팁들도 소개해준다. 복장은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가 아플 땐 어떻게 해야 하고, 겁이 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친절하게 코칭해준다. 물론 전문가가 아니므로 시중에 나온 '전문적인 지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실 운동이란 게 선수 생활을 할 게 아니라면 얕은 지식이어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저자가 철인 3종 경기를 모두 해낸 트라이애슬릿이므로 일반인인 우리에 비해서는 전문가지만 말이다.
붕 뜬 기분으로 선수 대기석에 앉아 힘들게 밥숟갈을 떠 넘겼다. 그제야 부끄러움이 몰려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데 몇몇 아는 얼굴들이 다가오더니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실은 동네 마라톤 클럽에서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초보자가 함께 출전한 거였다. 한 사람은 아예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기권, 두 명은 한 바퀴도 돌지 못하고 보트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그랬구나, 결코 나만 무서웠던 게 아니구나. _93~94쪽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처음 참가했던 트라이애슬론 대회 에피소드였다. 죽은 쥐가 둥둥 떠다니는 흙탕물이 무섭고, 잔잔한 수영장이 아닌 호수에서 수영하는 게 너무 어려워 포기하려 했을 때, 어디선가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아들과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끝까지 완주했다는 이야기다. 몇 번이나 관두려고 했는데 '여기까지만, 저기까지만' 조언해주는 남편 덕분에 용기를 내어 결국 꼴찌로 결승점에 들어오게 된다. 스스로가 겁쟁이 같고 미약하게 느껴져서 비참한 기분이 들 수도 있었을 텐데, 남편의 말대로 처음은 다 어려운 것이었다. 처음 참여한 다른 세 명이 전부 도중에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자신만 힘들고 무서웠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더 큰 용기를 얻게 된다.
운동을 통해 그녀는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건강해졌고(골골 앓았던 중년에게는 가장 큰 메리트다) 콤플렉스였던 작은 키도 더 이상 게의치 않게 됐다. 오히려 다부지고 생기가 넘친다는 평을 자주 듣게 된다. 무엇보다 매사에 더 정력적으로 임할 수 있게 됐고 일에서도 큰 성과를 얻는다. 감기에 걸리면 6개월 동안 기침을 하고 콧물을 쏟을 정도로 약골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잔병치레도 잘 하지 않는 생기 넘치는 건강한 사람이 됐다. 건강이 중요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공부를 많이 해서 잘하면 좋고, 책을 많이 읽으면 좋고,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좋고, 근육이 생기면 좋고, 기름기 없는 생식을 자주 먹으면 좋다 등등 누구나 무엇이 옳고 더 좋은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청개구리 심보 때문인지 '이렇게 저렇게 해라!'라는 강압적인 명령투의 말을 들으면 더 하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장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해주는 자기계발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