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엄마이자, 여자인 그녀의 이야기
<태도의 관하여> 이후 2년 만에 나온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다. 그녀는 <태도의 관하여>에서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끝머리에서 이 5가지 태도들이 결국 '자유'라는 궁극의 가치에 수렴한다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 에세이의 제목이 '자유'로 이어진 걸까? 출판사는 작가의 일상과 통찰, 사랑, 관계, 태도를 두루 아우른 에세이라고 이 책을 소개한다. 쉽게 말해 에세이가 대개 그렇듯 담겨 있는 글들의 주제 역시 자유롭다는 뜻이다. 실제로 처음 장편소설을 썼을 때의 경험이나, 자신이 인상 깊게 본 연애소설 이야기, 옛 연인에 대한 추억,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 담배를 폈던 이야기, 작가로서의 생각 등이 자유롭게 얽혀 있다. 글솜씨가 좋으니 담백하고 소탈하지만 밋밋하지 않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작가 본인이 서점에 가서 다른 책을 볼 때 판권을 확인한다는 에피소드였다. '아니 한 달 만에 벌써 3쇄를 찍다니!'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의 책은 1년 만에 10쇄를 훌쩍 넘겼다.
그런데 솔직히 전작인 <태도의 관하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무언가 달관한 듯 차분하게 이어나가는 일련의 이야기들이 딱히 와닿지 않았다. 감정에 호소하는 에세이에 익숙해져 있어서였을까? 이성적인 건 좋지만 다시 읽고 싶진 않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자유로울 것>은 흥미로웠다. 약간 가르치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도 있지만 그녀 개인의 생각이 흥미로웠고,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 좋았다. 다만 작가가 언급한 책, 인물, 영화 등을 알지 못하거나 호감이 없다면 온전히 이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즐겨 읽는다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에 흥미가 생겨 곧 읽어볼 예정이다. 이렇게 그녀가 인용한 것들을 알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호기심이라도 갖게 된다면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에세이란 장르의 특성상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밖에 없으니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는 아니다.
얼마 전 우울감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행복이란 얼만큼 행복한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라는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만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을. 이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안일한 위로를 향한 도피가 아닌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_16쪽
대학생들은 어쩌면 그토록 술과 담배를 좋아했을까. 예전부터 술이 약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시는 일, 다시 말해 술에 취한 기분이 그리 좋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담배는 좋아했다. 시험 기간에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중간에 잠시 벤치로 나와서 피우는 담배도 좋았고 (...) 남자친구와 헤어지던 날 울면서 피우던 담배는 쓰고 찝찔했다. 담배는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을 더욱 진하게 증폭시켰다. _160쪽
새 책을 준비할 무렵, 마무리 단계에서 저자 프로필을 정리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평소 쓰던 대로 써서 담당 편집자에게 보냈더니 회신 메일에서 이렇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나이는 프로필에서 빼도 되지 않을까요?" 그때 내 나이가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즉 대중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한 나이임을 생생하게 깨달았다. _237쪽
작가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곧잘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계기들은 흥미진진했고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 같았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에는 흔히 다른 작가들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문학소녀의 꿈도, 숱하게 시도했던 등단을 위한 습작도, 어느 날 불현듯 다가온 섬광 같은 계시도 없었다. 그저 몸이 아파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이 잡은 유일한 지푸라기였다. 인생은 그토록 한 치 앞을 모른다. _278쪽
에세이의 특성상 자전적인 이야기여서 취향을 탈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물론 에세이만이 가진 매력도 있다. 바로 '솔직함'이다. 그녀는 '솔직함'이라는 미덕이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로 장강명 작가의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언급한다. 장강명 작가가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정관 수술을 한 이야기부터, 아내가 가난한 집 딸의 자세를 아찍 떨쳐내지 못했다고 말하며 성장 배경을 주저 없이 이야기하는 부분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와 이렇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 에세이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임경선 작가 본인 또한 놀랄 만큼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남편의 직장 동료를 잠깐 만났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런 게 에세이가 가진 '솔직함'의 매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가의 전 남자친구이자 남편의 전 동료인 그는 지금도 그들 부부와 교류를 나눈다고 한다.
작가는 에세이란 장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소설과 달리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소설은 '머리'로 쓰고 에세이는 '마음'으로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세이를 쓸 때는 기본적으로 마음이 유연하고 너그러운 상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소설처럼 일부러 엉덩이 힘으로 버티면서 쓰지 않는다. 그저 쓰고 싶은 주제가 불현듯 떠올랐을 때 부담 없이 쓴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고서, 한 친구가 에세이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에세이는 기록하고 싶고, 따로 어디 적고 싶을 만큼 잘 쓴 글귀를 찾기 위해 본다."라고.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것>은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