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외로운 특수교사, 선생님들 덕에 즐겁게 살아요.

by 북울림


어떤 집단에 ‘회원 가입’을 해야만 소속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마음속에 동그라미를 그려 그룹을 만들고, 각 분야의 사람들 이름을 채워 넣으면 그게 소속이 된다. 결국 소속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 『김부장이야기3』 송희구. 서삼독. p.226




“감탄쌤, 드디어 교무실 출입 카드 만드셨군요?”


과학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교무실 카드도 있어요?"


"선생님 T죠? 오랜만에 오셨길래! 농담입니다~"


"아~프린트 좀 하러요. 원래 여기 자주 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오늘은 그냥… 누군가랑 말 좀 섞고 싶어서 찾아갔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가끔은 교무실을 들렀다 갈까 말까 고민한다.
교무실에선 스스로 이방인이라 느낀다.


특수교사는 아이들과 붙어 있어야 더 안정적인 하루가 되기에 하루 대부분을 특수학급에서 보낸다.


'외딴섬.'


“선생님, 오늘 ○○이가요…”
나를 긴장시키는 도입부다.

“네, 오늘 좀 유독 힘들어하네요” 같은 뻔한 말만 건네게 된다.
특수교사이기에 늘 해답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눈빛도 부담이 되기에 피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를 때가 있다.

물어볼 사람도 대답해 줄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학교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지 고민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힘을 내는 건 그때 그 경험 덕분이다.




학교 메신저가 왔다
<쉿! 비밀공지>
이 메시지를 받으신 분은 이제 멤버이십니다

-대상: 청춘 가득한 15명

-장소: 사거리 주점 양철통

-날짜: 17일

-불참여부는 17일에 양철통에서 구두로 전달할 것!ㅎㅎㅎ

-선생님~ 우리 함께 놉시다!^^


말로만 듣던 처총회 시작이었다
월급날인 매달 17일에 모이자는 의미로 '17회'라고 불렀다.


그 모임이 학교에 애착을 갖게 해 줬다.
그 모임이 있었기에 통합이라는 말도 입에 담아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끈끈했던 남자 네 명.
특수교사였던 나, 그리고 2살 아래 수학 선생님, 또 다른 수학 선생님, 그리고 과학 선생님.
“우리 짝수 년도생 넷이니까 ‘짝포’ 어때요?”
“와… 유치하긴 한데, 딱히 더 좋은 이름도 없다.”


그렇게 정해진 이름.
유치하다고 하면서도 다들 꽤 만족해했다.
업무는 많았고, 일은 힘들었지만, 우린 서로 기대며 3년을 함께했다.


방학이면 캠핑장도 갔다.
“감탄쌤, 이번엔 바닷가 어때요?”
“좋긴 한데 내가 해안 GOP 출신이라... 계곡 어때요? 내가 알아볼게요!”
그렇게 부담 없이 여행 계획을 짰다.


심지어 배낭 메고 라오스까지 갔다.
“왠 라오스?”
“꽃보다 청춘!.”

"오~"


방비엥 냇가에서 마신 라오비어.

루앙프라방에서 한파 때문에 숙소에 갇혀 떨던 밤.
현지 음식 앞에서 다 같이 젓가락 멈춘 채 눈치 보던 장면.
물가에서 장난치다 한 명이 허름한 현지 병원에 간 건 지금도 단톡방에서 회자된다.




그 시절은 확실히 웃음이 많았다.
지금은 다들 흩어져서 결혼하고 육아하면서 웃음기 빠진 지 오래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만날 때마다 그 시절 여중의 아이돌로 돌아가는 것 같아 힘을 받는다.


특수교사라는 자리는 여전히 고립되기 쉽고, 외롭다.
하지만 그때의 사람들, 그 시절 덕분에 나는 그 외로움을 너무 일찍 배우진 않았다.


“감탄쌤, 오늘도 프린트요?”
교무실에서 누가 또 말을 걸어온다.
“아뇨, 커피 한잔 타주세요.”
이제는 뻔뻔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고맙다는 말, 그땐 못했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아직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오늘도 웃으며 출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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