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피도 눈물도 없는 FM교사, 지금도 슬퍼한다.

by 북울림

'숙고'란 다양한 사건들을 타인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배려다.


-『승화』 배철현. 21세기북스. p.52




“통학비는 지원 안 됩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 엄마의 눈가가 가볍게 떨렸다.

가늘고 주름진 손이 아이의 팔을 감쌌다.
아이도, 엄마도 말없이 내 눈을 바라봤다.


“정류장은 예전보다 더 많은데… 초등학교 때는 그걸로 됐었는데요.”


엄마가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중학교는요, 직선거리 2km 이상이어야 가능해요. 버스 정류장 수는 고려되지 않아요.”


엄마는 작게 숨을 삼켰다. 아이는 책가방을 조용히 끌어안았다.


“죄송합니다.”


내가 덧붙였다.


“저도 마음이 안 좋지만… 규정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날은 밀린 업무로 스트레스가 가득한 하루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교무실 의자에 앉자마자 올라온 통학비 신청 서류.

나는 FM이었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실수 없는 새내기 교사.
규정을 넘는 것이 잘못이고, 넘지 않는 것이 정의라 믿었다.
그러니 ‘죄송합니다’라는 말 뒤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몇 년 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왔다.
다른 학교, 다른 학생, 그러나 똑같은 거리와 똑같은 사연.


나는 이번엔 수화기를 들었다.


“교육청 통학비 담당자 연결 부탁드립니다.”


연결 후, 상황을 설명했다.


어쩌면 안된다는 말을 기다리며 설명했는지도 모른다.


잠시후 답변을 들었다.


“직선거리 2km는 기준일 뿐이에요. 사정이 있으면 학교 판단으로 가능할 수도 있어요. 지원의 목적은,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거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전의 내 판단이 머릿속을 다시 들쑤셨다.


“지원이 안 됩니다.”


그때, 나의 목소리는 너무도 단호하고 선명했다.
정작 그 말에 가장 흔들렸던 것은, 규정을 믿었던 나 자신이었다.


그날 밤, 초등학교 담임의 의견란에 적힌 한 줄이 생각났다.


‘심장 질환으로 장거리 보행이 어려움.’


나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규정만 들여다봤다.
아이의 질병도, 엄마의 생활 형편도, 통학로의 언덕도... 다 무시한 채, 나는 규정의 한 줄을 택했다.


‘직선거리 2km 미만, 지원 불가.’


그 해, 민지는 전학을 갔었다.

이유는 모른다.


“정류장이 더 많은데…”라고 조용히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
아이의 작은 입에서 나온, “그냥 뛰어가면 돼요.”

그 한마디가 날 따라다녔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문의 전화를 건다.

더 자주 묻고, 더 자주 고민한다.


이 지원이 ‘왜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규정은 기준이다.

그것은 방향을 잡는 지도이지, 아이의 걸음을 막는 벽이 되어선 안 된다.


나는 이제 아이들의 걸음을 돕는 길을 찾고 싶다.
혹시라도 내 말 한마디에 아이가 멈춰 서지 않도록.
혹시라도 다시는, 그날의 눈동자를 외면하지 않도록.


민지야, 그날의 나는 틀렸다.
그리고 너는 옳았다.
그래서 지금도, 너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지원을 한다.


다시 한 번 되뇌어본다.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야 한다. 행정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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