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글쓰기-르포 : 현장을 정직하게 담아라 2

by Newfifty

언론사 필기시험은 일반적으로 작문과 논술이라고 말씀드렸죠.


필기시험을 통과한 뒤 최종 면접으로 가는 중간 길목에 '실무 평가'를 대부분 합니다.


그 '실무 평가' 과목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르포'입니다.


'모래밖에 없는 사막에서도 기사거리를 찾아야 하는 저널리스트'에게 '맨땅에 헤딩하며 취재해야 하는 르포'는 그 능력과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적합한 테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글쓰기 강의를 수강했던 '제자'들이 알려준 몇몇 언론사의 르포(현장 취재) 과제들입니다.




상충돼 보이는 두 인물 / 가치 / 계층 / 분야 등이 공존하는 현장을 찾아 취재해 기사를 작성하십시오.


다음 장소 중 한 곳을 방문해 다음날 조간신문에 나올 만한 기사를 작성하시오.

①김포 ②대치동 ③마장동 축산물시장 ④성수동 카페거리 ⑤신림동


'2022 사망원인 통계'를 보고 떠오르는 현장에 가서 르포 기사를 쓰세요


제시어 '공'을 보고 떠오르는 현장에 가서 르포 기사를 쓰세요




모든 시험에는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르포 과제'를 받아 들면 가장 먼저

1) 어떤 주제나 이슈를 취재하기 위해 2)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를 정해야겠죠.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양하게 다뤘지만 '대치동의 초등학생 의대반 열풍'을 르포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합시다.


대치동에 달려갔는데 아직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아니어서 학원에 학생이 없을 수도 있고, '초등학생 의대반' 운영하는 학원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취재 협조를 제대로 안 해 줄 수도 있습니다.


마감 시간은 점점 가까워 오고요.


저널리스트의 취재 현실에서 이런 어려움은 흔하게 있습니다.


이럴 때 '내가 쓰고자 하는 르포의 방향에 맞게 사실을 과장하거나, 나아가 왜곡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혹에 한번 넘어가면 저널리스트로서는 치명적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널리스트 글쓰기 OT(오리엔테이션) : 좋은 글은 취재에서 나온다]의 후반부에 나오는 기고문([개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쓴다])에서 "취재가 힘들수록 기사는 힘 있는 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현장을 취재할 때 원하는 팩트(fact∙사실)나 필요한 코멘트(취재원의 말씀)를 단번에 얻지 못했다면, 그것들이 취재될 때까지 더 뛰고 더 만나야 합니다.


마감 시간 때문에 도저히 더 취재할 수 없다면, 그때까지 취재한 팩트만을 가지고 르포를 써야 맞습니다. 물론 아쉽고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는 건 '추가 취재'이어야 하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는 과장이나 왜곡이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현장을 정직하게 담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슈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현장의 팩트 앞에 유연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아래는 2014년 8월 미국 특파원 시절 회사의 지시를 받고 '파나마운하 개통 100주년' 르포를 하고 쓴 기사입니다.




10년간 준비한 '100세 파티'… 달갑잖은 경쟁자가 나타났다

태평양~대서양 잇는 물류의 허브 가보니


파나마는 원주민 말로 '물고기가 많다'는 뜻이다. 운하를 통해 북미와 남미,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니 가만히 있어도 물고기가 모여드는 길목에 있다. 운하를 통해 '연결의 나라(Country of Connectivity)'가 된 셈이다.


태평양 쪽 발보아 항에서든 대서양 쪽 크리스토발 항에서든 60∼80층 고층 건물들이 늘어선 파마나시티의 해안 산책로에서든 바다만 바라보면 대형 선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렁이 떼처럼 지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파나마 운하가 (2014년 8월) 15일로 개통 100주년을 맞는다. 파나마는 약 10년 전부터 100주년을 준비해 왔다. 기존 파나마 운하보다 더 크고 현대적인 '제2 파나마 운하'도 건설에 들어갔다. 2005년 대국민 설명에 이어 2006년 국민투표를 거쳐 2007년 착공했다. 하지만 파나마 운하 100세 잔칫상에 선물 대신 새로운 도전과 변수가 올려지면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연결의 나라'의 차분한 운하 100주년?


나라 전체가 '파나마 운하 100주년 열기에 가득 차 있을 것'이란 예상은 (2014년 8월) 6일 오후(현지 시간) 파나마시티의 토쿠멘 국제공항에 내리면서 깨졌다. 홍보 입간판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미라플로레스 방문센터로 직행했다. 갑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선박을 계단식으로 올리고 내리는 장면을 볼 수 있는 운하 전망대와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여기엔 '100주년 입간판'이 보였다.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대형 선박들이 갑문을 통과하는 광경을 200∼300명의 관광객이 지켜보고 있었다. 건물 10층 높이(약 30m)의 선박들이 눈앞을 지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조던 루크 씨는 "갑문 안에서 물을 채웠다가 뺐다가 하면서 이런 큰 배를 움직이는 모습이 경이롭다"며 "그냥 구경 왔는데 100주년이라니 더 의미 있다"고 했다. 캐나다 대학생 데이비드 번햄 씨도 "브라질 가는 길인데 파나마를 잠시 들렀다. 100주년인 건 여기 와서 알았다"고 했다. 현지 파나맥스여행사 가이드인 로빈 디아스 씨는 "파나마 운하는 원래 관광객이 많이 온다. 100주년이란 이유로 일부러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100주년 열기가 기대만큼 못한 데에는 제2 운하 공사가 기일보다 늦어진 게 영향을 줬다고 운하청 관계자가 말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파나마 컨소시엄이 지난해 말 "초과 공사비(약 16억 달러)를 추가 지급해 달라"고 발주처인 운하청에 청구하며 공사가 2개월 넘게 중단된 것이다. 이 문제는 중재재판에 넘어갔고, 공사는 어렵게 재개됐다. 이 갈등 때문에 '운하 100주년=제2 운하 시대 개막'이란 당초 계획은 내년 말로 늦춰줬고 이 역시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 파나마 운하의 앞날과 '미중 운하 대전(大戰)'


파나마 운하는 100주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경쟁자를 만났다. 파나마보다 북미대륙에 더 가까운 니카라과가 '홍콩-니카라과 운하개발(HKND)'과 손잡고 파나마 운하 길이(83.3km)의 3배가 넘는 278km짜리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대한 파나마 측의 현지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실현가능성, 채산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들이 많다. 호르헤 키하노 운하청장은 현지 언론에 "니카라과 운하 건설비용(약 400억 달러)이 파나마 운하 확장(제2의 운하 건설) 비용(약 53억 달러)의 거의 8배여서 '운하 통행료'도 훨씬 더 비쌀 것"이라고 말했다. 운하청 측은 또 "파나마 운하는 하루(8∼10시간)면 통과하지만 3배 이상 길게 설계된 니카라과 운하는 (완공되더라도) 3일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남미통인 조병립 주(駐) 파나마 대사는 "니카라과 운하 뒤에 중국이 있다. 중국은 중남미에서 단기 이익을 얻으려고 공략하지 않는다. 미국 입김이 강한 이 지역에서 중요한 거점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지정학적 목적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현지 글로벌 기업의 한 임원도 "중국이 나선 만큼 어떻게든 운하가 건설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동부 뉴욕에서 출발한 배가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데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면 9500km를 가야 하지만, 니카라과 운하를 통하면 8700km로 운항 거리를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발보아 항에서 만난 한 대형 선박의 선장은 "니카라과 운하가 건설되면 '미국과 파나마 대 중국과 니카라과'의 경쟁 내지 대립이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당시 저널리스트가 파나마시티의 토쿠멘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공항 청사가 '파나마 운하 100주년' 홍보 입간판에 뒤덮여 있고, 도시 전체가 관련 행사의 열기로 가득했다면 위 기사의 리드(첫 줄 또는 첫 줄을 포함한 도입부)는 그 내용들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널리스트의 눈에는 그런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관광객들조차도 '100주년'인 것을 현지에 와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적잖은 경비를 들여서 미국에서 파나마까지 출장 왔는데 회사에 "100주년 열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르포 쓸거리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저는 아무 생각도 대책도 없는 저널리스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느껴지지 않는 100주년 열기'를 과장하거나 왜곡할 수 없고, 절대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1) 100주년 열기가 안 느껴지는 이유(제2 운하 공사 차질)를 찾고

2) 파나마 운하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지 모르는 '니카라과 운하'에 대한 취재를 더 했습니다.


출장 전 기대했던 르포 제목은 [태평양∼대서양 잇는 파나마 운하의 100세 파티 열기, 새로운 100년의 꿈에 부푼 파나마] 정도였지만, 현장 취재 뒤 작성한 기사의 제목은 [10년간 준비한 '100세 파티'… 달갑잖은 경쟁자가 나타났다]입니다.


keyword
이전 22화저널리스트 글쓰기-르포 : 현장을 정직하게 담아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