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연재]는 30회를 하면 종료해야 하더군요.
이번 글이 브런치북 [미디어 글쓰기 강의 노트]의 22회째니까, 이 글을 포함해서 9회 남았네요.
그 9회 동안 [저널리스트 글쓰기]의 3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르포(현장), 인터뷰(사람), 칼럼(관점∙觀點∙Point of View)에 대해 각 3회씩 소개할 계획입니다.
오늘은 ‘르포’입니다.
르포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프랑스어 르포르타주(reportage)의 줄임말이고, 미디어 용어로는 ‘방송 신문 잡지 등에서 현지 보고나 보고 기사를 이르는 말’로 쓰이고, 문학 용어로는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현실의 사건과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기록하는 문학 형식’]이라고 나오더군요.
저널리스트들은 대체로 ‘르포’하면 ‘현장’, ‘현장’하면 ‘르포’를 떠올립니다.
물론 뉴스 가치가 있는 현장이어야 하겠죠.
이번 시간에는 제 생애의 첫 ‘르포’ 얘기를 하려 합니다.
1996년 8월 29일 밤 저는 사회부 사건팀(경찰서 출입)의 야간 당직 당번이었습니다.
당시 야간 당직자는 밤 11시∼자정 사이에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당직실에서 야간에 청구된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 중 뉴스가 되는 것이 있는지를 살핀 뒤, 서울 강남구 강남경찰서 기자실에서 새벽 3시까지 근무해야 합니다. 야간에 대형 화재나 교통사고 같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챙겨야 합니다.
새벽 3시는 일반적으로 신문 제작이 완전히 종료되는 시간입니다. 야간 당직자는 그 시간이 지나야 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날(1996년 8월 29일) 서울지방법원 당직실에서 각종 영장을 체크하던 중 ‘경찰이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사태와 관련해, 서울대 등 서울 주요 대학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내용은 곧바로 ‘스트레이트’로 써서 회사에 보냈고 다음날(1996년 8월 30일) 자 사회면에 실렸습니다.
경찰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사태와 관련, (1996년 8월) 29일 오후 법원으로부터 서울대 학생회관 및 각 단과대학생회실 동아리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30일 중 압수수색을 벌일 계획이다.
한총련 사태 이후 서울대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번이 처음이며, 경찰은 고려대 성균관대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방법원을 들른 다음에는, 강남경찰서 기자실에 앉아서 소방서에 전화해 화재가 있는지 등을 챙기며 새벽 3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하면 됩니다.
그런데 주요 대학의 압수수색 ‘현장’을 직접 가서 보고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서울대를 담당하는 관악경찰서에 문의해 보니, “새벽 4시 넘어서 압수수색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선배나 상사(차장 부장 등 데스크)가 그 시간에 “압수수색 현장 가서 취재하라”라고 지시했다면 ‘당직 근무는 새벽 3시까지인데, 새벽 4시 압수수색을 취재하면 잠은 언제 자라는 거냐’라며 불평과 불만이 생겼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새벽 시간이라 그런 지시를 할 선배나 상사도 없었습니다.
그냥 ‘문제의 현장’이 궁금했습니다.
그 호기심으로 밤새 취재해서 쓴, 생애 첫 ‘르포’([허탕 친 압수수색])입니다.
“아저씨, 이쪽 문도 열어 주세요.”
아직도 해가 뜨려면 한 시간이나 남아 있던 (1996년 8월) 30일 오전 5시경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간부 등 수배학생을 검거하고 시위용품을 압수하기 위해 어둠을 뚫고 5개 중대 7백여 명의 경찰이 긴장된 모습으로 학교 안팎에 모여 있었다.
경찰은 이미 전날 밤 학생회관 안에 있는 여러 방을 나눠 전담 수색할 조 편성을 마쳤다. 또 문이 잠겼을 때를 대비해 손전등 망치 끌 등도 준비했다. 그러나 수색작전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학생들이 경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미리 선수를 쳤기 때문.
경비 아저씨들만 열쇠꾸러미를 들고 이 방문, 저 방문을 열어주느라 바빴지만 문제가 될 만한 시위용품이나 서적 유인물 등은 어디론가 치워져 있었다. 북한기가 새겨진 열쇠고리 1개가 유일한 ‘전리품’이었다.
“수색할 줄 알고 미리 다 치워 버린 모양인데….”
“여기가 총장실(총학생회장실)인가.”
맥이 풀려버린 경찰은 자신이 담당한 방에서 책이나 유인물 몇 가지씩을 챙기고는 ‘마치 구경 온 사람처럼’ 서로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수배자를 검거하기 위해 들어온 사복조들도 ‘할 일이 없어’ 압수물품을 버스까지 실어 나르는 일을 도왔다.
학생들의 모습도 경찰처럼 조용했다. 예전 같으면 ‘경찰의 학원 침탈’이라며 항의라도 했을 텐데 학생회관은 물론 근처의 도서관에도 학생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총학생회가 이미 전날 저녁 도서관 열람실 입구에 ‘학교 침탈이 예상되니 일찍 귀가하시기 바랍니다’는 안내문을 걸어 놨기 때문이었다.
다만 밤새도록 열어놓는 도서관의 제2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던 30∼40명의 학생들만이 가끔 창밖으로 학생회관을 내다봤다. 그러나 이들도 곧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공부에 열중하거나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경찰이 교문을 들어설 때부터 굵어지기 시작한 새벽비만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어떠신가요?
비 내리는 새벽
경찰의 압수수색 모습, 학생들의 무덤덤한 반응 등이 그려지시나요?
학생회관과 도서관 열람실을 분주하게 오가며 ‘현장’의 장면들을 메모하는 어느 주니어 저널리스트의 열정도 느껴지시나요?